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할례를 통한 진짜 순종

1. 17절부터는 유대인의 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랑할 것들이 많이 있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고 있었으며, 율법을 따라 살았고, 그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며, 선악을 분간할 수 있었다(17, 18절).

2. 그래서 자연스럽게 눈먼 사람의 안내자로,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의 빛으로, 어리석은 자의 교사로, 어린아이의 선생으로 인정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방인들이 가지고 있지 않던 율법의 지식과 진리의 교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20절).

3.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알고 있는 율법의 내용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긴 하지만 자신은 가르치지 않았다. 도둑질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도둑질을 했다. 간음하지 말라고 하면서 간음을 했고, 우상에 대해서 심한 거부감을 가지면서 신전 물건들을 훔쳤다(21, 22절).

4. 한마디로 율법을 알고 있다고 자랑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목에 힘을 주어 가르치면서, 정작 자신들은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오히려 그들이 그렇게 거룩한 분으로 경배하고 예배하는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욕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23, 24절).

5. 그런 면에서 유대인들은 한 가지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어릴 때부터 받았던 할례에서 기인된 것인데,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진짜 유대인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할례를 행했다고 해서 율법의 모든 의무에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할례를 받았지만 율법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 할례는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25~28절).

6. 반대로 할례를 받지 않았지만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더 낫다는 것이다. 그들은 비록 몸에 할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 그래서 유대인이라는 육체적 표시는 없지만 – 율법을 지킴으로서, 진짜 할례가 무엇인지 진짜 유대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반문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7. 그런 의미에서 진짜 유대인이란 표시가 겉으로(육체적으로) 할례를 받았다는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문자적으로 주어진 율법을 배우고 알았다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짜 할례는 성령을 통해서 마음으로 받는 것이며, 진짜 칭찬(인정)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29절).

8. 이 말씀을 잠잠히 읽으면서 누구보다 한국교회와 나 자신, 우리 주변에 있는 교회 공동체와 교인들이 생각난다. 이 말씀의 첫 번째 원독자는 로마교회의 교인들이겠지만, 오늘 한국 교회의 교인들이 갖는 특징과 너무나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자랑한다. 수많은 대형교회와 교인들, 커다란 예배당과 엄청난 재정, 다양한 프로그램과 업적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세상으로부터 비난과 멸시를 당하고 있다. 마치 24절의 말씀이 그대로 들려지고 있는 상황에 놓여져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해 이방 사람들 사이에서 모욕을 당하는구나”

9. 마치 유대인들이 어릴 때부터 할례를 받고, 유대인으로서 율법 교육을 받으며 자라며 율법에 능통했지만, 그 율법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이방 사람들에게서 비난과 모욕을 받는 것처럼(그 비난과 모욕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것이다), 한국 교회 교인들의 삶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강조하고, 입 밖으론 수 많은 종교적인 언어들을 내뱉지만, 삶으로 살아내지 못함으로 인해 비난과 조롱과 멸시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10. 그때 유대인이나 지금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변화로 인한 진정한 순종인 것이다. 어떤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 어떤 자격이나 조건을 갖추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찾으시는 것은 성령님을 통해 받은 진정한 할례 – 중생과 거듭남 – 를 통해서 일어나는 참된 순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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