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의 본질과 핵심

묵상한 말씀 : 여호수아 22:1~9
나에게 주시는 말씀 :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명령과 율법을 잘 지켜 행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항상 그분의 길로 다니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 분을 꼭 잡고 너희의 마음과 영혼을 다해 그분을 섬겨야 한다.” (5절)

1. 열두 지파들이 제비를 뽑아 기업(땅)을 분배했고, 도피성을 정했으며, 레위 지파에게도 거할 성이 분배되었다. 이렇게 함으로 커다란 그림을 다 그린 셈이다. 나머지는 각 지파와 가문들이 이루어가야 할 영역이다.

2. 그러자 여호수아는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지파를 불러 그들이 기업으로 얻었던 요단강 동쪽 땅으로 돌려보내며 칭찬(격려)과 축복과 당부의 말을 전한다.

3. 칭찬 : 이미 요단강 동편에서 기업을 얻었지만, 다른 지파들 사람들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 서쪽 땅을 점령하는데 함께 동행해 주었다. 여호수아는 그런 그들의 헌신과 순종, 연합을 칭찬하고 격려한다(3절).

4. 축복 : 그들을 돌려 보내며 그들의 순종과 헌신의 삶에 걸맞는 안식을 주실 것과 새롭게 얻는 기업에서 시작할 삶을 축복한다(4, 8절).

5. 당부 : 그러면서 여호수아는 신앙생활의 핵심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하며, 요단강 서편 땅으로 가더라도 그런 신앙생활을 하라고 당부를 한다. 그렇다면 여호수아가 말하는 신앙생활의 핵심, 본질은 무엇인가?

(가)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to love the LORD your God.
(나) 항상 그 분의 길로 다녀라. to walk in obedience to him.
(다) 그 분의 계명을 지켜라. to keep his commands.
(라) 그 분을 꼭 잡아라. to hold fast to him.
(마) 너희의 마음과 영혼을 다해 그분을 섬겨라. to serve him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6. 많은 사람들은 신앙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본질이 아니다. 진짜 본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사랑함으로서 그 분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의 계명(율법,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것을 다시 세 가지 단어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God) – 길(Way) – 계명(how to)

7. 그 중에 가장 본질은 하나님을 마음과 영혼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며, 그 분만을 붙잡고 좇는 것이다. 우리의 첫 번째 초점은 말씀이 아니다. 우리의 첫 번째 초점은 하나님 그 분이다. 그 분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온전히 좇을 때, 그 분의 길을 알게 되고, 그 길을 걸어갈 때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된다.

8. 이것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동일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오해한다. 구약은 종교적인 율법 준수만을 강조하고, 신약은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말이다. 아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모두 동일하게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 그 분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좇는 것이다. 그럴 때 그 분의 길을 걷게 되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이고 핵심이다.

9. 여호수아는 그것을 당부하고 있다. 하나님의 주신 기업(땅)에서 그런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럼 참된 안식과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것을 놓치면 아무리 비옥하고 좋은 땅에 거할지라도 실패와 좌절, 타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10. 다시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바로 이해하자. 어떤 종교적인 행위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를 떠나서 가장 먼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고 따르자. 그것이 없는 행위는 종교로 전락하고 율법주의를 낳게될 뿐임을 기억하자.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길을 걷고, 그 분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임을 기억하자.

특혜와 하나님의 복은 다른 것이다!

묵상한 말씀 : 여호수아 19:24~51
나에게 주시는 말씀 :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렇게 유산이 될 땅을 다 나누고 나서 그들 가운데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유산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여호수아가 요구한 성, 곧 에브라임 산지의 딤낫 세라를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거기에 성을 쌓고 살았습니다. 이상은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아스라엘 자손의 지파 지도자들이 실로의 모이는 장막의 눈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아 나눈 유산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땅 나누는 일을 마쳤습니다.” (49~51절)

1. 남은 세 지파의 땅 분배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아셀 지파(24~31절) 그리고 납달리 지파(32~39절), 단 지파(40~47절)이다. 이렇게 해서 열두 지파에 대한 땅 분배를 마쳤다.

2.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여호수아는 딤낫 세라를 기업으로 받아서, 그곳에 성을 쌓고 거주한다. 이것은 가나안 점령과 분배의 과정 가운데 가장 수고하고 애를 쓴 여호수아를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근데 지매 있는 것은,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분이 여호와라는 것이다.

