성전과 제사장, 예수님과 새언약

읽을 말씀 : 마 21:12~17; 막 11:15~19; 눅 19:45~46; 요 2:13~22

1. 우리는 이 사건을 ‘성전 청결’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사건은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성전을 ‘척결’하신 사건이다. 청결[淸潔, 깨끗하고 말끔함]과 척결[剔抉, 살을 긁어내고 뼈를 발라냄]은 근본적인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청결은 기존의 체제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더러워진 것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이지만, 척결은 섞어가는 부위의 살을 긁어내고 뼈를 발라낸다는 의미로 기존 체제까지 완전히 깨끗하게 제거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구약의 성전 체계를 완전히 끝내시는 사건이다.

2. 그것을 요한복음 2장 19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성전을 허물라. 그러면 내가 3일만에 다시 세우겠다.” 예수님은 건물로서의 성전 시대를 끝내시려고 오셨다. 그래서 과감하게 허물어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이젠 새로운 성전 시대가 열렸다. 그것은 예수님이 직접 성전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바로 자기 몸을 가르킨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셨을 때에야 제자들은 이 말씀을 기억했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습니다.”(21~22절)

3. 그리고 자기 몸으로 친히 새언약을 성취하심으로 인해 성령님이 믿는 자들의 육체 가운데 거하시게 되는 완전히 새로운 성전 시대를 다시 여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건물 안에 거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 거하시며 그들과 직접 만나시고, 말씀하시며, 이끄시고,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을 모신 모든 신자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왕국을 이 땅에 가져오는 자로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4. 그러므로 건물을 성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목사를 제사장(혹은 성직)이라고 부르는 것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안수 받은 몇 사람만이 하나님의 뜻을 대언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자신의 몸으로 지성소로 들어가는 새롭고 산 길을 여셨기 때문입니다.

5. 그렇다면 목사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4:11~12에서 명확하게 밝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주신 직분일뿐입니다. 직분은 계급이 아니며, 성직도 아닙니다. 또한 직접 사역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마치 감독, 코치와 같은 자로서 여러 다른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바르게 사역할 수 있도록 돕고 세우고 가르치는 자들일뿐입니다.

6. 성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예배당을 성전이 아닙니다), 목사도 더 이상 제사장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습이 가능하다는 말은 성경을 오독해도 심각하게 오독한 결과인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여전히 율법적이고 구약적인 이유는 이런 목사들이 성경을 심각하게 오독한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값만 치루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여셨으며,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우리 같은 목사들이 목회를 하는 근거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많은 목사들이 목회의 근거를 구약에 두고 있습니다.

7. 이런 문제들이 일어난 가장 큰 원인은 성경적인 교회론을 바르게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교회를 그저 눈에 보이는 건물이라고 부르는 1차원적인 접근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큰 그림뿐만 아니라, 그 구원으로 인해 시작된 교회 공동체를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회 성장이라는 패러다임 – 숫자의 확장, 건물의 확장, 프로그램의 확장 – 에서 벗어나 성경이 제시하시는 진정한 교회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이해하는 신학적/성경적 접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8. 한국 교회는 커다란 과도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진리라고 믿었던 기초들이 뿌리채 흔들리며 혼란스러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기초를 다시 새롭게 다지는 것입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으며, 무엇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점검하고, 기초를 세우는 일들을 시작해야 합니다. 합리적인 의심과 질문들을 던지며,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믿고 있는 것이 정말 성경에 합당한 것들인지를 살펴보는 작업들을 시작해야 합니다.

영적 성장 vs. 영성 형성

1. 요즘 ‘영적 성장'(Spiritual Growth)이란 표현이 적절한지를 고민해 본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영이라는 존재가 성장이라는 과정을 거치는가? 육체의 성장 그리고 마음의 성장은 그러한 성장의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영이란 존재도 그런 성장의 과정을 거치는가?

2. 그런 관점으로 그동안 영적 성장에 대해서 가르쳐지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영이라는 존재 자체의 성장이라기보다 하나님과의 관계 개발이라는 측면이 더 강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적 성장’이라는 말 대신에 ‘영성 형성'(Spiritual Forma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이 부분은 김인호 목사님의 글에서 도움을 얻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inho.kim.3597/posts/844947412272969?pnref=story)

3. 그렇다면 ‘영성’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정의하면 “진리를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영성을 거창하고 심오하게 말하지만 실제로 영성이란 개념은 단순하다. 그 사람이 믿는 가치와 진리를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영성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한다면, 기독교 영성은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혹은 내주하시는 성령님과의 관계 안에서 참된 영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4. 하지만 여전히 영성을 계단이나 사다리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치 단계가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체험을 했거나 어떤 진리를 더 많이 알게 되면 영성이 승급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아니면 그 사람이 더 신령한 존재가 된다고 생각한다. 항상 강조하지만 이것은 천주교적, 불교적, 샤머니즘적 영성 개념이다.

