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를 다녀오며

일주일 정도 A국을 다녀오면서 B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더불어 C, D, E국에 대한 이야기도 여러 선생님들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한 가지 공통점은 어느 때보다 선교지의 상황이 급박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들 비자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물론 비자라는 것이 대한민국과 해당 국가와의 외교적인 관계 안에서 유동적으로 변화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만을 가지고 말하기를 쉽지 않지만(상호주의), 어떠하든 과거와는 다르게 많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한 가지 깊이 깨닫고 발견한 것은, 이제 선교 전략과 방향도 크게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장기 거주 선교사 중심의 선교 사역이 여러 가지 면에서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비거주 혹은 단기 거주 선교사). 둘째는 목회자 중심의 선교사 파송에서 전문인 중심의 파송으로 전환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선교 전략가들과 이론가들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제시되었던 담론들이다. 비거주 선교사, 전문인 선교, BAM(Business as Mission), 선교사 재배치, 한 곳으로 편중된 선교 사역 등등. 여러 가지 담론들이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

개인적으로 A국을 밟으며 “진짜 한계가 왔다”, “진짜 이제 선교지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하고 있다”라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선교 전략이나 방법은 여전히 후진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자 문제로 많은 선교사들이 여러 나라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새로운 출구 전략 하나 짜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것은 특정 선교단체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메이저 교단들이나 선교단체들의 반응과 현실은 거의 비슷하다. 현장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선교사와 그 가정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비자 문제는 일시적으로 어렵다가 다시 좋아질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앞으로 계속 어려운 방향으로 갈 것이다. 그렇다면 선교의 방향이나 전략 자체를 다시 짜야 하는 상황에 온 것이다. 이젠 장기 거주 선교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 솔직히 옛날처럼 선교지에 뼈를 묻는다는 개념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교통과 인터넷 등 여러 가지 기술적인 발달도 비거주(혹은 단기거주) 선교를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더 나아가 관문 국가(도시)를 중심으로 인접 지역 국가(도시, 종족)를 선교하는 방식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려면 팀 사역을 해야 한다. 교회 개척 사역, 양육/훈련 사역, BAM이나 NGO 사역 등을 담당하는 선교사 가정들이 어느 지역에 함께 살면서 주변 국가들을 네트웍 하면서 교회 개척과 현지 사역자 개발, 양성, 지역 사회 개발을 지속적이며 전략적으로 할 수 있다.

사도행전이나 서신서를 보면 이것에 대한 성경적인 모델과 케이스를 발견할 수 있다. 에베소서 4:11을 보면 다섯 개의 직분(네 개냐, 다섯 개냐의 논쟁이 있지만)이 소개되고 있다. (1) 사도 – 사역이나 교회 개척자, (2) 선지자 – 하나님의 말씀과 마음을 전하는 사역자, (3) 복음 전도자 – 구령의 열정으로 복음전도에 헌신된 사역자, (4) 목사, (5) 교사 – 삶(성품, 관계)과 말씀으로 영혼을 돌보고 가르치는 자. 더불어 바울은 천막을 제작하며 선교 사역을 감당했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같은 업종을 가진 자로 동역자였으며, 누가는 의사였고, 자생 옷감 장수 루디아도 바울의 후원자며 동역자였다. 오늘날로 말하면 그들은 전문인 혹은 BAM 사역자였으며, 비거주 선교 전략으로 관문 도시에서 복음 전도 및 교회 개척을 사역을 했다.

이렇게 하면 과도한 선교지 중복 투자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또한 장기 거주 선교사가 선교지 교회나 사역의 리더십을 장기 집권하는 부작용도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여러 가지로 선교를 향한 사고의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 과거의 방식과 방향으로는 선교지의 변화를 담아내기가 어렵다. 더 어려워지기 전에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사고의 전환를 시도하자. 진짜 패더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리고 이 말은 새로운 지도력과 하나님이 세우시는 새로운 지도자의 출현을 의미하기도 한다. 새로운 방향도 모색하지만 이젠 새로운 지도력도 함께 세워야 하며 그들을 통해서 새로운 사역들이 시작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만들어 주어야 하다. 제발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와 선교지에 뼈를 묻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이제 내려놓자. 국내도 그렇지만 선교지도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요즘은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아내가 차를 거의 사용한다. 그래서 어디를 가려고 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처음에는 뚝벅이의 삶이 매우 불편했지만 지금은 완벽하게 적응이 되었다. 어느 때는 나르시즘에 빠져 푸념을 늘어놓는다. 지난 5년 동안 번번한 예배당이 없어 주일마다 테이블과 의자를 셋팅했다가 접어야 했고(감사하게도 최근에 예배 공간이 생겼다), 사무실도 없어 커피숍을 전전하고 있으며, 교회용으로 사용하는 승합차도 없고(한때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성경공부나 어떤 나눔을 하려면 장사 안되는 (조용한) 커피숍을 찾아다녀야 하고 심지어 개인 기도를 하러면 동네 조용한 숲길이나 해변을 걸어야 하고, 소리를 내어서 기도하려면 딸들을 모두 학교에 보낸 다음 거실 구석에서 해야 한다.

