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왕국과 거듭남

2019년 5월 12일 주일 설교 동영상

말씀 : 요한복음 3:1~7
제목 : 하나님의 왕국과 거듭남
설교 : 이상준 목사(복음자리교회)

**이번 설교에 도움이 된 책은 짐 월리스의 ‘회심’입니다. 혹시 이 부분에 대해서 더 공부하길 원하시는 분은 리처드 피스의 ‘신약이 말하는 회심’도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2019. 01. 13 주일예배 설교

2019년 1월 13일 복음자리교회 주일예배 설교

말씀 : 마태복음 6:5~15

제목 :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설교 : 이상준 목사

2018.11.11 주일예배

날짜 : 2018년 11월 11일

말씀 : 요한복음 20:24~31

제목 : 도마의 의심과 고백

설교 : 이상준 목사(복음자리교회)

설교의 표절 (개인적인 추억)

오늘 새물결 플러스 출판사에서 정기 독자에게 보내는 네 권의 책을 받았다. 그 중에 제일 마음을 끌어 당기는 책이 하나 있는데, 스캇 M. 깁슨의 ’설교 표절로부터의 해방’(‘Should We Use Someone Else’s Sermon?’, Preaching in a Cut-and-Paste World)이다. 왜 이 책이 나의 마음을 자꾸 끌어 당기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A 목사와의 추억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우연히 A 목사의 근황을 SNS를 통해 알게 되었고, 오랜 만에 그의 사진을 보자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던 아픈 추억들이 올라왔다.

사실 설교 표절은 대부분의 목사들이 끊임 없이 싸우는 고질적인 문제일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단지 개인적인 문제을 넘어 한국 교회 목회 토양의 문제도 심각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너무 바쁘다는 것과 너무 예배(설교)가 많다는 것이다. 사실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가지고 그 많은 설교를 매 주마다 만들어 낸다는 것은 설교 천재가 아니고서는 아예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그것을 해내야 한다. 일면 “까라면 까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은 이런 목회 환경의 영향이 제일 크다. 물론 이것이 설교자 개인의 잘못된 행동에 어떤 핑계거리도 될 수 없다. 그러나 설교 표절의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으로만 다루어선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출구를 찾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한국 교회에서는 바쁜 목사가 능력 있는 목사라고 인정을 받는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목사는 늘 바뻐야 한다. 바쁘지 않은 목사는 능력이 없는 목사다. 늘 여기 저기에 불러 다니면서 말씀을 전해야 하고, 심방을 해야 하고, 주어진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 개척을 하고 매 주일 한 번의 설교문을 작성하는 것도 진액을 뽑아내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설교를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해야 하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말씀을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나누어야 한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설교의 질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고, 표절의 문제로 넘어갈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다시 A 목사 이야기로 돌아가자. A 목사는 웅변술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어릴 때 웅변학원을 다녀서 그런지 설교의 톤과 억양, 자세, 청중들을 사로잡는 기술(부흥사 기질이 다분이 있었다)에선 탁월했다. 더불어 기도회 찬양 인도를 뜨겁게 했고, 교인들 사이에 소위 영빨 있는 목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자신의 설교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는 늘 설교를 표절 했고, 인터넷에서 여러 편의 설교를 짜집기 했다. 심지어 표절한 설교문에 나오는 개인적인 예화까지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사용하였다. 그는 매번 그렇게 설교했고, 그런 행동을 전혀 고칠 생각이 없었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A 목사는 그런 설교문을 가지고 설교를 잘했다는 것이다. 교인들을 밀고 당기면서, 억양을 높이고 낮추면서, 속도를 빠르게 혹은 느리게 하면서, 재미 있는 이야기 또는 감정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중간 중간에 뿌려 가면서 교인들이 좋아하는(정확히 말하면 듣기에 좋은) 설교를 참 잘했다. 그리고 교인들은 그런 설교 좋아했고, 은혜를 받았다. 나는 그때 한 가지를 깨달았다. “짜집기와 스피치(전달)가 장땡이다!”

여전히 많은 목사들에게 표절이나 짜집기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저 강단에서 은혜스럽게 잘 전달되면 그것이 최고이다. 어쩌면 교인들도 비슷할지 모른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 설교가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선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저 강단에서 자신들 듣기에 좋기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설교의 내용(what)과 전달(how)만을 강조한 결과이다. 하지만 설교에는 설교자의 삶과 영성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설교자는 그저 설교를 하는 기계가 아니다. 설교를 잘 한다는 것은 듣기에 좋은 내용과 듣기에 좋은 방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설교와 강의가 다른 것은, 강의는 객관적인 사실과 내용만을 전달하면 된다. 하지만 설교는 설교자의 삶이 말씀 안에 녹아 들어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요리와 비슷한다.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지만 어머니의 ‘손맛’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어머니만의 레시피가 있다는 말이다. 설교도 그런 것이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설교문을 만들고 전달하는 모든 과정은 설교자라는 존재가 주체가 된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설교문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며, 남의 설교를 표절하거나 짜집기 하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설교자는 자신의 손맛이 들어간 음식을 성도들에게 먹어야 한다. 그것이 설교자의 책임이고 의무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그런 진지한 설교자가 더 많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