3. 여기서 지파 별로 땅 분배 과정과 여호수아가 땅 분배를 받은 과정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 지파 별로 제비를 뽑아 분배 받을 땅을 결정한다.
(나) 사실 구획 정리도 안된 땅을 분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제비를 뽑아 정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과정 가운데 지파 별로 이해 관계가 맞물려 매우 예민하고 복잡한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것을 정리하고 조정해 주는 역할을 여호수아가 했던 것이다.
(다) 지파 별로 분배 받은 땅은 다시 가족 별로 재분배 했다.
(라) 근데 여호수아는 그런 과정 없이 바로 개인이 땅을 지목해서 그곳을 분배 받는다.

4. 50절에 보면,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에 의한 결정이었다. 어찌보면 여호수아가 특혜를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과연 특혜인가?). 다른 모든 사람들은 지파별 그리고 가족별로 땅 분배를 받았는데 여호수아만 직접 땅 분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딤낫 세라’는 특별한 땅이 아닌듯 하다. 그냥 여호수아가 속한 지파의 땅 중에 한 곳일 뿐이다.

5. 뿐만 아니라 그 땅은 완성된 곳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완성해야할 땅이었다. 여호수아도 성을 쌓는 수고를 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수고와 땀을 흘려야 한다. 그런 면에서 특혜라고 할 수 없다. 다른 점 중에 하나는 개인이 직접 땅 분배를 받았다는 것이다.

6. 이것이 과연 특혜일까? 모든 지파 별로 땅 분배가 끝난 다음에야 자신의 땅을 결정했다. 그것도 이미 분배 받은 누구의 땅을 빼앗은 것도 아니고, 다른 지파에 속한 좋은 땅을 분배 받은 것도 아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완성된 땅을 분배 받은 것도 아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분배 받는 과정을 생략 했다는 것이다.

7. 이스라엘 열두 지파 별로 땅 분배가 매우 예민하고 어려운 문제였다.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제비를 뽑았지만, 그 가운데 있는 모든 문제들(갈등들)을 조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실현해 갔던 사람은 바로 여호수아였다. 그런 수고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직접 말씀하셨다. 여호수아에게 직접 땅을 주라고.

8. 하나님은 지도자의 수고와 고뇌, 아픔을 잘 아시는 분이시다. 더욱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지도자의 노력을 기억하시는 분이시다. 그런 면에서 지도자는 스스로 특혜를 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 정말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애를 썼다면,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아신다. 그리고 그것에 합당한 선물과 열매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다.

9. 하지만 이것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는 잘 익은 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땅은 특별하게 받았지만, 그 땅을 기경하고 가꾸는 일은 여호수아가 직접 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지도자라고 해서 그런 과정이 생략되는 것이 아니다. 똑같이 땅을 기경하고 씨를 뿌리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돌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추수할 때 열매를 거두게 된다.

10. 하나님이 주신 복과 인간이 누리려고 하는 특혜는 다르다. 완성된 복을 누리려고 하는 것은 특혜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업(땅)을 특별하게 주시지만, 그 땅에서 열매를 얻기 위해선 똑같은 수고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복은 그런 과정 가운데 함께 하시며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11. 개척을 하고 힘들 때마다 자주 망상에 빠진다. 하나님이 주시는 특혜를 꿈꾼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감이 뚝 떨어지는 특혜를 상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복이 아니다. 하나님의 복은 그것을 가꾸어 갈 수 있는 땅을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가운데 함께 하시며,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이다. 다시 하나님의 합당한 복, 하나님의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구하자. 특혜가 아닌 성경적인 복을 취하자!

작고 연약한 지파, 무명의 한 사람

묵상한 말씀 : 여호수아 18:11~28
나에제 주시는 말씀 : “베냐민 지파를 위하 각 가문별로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들에게 분배된 땅은 유다 자손과 요셉 자손의 사이였습니다.” (11절)

1. 남은 일곱 지파의 기업 분배가 시작된다. 그중에 제일 먼저 남은 기업에서 땅을 받은 지파는 베냐민 지파이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의 위치가 재미 있다. 11절을 보면, 남쪽으로는 유다 지파가 있고, 북쪽으로는 요셉 지파가 있다. 즉, 열두 지파 중에 가장 유력한 두 지파의 사이에 위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2. 하나님은 왜 그곳에 작고 연약한 베냐민 지파를 두셨을까?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장 작고 연약한 베냐민 지파에서 사울이라는 사람을 찾아내셨다(삼상 9:21). 그리고 그 사람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셨다.