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참 재미 있는 것은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예배당도 승합차도 사무실도 심지어 소리 내어 기도할 공간마저 없지만(없었지만), 그 없음을 통해 목회와 신앙생활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발견하게 되었다.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익숙한 것과의 이별이 사람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고, 불편함을 넘어 초라하게 만들 때가 자주 있지만, 그것을 통해 진짜 붙잡아야 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더 나아가 그 없음을 통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되었고,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게 되었다. 없음은 고난이지만, 그 고난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도록 만들어 준다. 만약 풍성하고 성공했다면 질문을 던지지도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모든 것을 다 갖춘 상태에서 개척을 하려고 하는 풍토에 대해서,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니 없음이 진짜 자신을 발견하게 하고, 본질을 찾아보게 해주는 순 기능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어쩌면 나를 포함해 많은 목사들이(개척자들이) 목사라는 타이틀에 속고, 건물이 주는 안정감에 속고,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속으며,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누렸던 것에 속아서 마치 자신이 그런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의 진짜 모습과 진짜 수준은 없을 때 드러나게 된다. 돈이 없고, 사람이 없고, 건물이 없고, 차가 없을 때 우리의 진면목이 드러나게 되고, 그것과 만나게 된다는 말이다. 개척자에겐 그런 만남이 필요하다. 그것을 통해 자신의 믿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는 것이 필요하단 말이다.

바로 그 때 아이러니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 없음이, 부족함이, 연약하고 나약함이 은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없음과 나약함과 가난함이 복이다. 이것은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절대로 복이 될 수 있다. 세상은 풍성해야 하고, 부요해야 하고,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복이고 성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가난함이, 없음이, 연약함이 복이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수님을 만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짜 복이다. 진정한 복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고, 예수님을 얻는 것이며, 예수님을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얻기 위해서 기쁨으로 가난함의 자리로 들어가야 한다. 연약하고 없음의 상황속에 처하게 될 때 감사해야 한다. 그 시간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놓칠 수 없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음성과 일과 성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때 가장 큰 오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니 잘 될거야, 성공할거야, 어떤 기적과 능력이 나타날거야, 재정적인 어려움들이 금방 해결될거야 등등 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그런 것이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말씀하시고 인도해 가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성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주 그 사람의 성품을 테스트 해 보십니다. 그 사람의 믿음을, 그 사람의 충성을, 그 사람의 사랑과 그 사람의 온유를, 하나님과 말씀에 대한 태도와 반응을 살펴보십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결과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과에 집착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을 따르고 섬기려는 마음보다는 그 결과를 통해 나의 어떠함을 드러내고 싶고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과 그 분의 음성에 대해서 말하지만 사실은 그 하나님을 통해서 자신의 명성과 성공과 안락함을 유지하고 성취하고 싶은 것입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지만, 더 깊은 동기는 하나님 보다는 자신이 더 주목받고 드러나길 원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를 비난하는 글이 아니라 제 자신이 그러했다는 것을 고백하는 글입니다. 교회 개척을 제안 받고 1년 가까이 하나님의 음성과 인도하심에 대해서 여러 채널을 통해 확인함으로 교회 개척으로 이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작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큰 시련이 닥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하나님께 매일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함으로 개척을 했는데 왜 이런 일들이 저에게 일어나는 것입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하나님의 침묵도 이해하기 어려웠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시작한 개척이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워야 하는지, 왜 통제되지 않는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길이니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매일 경험되는 현실에서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신 분과 같았습니다. 그때 저에게 조금씩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있었는데, 그것은 예배와 기도와 말씀 묵상하는 삶이 무너져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배워갈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시선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건이나 환경,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그 분의 성품과 본질을 더 알아가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더 집중하고 묵상하는 삶을 쉬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쉽게 우리가 기대하는 결과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에 이르지 못하면 예배나 기도의 시간을 잃어버리고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멈추어 버리고, 내가 정말 하나님의 음성을 바르게 들었는지 의심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하나님과 우리는 관점이 참 많이 다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결과나 벌어지는 상황, 사람들의 평가나 말에 예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성품에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대신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멋있는 사역을 하는지, 우리의 설교에 사람들이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많은 헌신들을 하고 있는지 별 관심이 없으십니다. 진짜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성품입니다. 왜냐하면 그 성품이 사역의 질과 결과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쉽고 빠르게 결과를 보기 원하고, 그 결과로 존경과 명성과 권력을 가지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환경과 사람이라는 도구로 우리의 성품을 다루시고 만지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치시고 말씀하시길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사역이 시작되고, 그것을 통해 사역의 열매가 맺혀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조금 더 확장하면, 많은 사람들은 일을 위해, 사역을 위해, 어떤 탁월한 결정을 위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과 관계하고,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 그리고 사람을 섬기기 위해 그 분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관계 한다는 것이고, 관계 한다는 것은 인격체와 인격체 사이에서 교류가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하나님은 지정의를 가지신 인격체이십니다. 물론 인간과는 본질 자체가 다른 분이시지만). 바로 그때 성품의 개발되고 변화가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성품은 관계를 통해서만 개발되고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그 분의 성품을 경험하게 되며, 그 분의 성품을 배우고 닮게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길(방법)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역사에 동참하게 됩니다. 사역이란 개념은 이때 시작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사역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그 분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의 성품이 다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본질이고 핵심입니다.

