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완성과 종말론적인 삶

10-new-2-e1329596303874묵상한 말씀 : 로마서 13:8~14
나에게 주시는 말씀 :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어두움의 일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10b, 12b)

1. 오늘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8절에서부터 10절까지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완성(10절)이라고 말씀하신다. 11절부터 14절까지는 어두움의 일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12절) 말씀하신다. 그것이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성도의 자세라고 하신다.

2. 먼저 8절을 보면, 사랑의 빚 외에는 다른 어떤 빚도 지지 말라고 하신다. 비슷한 이야기를 로마서 1장 14절에 하고 있는데, 사도 바울 자신은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라고 고백한다. 여기서의 빚은 복음을 말한다. 두 구절을 종합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복음과 사랑에 빚을 진 자들이다. 그리고 그 복음과 사랑의 원금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그 빚을 하나님께 갚아야 하는데, 하나님은 그 빚을 자신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에게 갚으라고 하신다.

3. 우리는 여기서 복음과 사랑이 하나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복음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다. 죄인을 향한 사랑, 집 나간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복음의 시작이다. 그 잃어버린 아들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이 직접 인간이 되어 죄값을 치루신다. 아버지를 거부한 아들은 그 놀라운 사랑을 통해서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온다. 아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을 경험한 것이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그 사랑을 이제 아버지가 아닌 다른 이웃, 그 사랑을 알지 못하는(더불어 그 사랑을 함께 경험한) 이웃들에게 나누라고 말씀하신다.

4. 그런 의미에서 8절과 10절을 다시 보면,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다(whoever loves others has fulfilled the law, 8절). 10절에서는 사랑이 율법의 완성(therefore love is the fulfillment of the law)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이미 로마서 전반부에서 다룬 율법과 구원(믿음, 의롭다)의 상관 관계를 다시 보여주는 구절이다.

5. 우리는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 그렇다고 율법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할례(vs. 육체의 할례), 새언약(vs 옛언약), 십자가의 복음이 말씀하시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하는 삶이다. 구약에서는 타락한 죄인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율법을 준행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신약에서는 그 죄로부터의 완전히 해방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준행할 수 있게 된다. 신자 안에서 그 일을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다.

6. 그렇다면 어떻게 율법을 준행하고, 그 율법을 다 이룰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하면 율법을 준행하게 되고, 사랑하면 율법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9절이 그것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간음’, ‘살인’, ‘도둑질’, 탐심’은 모두 십계명의 두 번째 돌판 내용이다. 그런데 이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그것이 바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7. 여기서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자. 아니 십계명을 두 가지로 요약해 주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39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은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8. 복음에도 두 돌판이 있다. 첫 번째 돌판의 내용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이야기이다. 두 번째 돌판에는 그 사랑을 경험한 자가 이웃들과 나누는 사랑 이야기이다. 이것을 다시 마태복음 22장으로 연결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만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누리고 있는 사람만이 네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다.

9. 성경은 그것이 바로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씀하신다. 율법은 선하고 영적인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율법주의를 말하고 것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가 구원 받은 목적은 그 율법을 준행하는 것이다. 사실 여기서부터가 갈림길이다. 율법을 준행하느냐? 율법주의에 빠지느냐? 차이는 한 가지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고, 그것으로부터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율법을 준행하는 것이다. 반대로 과거와 동일하게 자신의 힘과 능력, 규례와 원칙들을 지키려고 한다면 율법주의에 빠지게 된다.

10. 11절부터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질 것을 말씀하고 있다. 주님의 재림과 심판의 때가 가까이 왔고, 그 시기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잠에서 깨어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11.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종말론적 신앙에 대해서 여러가지 오해를 가지고 있다. 오늘 말씀 12절 이하를 읽어보면 종말론적 신앙을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어두움의 일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는 것이다(12절). 방탕하지 않고, 술 취하지 말고, 음행하지 않고, 호색하지 않으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않는 것이다(13절). 오직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더 이상 과거처럼 육신의 일을 애쓰지 않는 것이다(14절). 성경은 이것을 빛의 삶, 낮의 삶이라고 하신다.

12. 더 이상 밤의 삶, 어두움의 삶을 살지 않는 것이다. 그런 삶을 청산해 버리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종말론적인 삶이다. 주님의 오실 때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삶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잘못된 종말론의 가르침에 현혹되지 말라. 굉장한 비밀을 아는 것 같고, 시대를 분별하는 것 같고, 성경의 깊은 비밀을 말하는 것 같지만, 성경은 그렇게 복잡하게 말씀하시지 않는다. 주님의 재림, 종말을 정말로 믿고 인식한다면 주님과 동행하며 빛 가운데 살아가라.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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