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율법의 관계

묵상한 말씀 : 로마서 7:1~13
나에게 주시는 말씀 : “그러나 지금은, 우리를 옭아맸던 것에 대하여 죽어서, 율법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자에 얽매인 낡은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6절)

1. 7장 1절부터는 다시 율법에 대한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다. 앞에서 다룬 율법의 문제는 의롭다함을 받는 것 – 구원 받는 것 – 과 율법과의 관계성을 살펴보았다면, 7장에서는 구원 받은 자의 삶과 율법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로마교회 안에 있던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다(“나는 율법을 아는 사람들에게 말을 합니다.”).

2. 율법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그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이다(1절). 가장 비슷한 예가 결혼인데, 어떤 여자가 결혼하여 남편이 있다면,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법적으로 그 남편에게 매여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2절). 이것을 다시 설명하면, 남편이 있는 여자가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다른 남자에게로 가면 간음을 범한 것이다(간음죄).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간음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3절).

3. 율법과의 관계도 동일하다는 것이다. 전엔 율법에 속해 있었지만(그래서 율법의 지배를 받았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남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됨으로 율법에 대해서는 죽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4절).

4. 율법의 지배를 받았을 때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맺을 수 없었던 이유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육신 안에 있는 죄의 욕정이 죄된 몸 안에서 작용해서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하기 때문이다(5절). 여기서 사도 바울은 매우 인상적인 설명을 한다. 율법이 죄의 욕정(sinful passions)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한다는 것이다(더 자세한 것은 7절 이하에서 살펴보자).

5. 하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옭아맸던) 죄에 대해서 죽었기 때문에 율법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문자에 얽매이는 낡은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님 안에 있는 자는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다(6절). 이것이 율법 안에 있는 자와 복음 안에 있는 자의 차이점이다. 문자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 그것을 인간의 힘으로 지키려고 하는 것이 낡은 정신이다.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사람에게는 성령님이 내주하시며, 그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새로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

6. 7절에서는 율법과 죄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율법에 대한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유대인들이 반발하고 반대할 것이다. “율법이 죄입니까?”, 그 질문에 대한 사도 바울의 대답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율법이 죄는 아니다. 그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율법의 기능이다. 율법에 비추어 보지 않았다면,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율법에서 “탐 내지 말아라”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탐심이 죄라고 하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7. 문제는 율법에 있지 않고, 인간의 타락한 마음에 있다. 더불어 율법에는 죄를 드러나게 할 뿐 해결할 능력은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죄가 계명을 통하여 틈을 타서, 인간의 타락한 마음 안에 온갖 탐욕을 일으켰다는 것이다(8절). 사도 바울은 이 이야기를 1인칭으로 설명하고 있다.

8. 율법이 없을 때는 내가 살아 있었지만, 율법이 들어온 이후로 죄가 살아나고 나는 죽었다. 율법이 주어진 목적은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는데, 도리어 나를 죽음으로 인도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것은 율법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죄에 있다. 죄가 율법을 통하여 틈을 타서 나를 속이고, 나를 죽였다(9~11절).

9.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12절).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이다.” 율법 그 자체는 선하고 거룩하다. 율법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진짜 문제는 타락한 인간에게 있고, 그 타락한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죄에게 있다. 율법은 죄를 죄로 드러나게 할 뿐, 그 죄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진 못한다. 그 결과 죄를 더욱 활성화 시키는 일들이 벌어진다.

10. 13절은 이 문제를 다시 설명하고 있다. 율법은 좋은 것인데, 그 좋은 것이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왔다는 말은 아니다. 이것을 정확히 말한다면, 죄가 그 좋은 것(율법)을 매개로 해서 인간에게 죽음을 가지고 왔다. 율법은 그저 그 죄가 얼마나 악하고 독한 것인지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11. 그래서 성경은 육신을 따라 사는 삶과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을 구분한다. 구원 받았다. 예수님을 믿는다. 교회를 다닌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육신의 힘으로) 종교적인 가르침이나 원리들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 것으로 참다운 신앙생활은 불가능하다. 오직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8장에 가서 이 점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지만, 7장에서는 육신을 따라 사는 것이 왜 필패 할 수 밖에 없는지를 사도 바울의 간증과 경험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진짜 신앙생활이 무엇인지를 다시 배워야 한다.

(Visited 225 times, 1 visits today)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