후기 최종 정리) 새로운 교회 개척의 패러다임

미국 남침례교단의 교회 개척에 대한 전략이나 방법 그리고 그런 훈련을 받은 목회자가 어떻게 한국이란 현장 속에서 교회 개척을 했고 또한 하고 있는지를 보고 듣기 위해 참석한 자리였지만 아쉽게도 시간상의 문제로 많은 내용들을 들을 수 없었다(너무 너무 아쉬웠다. 차라리 다른 순서들을 빼고 그 강사에게 시간을 더 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 길게 후기를 남길 만한 내용은 없다. 대신 오늘 오후에 페이스북에 남긴 짧은 후기들을 다시 정리하며서 느끼고 배운 점들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1. 사람이 먼저다!

짧은 강의를 들으면서 가장 강렬하게 나의 마음을 때렸던 것은 한 사람 개척자와 그 가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들의 문화와 마인드(mind)이다. 특히 개척자 한 가정을 1년 동안 훈련 시키기 위해 2억 가까운 재정을 투자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기본적인 사고 자체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유독 강렬하게 본인에게 다가온 이유는 한국 교회는 사람보다 땅(건물)과 돈을 더 중요시 하는 분위기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서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하냐고 질문을 던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나 건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정작 그 개척 교회를 이끌 사람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는 고민하지 않는다. 질문 하지도 않고 준비하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교회 개척 사례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다 비슷한 말들 뿐이다. 목이 좋아야 하고, 지하는 안 되며, 2층 이상도 안 된다. 요즘 어디가 뜨고 있고, 몇 년 후이면 그곳이 재개발되어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 예배당, 자모실, 식당, 교육관은 어떻게 꾸며야 하고, 음향 기기(스피커, 마이크)는 어디 제품이 좋고, 스크린과 빔 프로젝트는 필수이며, 가능하면 넓은 주차장을 확보해야 한다… 불라 불라… 온통 부동산과 건물과 그것을 마련하기 위한 재정에 대한 이야기들 뿐이다. 진짜 중요한, 아니 가장 중요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앞에서 열거한 그런 것들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금방 언제든지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사람은 순식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도 준비된 개척자로 세우기 위해선 엄청난 시간과 물질과 노력, 훈련이 필요하다. 진짜 사람이 먼저다.