3. 가장 강하고 유력한 가문이나 지파가 아닌, 가장 연약하고 작은 지파와 가문에서,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신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서 계속 반복되는 하나님의 원칙이자 방법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가진 기준을 따르시지 않으신다. 인간은 강하고 유능한 자를 찾는다. 그런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정반대다.

4. 또한 하나님은 그런 작고 연약한 지파에게도 땅을 분배해 주신다. 크든지 작든지 모든 지파에게는 그들에게 부여되는 고유의 땅이 있고, 그 경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베냐민 지파의 경계 안에 중요한 도시들이 들어가 있다. 곧 벧엘과 기브온과 예루살렘이다(21절 이하). 이곳들은 모두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과 관련이 있다. 베냐민 지파, 그들은 다른 어떤 지파보다 작고 연약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부여된 특별한 부르심과 사명이 있었다.

5.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공의’라고 부른다. 작고 약하니까 쓸모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할과 사명, 부르심이 있다는 것이다. 크고 유력한 지파이든, 작고 연약한 지파이든 상관이 없다. 크면 큰데로, 작으면 작은데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고, 부르심이 있다는 것이다.

6. 다시 한번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에게 질문을 던진다. “저에게 허락하신 기업과 부르심은 무엇입니까?” 또한 “제가 섬기는 교회에게 허락된 기업과 역할은 무엇입니까?” 지나 번에 나눈 적이 있는데, 한국 교회는 점점 획일화 되어가는 것 같다. 하지만 건강한 생태계는 다양한 종이 존재해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교회 생태계가 건강 하려면 다양한 형태의 교회들이 존재해야 한다.

7. 사이즈가 큰든 작든, 위치한 곳이 도시이든 농촌이든 상관 없이… 예배의 다양성, 사역의 다양성, 부르심의 다양성을 서로 인정하고… 각자의 부르심과 사명을 따라, 다양한 교회 공동체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크다고 교만할 필요도, 반대로 작다고 위축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는 것이다.

8. 하나님은 오히려 작은 자들을 들어 큰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시다. 무명의 한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유명한 자들을 겸손하게 만드시는 분이시다. 그것을 베냐민 지파를 통해 보여주셨다.

Prayer Walking (1) : 기업과 경계

3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4 너희는 각 지파에 세 사람씩 선정하라 내가 그들을 보내리니 그들은 일어나서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들의 기업에 따라 그 땅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 (수18:3-4)

1. 어제 말씀 묵상 시간에 주시는 마음이 있어서, 오늘 공동체 지체들과 오랜만에 ‘Prayer Walking’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어느 분에게 불편한 표현이겠죠? 그렇다고 저를 신사도주의자라고 비난하진 마세요).

#Prayer Walking : 우리 말로 어떻게 번역하는 것이 좋을까요? 많이들 ‘땅밟기 기도’라고 하시는데, 그것은 올바른 번역이 아닙니다(제가 속해 있던 선교단체에서 그렇게 번역을 했는데, 지난 실수를 인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가길 바랍니다). 그것으로 인해 많은 오해와 오류가 있었지요. ‘기도 산책’, ‘기도하며 걷기’ 정도가 좋을 것 같습니다. 골방에서 기도하는대신 기도가 필요한 현장에서 오감을 동원해 보고 듣고 느끼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신 밟기’와 같은 샤머니즘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안타까운 것은 외국에선 참 좋은(건강한) 동기와 목적으로 시작된 사역들이, 한국에만 들어오면 이상하게 변질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사역들 안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한국 사람들의 심성 안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2. 성령님과 함께 걸으며,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며, 제주와 복음자리 공동체를 위해 중보기도 하고,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3. 그러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이 저희들 안에 어떤 일들을 행하고 계시는지 확인하고, 믿음의 발걸음을 어디로 내딛어야 하는지 조사하고, 성령님의 내적 음성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4. 8월 한달 동안 이런 시간을 자주 가지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자리 공동체가 한 가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여호수아를 묵상할 때마다 주시는 마음(질문) 중에 하나는, 각 지파 별로 기업을 주셨으며, 그 경계를 명확하게 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계속 질문을 던졌습니다. “복음자리교회에게 주시는 기업과 그 경계는 어디이며 무엇일까?”

5. 오늘 제주시 이곳 저곳을 직접 발로 밟으며, 그곳에서 기도하며, 지난 3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광야가 끝났으니 이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 “믿음으로 나아가서 개척하라!”, “주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나아가라!”

6. 주님은 복음자리 공동체에게 새로운 시즌을 허락하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 일어나 취하고 믿음으로 싸워야 하는 시간들이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지체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두려워 하지말고, 주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