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외하는 목회

육지에서 마지막으로 섬겼던 교회 부목사로 부임하고 첫 번째 설교를 할 때이다. 선임 목사가 불러서 한 가지를 당부한다. 설교를 마치고 마무리 기도할 때 꼭! 담목과 담목 사모(큰 사모라고 불렀는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동의가 되지 않았다. 뭐 내가 부목이니 담목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담목 사모를 위해서도 기도하라? 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선임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답한다. 그냥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오기가 발동해서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발생했을까? 아무런 일도 없었다. 물론 그 분이 나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그것에 대한 나비효과는 매우 컸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목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목회? 인정 받고 성공하고 어느 정도 안정된 목회를
하려면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현실이다. 아주 엄연한 현실.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교인들eh 말만 하면 하나님 영광, 하나님 뜻, 하나님의 말씀을 외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냥 하는 말이다. 멋있으라고.

요즘 ‘성경적’이란 말이 가장 허무하게 그리고 의미 없이 들린다. 현실은 자신들이 왕이 되어 자신들의 뜻대로 한다. 그냥 포장만 ‘성경적’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요즘 목사인 것이 너무 부끄럽다. 이런 꼴을 보려고 안수를 받고 이 길에 걸었는지 하루에도 여러 번 내 자신을 자책한다. 나는 목사가 되고 싶어서 목사가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좋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이 길을 선택했고 지금까지 걸어왔다. 하지만 요즘은 너무 부끄럽다.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가? 누구의 기쁨을 위해 설교를 해야 하는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그러나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그 분을 늘 인식하며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그 분을 경외하는 것이다. 난 그렇게 배웠다. 그리고 그렇게 살려고 몸부림 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참 부끄럽다.

기독교는 원래 박해를 받았다!

시대가 악해져 가는 것이 아니다.
원래 하나님을 떠난 세상은 악하다.
더 타락하거나 덜 타락하지 않다.

단지 우리가 과거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시대를 보내고 있으며,
기독교에 대해서 우호적인 시대를 보냈다.
그래서 박해를 많이 받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는 그렇지 않다.
반기독교 정서가 팽배 해질 것이고,
절대 진리를 거부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뭐… 이미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기독교(개신교)가 배타적인 힘을 가지고 있던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그 이탈 현상이 심할 것이다.
그러니 그런 나라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가지고
마치 세상이 더 악해져 가는 것처럼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그렇지 않다.
기독교가 주요 종교들 중의 하나이지만,
기독교 국가는 절대 아니다. 한국은 다종교 사회이다.
한때 교인 수 천만을 자랑하기도 했지만 거품이 많았다.
그 거품에 취해서 마치 한국이 기독교 국가였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아니다. 그런 적 없다.

세상은 언제나 악하다.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거부하고 진리를 반대한다.
우리는 잠시 너무 평화로운 시대를 살면서
그 사실을 깜박했다.
마치 하나님의 왕국이 완성된 것으로 착각했다.

아니다. 박해와 핍박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아웃사이더들이고,
루저들이라고 조롱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정상이고 일상이다.

그러니 너무 당황하지 마시라. 분노도 하지 마시라.
우리는 그런 세상 속에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주님의 제자들이다.
반대, 박해, 거부, 거절,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삶이 우리의 삶이다.
그러나 너무 놀라지도, 낙심하지도 마시라.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주님을 고백하고 따를 것인가?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는 것을 멈추고
넓은 문, 넓은 길로 돌아갈 것인가?
매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목회에 정답은 없다

개척을 하고 만난 목회 환경은
머리로만 생각했던거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웠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도 많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도 다양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생기니
거의 모든 개척교회들이 어려웠다.
겉으로 보이는 문제들은 대충 비슷했지만
심층으로 들어가면 다 달랐다.
사람이 다르고, 대상이 달랐고,
그 안에서 생기는 역동이 달랐다.

누구는 하드웨어 때문에
누구는 소프트웨어 때문에
누구는 휴먼웨어 때문에
힘들고 어렵고, 실패와 도전을 반복했다.

하지만 정해진 정답은 없다.
목회에 성공한 분들이 무슨 세미나를 열고
자신의 경험들을 책으로 출판해서
마치 지니의 요술 램프처럼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될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 성공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이나 스킬이 아니다.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목회 신학과
성경이 말씀하시는 본질(핵심)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삶과 사역 가운데
풀어내는 순종과 성품과 관계가 중요하다.

그 다음 결과는 절대 사람의 몫이 아니다.
우리가 뭐라고 사람을 바꿀 수 있으며,
우리가 뭐라고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다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이상의 것은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하늘 아버지가 부르신 곳에서, 맡기신 영혼들을
최선을 다해, 겸손히 섬기는 것이다.
보내신 곳에서 복음을 포기하지 않고 나누며,
제자 삼는 사역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사역들을
감당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당장 없어 낙심할 순 있지만
그냥 묵묵히 한 방향으로 오랜 순종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된다.

부르심의 확인

오늘 신학 공부를 하겠다는 분을 만났습니다. 요즘은 이런 분을 만나면 가급적이면 하지 마시라고 권면을 합니다만, 이 분과는 아직 관계 형성이 부족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곧 기회가 되면 구체적으로 나눌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신 평소에 생각했던 ‘부르심’을 확인하는 두 가지 전통에 대해서 나누어 보겠습니다.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한다면 (1) 개인적이고 내적인 요소와 (2) 공동체적이고 외적인 요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이고 내적인 요소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개인의 경건과 기도, 결단에 맡기는 것입니다. 뭐 성경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개인적이고 내적인 사건이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그 부르심은 공동체 안에서 확인되고 점검되어야 합니다(신약의 교회론적 입장에서). 왜냐하면 그 부르심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목적지는 세상과 공동체를 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르심의 본질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도움이나 헌신이 필요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부르심은 공동체를 위한 것이고 세상을 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동체를 통해 부르심을 확인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간단하게 말하면 공동체의 동의와 지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그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일정 기간의) 특별한 과정을 통해 그것이 확인되고 점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예를 든다면, 적어도 복음전도의 열매가 있어야 하며, 영혼들을 돌볼 수 있고,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로 세워지는 열매들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교회 방식으로 설명한다면, 목장을 섬길 수 있어야 하고, 그 목장이 건강하게 재생산 되어 분가하는 열매들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속한 공동체는 그런 열매들을 확인해야 하고, 그 사람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지를 일정 시간을 통해 점검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공동체가 그리고 개인들이 그런 과정들을 무시하거나 점검하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부르심은 개인의 영역으로는 존재하지만 공동체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부르심은 개인의 은사나 지적 능력의 영역으로 전락해 버렸고, 사역은 공동체와 별개의 사건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부르심은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먼저는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부르심을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반드시 공동체 안에서 확인하는 과정도 거쳐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 그 사람이 진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 확인되면, 그가 속한 공동체가 그 사람을 안수하여 세워야 합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안디옥 교회입니다. 부르심은 절대 개인의 차원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동체를 통해서 점검되고 확인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