비교)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 개척 그들이 생각하는 교회 개척
가. 위치
나. 땅
다. 건물
라. 시설
가. 사람(개척자)
나. 부부
다. 가정
라. 관계

2. 개척 교회의 출발은 개척자의 가정에서부터

강사는 교회 개척의 어떤 노하우, 기술, 왕도, 최신 트랜드 등등. 뭐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개척자 가정에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던져 보라고 말했다. (a) “자녀들이 부모가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b) “아빠와 엄마가 서로 사랑하고 있는가?” (c) “아빠와 엄마처럼 살고 싶은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모두 “예”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강사는 계속해서 낮아지는 출산률과 그 세대 자녀들의 낮은 복음화율(10대 복음화율이 4%, 낮게는 3%에 불과하다고 분석함)의 문제점을 언급했다. 현재 교회는 다음 세대도 잃어버렸고, 그 세대를 제자화 하는 일에도 실패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앞으로 한국 교회의 가장 고통스러운 문제점으로 부각될 것이다.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데 실패했다는 증거가 여기 저기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일학교의 문제 – 주일학교를 담당했던 전도사나 교사, 교재의 문제가 절대 아니다. 이것은 가정의 문제이다. 삶으로 신앙을 보여주고 전수해야 하는 가정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사는 개척자 가정, 더 정확히 말해서 개척자 부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거기에서부터 건강한 교회가 시작된다고 강조한다(강사는 정기적으로 부부만의 시간을 가질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그런 면에서 우리들을 되돌아 보면, 개척 사역의 어려움과 스트레스로 인해 깨어진 부부 관계도 많고, 망가진채로 방치된(사역에 바쁘다는 핑계로) 가정과 자녀들도 너무 많다. 소명과 헌신을 강조(강요)하지만 그 그늘에 가려진 상처와 아픔의 소리들은 외면하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교회를 개척하고 세우는 것의 시작은 건물이나 공적인 어떤 사역이 아니라 가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시 배워야 한다. 건강한 교회 개척의 시작은 가정이다. 행복한 부부 관계이다. 어떤 건물이나 프로그램이나 조직이 아니라 건강한 가정이다. 그 가정이 바로 교회이다.

3. 죄인 임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죄인들이 찾아온다!

오늘 들었던 강의 중에 가장 울림이 컸던 내용은 “자신이 죄인 임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죄인들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강사는 여러 사진을 보여주며 과거 어둠의 세계에서 살았던 사람들과 그들의 침례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그렇게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개척자 자신이 진심으로 죄인임을 인정하고 고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것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요즘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들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거룩해졌고 너무 고귀해졌다. 그래서 죄을 분별하기 바쁘고, 그것을 비난하고 정죄하기에 바쁘다. 죄인들을 비난하고 정죄하기에 바쁜 그 자리에 어찌 죄인들이 나오겠으며,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변화를 받으려고 하겠는가?

특히 교회 개척의 목적이(목표가) 기존 교인들을 끌어오기 위해서 위함이 아니라 비신자들을 만나고 신뢰를 쌓아 친구가 되고 그들에게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라면 우리의 이러한 고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멈추고 교회의 높은 문지방을 낮추는 일들이 필요하다. 율법적인 종교성을 벗어 버리고 자신의 삶을 정직하고 오픈 해야 한다. 똑같은 죄인이며 똑같이 연약한 인간임을 고백하며 삶의 공통분모를 만들어 가는 삶의 태도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거기에서부터 진정한 교회 개척이 출발할 수 있다. 멋진 시설이나 화려한 예배를 준비하여 시작하는 것이 교회 개척의 출발이 아니다.

성육신 하는 교회 공동체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깨어진 제자가 필요하다. 개척자와 개척되는 교회 공동체는 그런 깨어진 존재가 먼저 되어야 한다. 화려한 종교의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자가 아니라 자신을 정직하게 오픈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 용기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용납과 긍휼을 충분히 마시고 맛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요즘 한국 교회는 그런 사랑과 은혜보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마치 그들이 비난하는 그런 죄악들이 하나님의 은혜보다 강하고,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보다 능해서 당장이라도 한국 교회가 그 죄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다. 한국 교회는 그 죄악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은혜와 긍휼이 없어 망할 것이다.

정리와 결론

결혼을 하고 깨달은 것이 있다. 개척하며 담임목사가 된 후에야 알게 된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은 절대 자신의 경험 이상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건강한 가정에서 따뜻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건강한 가정을 꾸릴 수 없다. 사람을 세우는 사람 중심의 목회를 경험하지 못한 자는 생명을 살리는 교회 개척을 할 수 없다. 이론으론 배울 수 있고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렇게 살 수 없다. 지금 한국 교회에는 이론과 전략과 방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누리고 마시고 경험한 사람이다. 강사가 무척이나 부러운 이유는 자신이 말하는 것을 먼저 진짜 삶으로 누려보고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강단에서 사람과 생명 중심의 목회를 하겠다고 말하는 자는 많다. 그러나 진짜 그것을 살아내는 사역자는 너무 적다. 지금 우리에겐 아는 자가 아니라 누리고 경험한 자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