5. 무엇을 보고, 무엇을 깨닫고, 많은 시간을 기도했다고 영적인 존재 자체가 달라지거나 거룩해지거나 승급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적 성장이란 영이라는 존재 자체가 달라진다는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인자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매일 만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만나는 그 사람의 성품도 변화되고 달라진다는 것이다.

6. 영성 훈련과 영적 성장을 그렇게 정리하다면 진짜 중요한 개념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영성 형성'(Spiritual Formation)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성장이란 말 대신에 영성 형성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개념을 갖고 성경적인 영성, 건강한 영성이 형성되도록 가르치고 세워가야할 것이다.

7. 마지막으로 이런 영성 형성의 목표를 미가서 6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To act justly and to love mercy and to walk humbly with your God.)

가정/가문을 부르시는 하나님

묵상한 말씀 : 민수기 4:21~33
나에게 주시는 말씀 : “게르손 족속도 그 가문별, 갖고별에 따라 인구를 조사하여라… 므라리 족속을 그 가문별, 가족별 인구를 조사하여라.”(22, 29절)

1. 제사장 이다말의 감독 아래 성막과 회막의 물건들을 운반하는 일을 해야하는 두 가문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로 게르손과 므라리 족속이다.

2. 오늘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가족별’(families)와 ‘가문별’(clans)이다.

3.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는 너무 개인화, 파편화 되었다. 구원도 개인이고, 신앙생활도 개인이다. 예배도 개인이고, 부르심과 사명도 개인이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역사는 많은 경우 가족과 가문(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4. 물론 이것은 어떤 세습이나 특별한 가문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신약을 보아도 신앙의 전수나 교회가 가정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다는 것이다.

5. 현대 교회는 여러 많은 위원회와 조직들이 존재하면서 세분화 되었고 파편화 되었다. 그러면서 유기적인 몸으로서의 교회를 말한다. 하지만 초대교회는 대부분 가정교회로서 관계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였고, 그 관계를 통해서 사역들이 진행되었다.

6. 요즘 여기저기에서 교회 개혁을 외친다. 하지만 조직의 개편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것은 교회를 가정교회로(다시 말하면 가정을 중심으로) 재편하는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

7. 하나님은 가정을 부르셨고, 그 가정을 통해 신앙이 전수되고, 그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미션(mission)이 이루어지길 원하신다.

정치권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1. 정치권에서 들려오는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뉴스가 매일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설레이게 한다. 이제 대한민국에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2. 동시에 교단과 교회에서도 이런 새로운 변화의 소식이 들려오기를 간절하게 소망해 본다. 하지만 오늘 본 뉴스는 성공적인 세습을 마친 세한 교회 이야기이다.

3. 작년인가 교단 행사 때 그 분의 목회 이야기를 듣고 적지않게 실망을 했다. 솔직히 별로 들을 것도 없었다. 너무 교만하게 보여도 상관 없다. 더 정직하게 말하면 그때 대부분의 강사진들의 강의를 통해서도 도움을 받은 것이 없다(그래서 요즘 그런 집회나 세미나에 거의 가지 않는다).

4. 이젠 더 이상 큰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으니 더 나을 것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이 쏟아내는 목회 방법론은 이미 목회 현장에선 구닥다리가 되어버렸다. 오히려 내가 듣고 싶은 것은 진심이 있는 삶의 이야기, 목회 이야기이다.

5. 노하우, 방법, 스킬, *** 법, 전략, 비전, 교회 성장 등등의 이야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성도들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보고 싶고, 듣고 싶다. 요즘 정치권에서 들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말이다.

6. 강단이 아닌 삶으로 말하는 목사가 필요하다. 자신이 강단에서 외친 복음(진리)이 진짜임을 삶으로 말할 수 있고 보여줄 수 있는 진짜 목사가 필요하다. 이젠 한국 교회에도 그런 목사 존경을 받고, 선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열려야 한다.

7. 그래서 유시민 작가 한 말이 생각난다. “대중은 누가 계몽할 수 없습니다. 국민들은 스스로를 계몽하는 것이거든요” 계몽되지 못한 성도들이 많은 한국 교회 안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정치권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다시 한번 한국 교회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를 해 본다. 한국 교회 곳곳에 이런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