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와 율법

묵상한 말씀 : 로마서 7:14~25
나에게 주시는 말씀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25절)

1. 14절부터 사도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율법과 신자와의 관계를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여러가지 논쟁이 있어 왔다. 핵심은 과연 이런 갈등이 회심하기 이전인지, 혹은 이후인지에 대한 논쟁이다. 왜냐하면 죄의 강한 영향력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죄에 대해서 죽었기 때문에, 죄의 지배(영향력)에서 벗어났다고 선포했다. 그런데 여전히 죄의 영향력 아래 있는듯한 고백과 그것 때문에 겪는 갈등과 고민들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4절부터 천천히 그의 고백을 살펴보자(13절까지는 과거형으로 14절부터는 현재형으로 말하고 있다).

2. 사도 바울은 14절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율법이 신령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와는 반대로 자신은 신령한 존재가 아니라고 고백한다(“나는 육정에 매인 존재로서, 죄 아래에 팔린 몸입니다.”). 여기서 ‘나’는 이미 구원받은 자이다. 그런데 그런 ‘나’에 대해서 여전히 육정에 매인 존재로, 죄 아래 팔린 몸으로서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앞에서는 죄의 종에서 해방되었다고 말해 놓고선(6:6, 17~18, 22), 이제 와선 다시 죄 아래 팔린 몸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3.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개인적인 사도 바울의 고백으로 생각해야 하는가?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갈등과 고민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아니면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해야 하는가? 계속되는 흐름과 문맥을 보면, 여기서 ‘나’는 이미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며, 거듭난 그리스도인과 율법과의 관계를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이런 관점에서 14절을 다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나’는 이미 거듭난 사람이다. 둘째, ‘나’는 율법을 아는 사람이다. 셋째, ‘나’는 율법을 통해 구원을 받으려는 사람은 아니다. 넷째, 하지만 ‘나’는 율법을 통해 구원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려고 한다. 다섯째, ‘나’는 그것을 통해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여전히 ‘내’ 안에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율법은 신령하다. 그러나 그 율법을 지킬 수 없는 ‘나’는 다시 죄 아래 팔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5. 15절 이하에서는 이것을 좀 더 확대하고 있다. 15절을 보자.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마음 속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반대로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다는 새로운 소망과 소원이 자신 안에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 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 전에는 그런 소망이 없었다. 그런데 거듭난, 의롭다함을 받은 사도 바울 안에 새로운 소원이 일어났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6. 16절에서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율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공동번역) 무슨 의미인가? 자신 안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소망들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자신의 삶을 보면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율법은 선하다는 것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7. 그러면서 진짜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율법이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가 문제인 것이다(17절). 그러면서 자신 안에(속에) 곧 자신의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고백한다. 자신에게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18절). 그래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면,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반대로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행한다는 것이다(19절). 이것을 통해서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런 일을 행하는 존재가 자신이 아니라 자신 안에(속에) 존재하는 ‘죄’라고 말하고 있다(20절).

8. 우리는 이 고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3, 4, 5장을 통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고, 더 이상 죄의 지배 아래 살지 않는다고,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가르쳤는데, 이제 와서는 자신 안에 죄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고백하는 이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이런 고백이 사도 바울이 거듭나기 이전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거듭나기 이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그 앞에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죄에서 해방된 삶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설명했기 때문이다.

9. 여기서 핵심 단어는 ‘속’(in me)과 ‘육신’(my flesh)이다. 물론 두 단어는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거듭났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사랑하지만,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육신 때문이며,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 때문이라는 것이다(율법에 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육신’은 진정한 ‘나’는 아니다. 진정한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길 원한다. 하지만 또 다른 ‘내’가(육신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육신’은 무엇인고, 내 속에 있는 ‘죄’는 또 무엇인가?

10. 이런 질문들을 잠시 접어두고, 사도 바울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해 보자. 21절에서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갈등과 내적 씨름을 통해서 한 가지 중요한 영적 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 안에 두 가지 경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22, 23절을 보자.

11.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법과 또 다른 법이 사도 바울 안에 존재한다. 그래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것에 대항하는 또 다른 법이 존재한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죄의 법’이라고 부른다.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고 싶은데, 자꾸 죄의 법에 사로잡히는 자신의 삶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12. 사도 바울은 이런 영적인 씨름을 상당 기간동안 지속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자주 그런 씨름에서 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깊은 한숨과 탄식을 터뜨린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24절)

13. 계속되는 좌절,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자신의 삶, 차라리 그런 소원(소망)이라도 없다면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마음 속 깊은 곳에선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싶은 갈망과 욕구들이 올라오고, 매일의 삶 속에서 발견되는 결과는 정반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사도 바울의 마음 안에 밀려오는 좌절감, 실패감, 무기력은 너무도 크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14.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이 고백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사도 바울은 실제적인 성도의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된 구원과 그것이 성도의 삶에 적용될 때는 어떤 과정들이 필요한지를 자신의 처절한 경험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성화’라고 부른다. 죄와의 싸움은 거듭났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또한 거룩한 삶도 거듭났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노력과 결단만으로 그런 삶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우리의 안에 선한 의지와 동기부여가 있다고 해서 가능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실패와 좌절, 죄 아래 사로잡혀 가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5.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에 대한 답을 25절에서 제시학 있다. 그리고 25절은 자연스럽게 8장으로 안내한다. 마음과 육신,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 그 두 사이에 끼여서 고통하는 사도 바울, 그런데 그는 바로 앞에서 심한 갈등과 아픔과 고통을 호소하다가 25절로 넘어오면 감사를 드리고 있다. 그 비밀은 8장을 통하여 확인해야 한다. 아무튼, 사도 바울은 그 갈등과 고통을 통해서 거룩한 삶의 비결을 발견하게 되었다. 율법을 행하려는 선한 의지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그것을 뛰어넘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곤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지 8장에서부터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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