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의 정신

1. 구약 성경에 나온 십일조의 유래 중에 하나는, 오직 하나님과 성막(성전)을 섬기기 위해 택함을 받은 레위 지파를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다른 열한 지파처럼 기업을 분배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민 18:8 이하).

2.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매우 실제적인 분이시다. 레위지파가 하나님만을 섬기니 하나님이 책임지고 먹여살리시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으신다. 대신 십일조라는 제도(시스템)을 율법에 집어넣으신다.

3. 오늘날 사역의 현장은 어떠한가?(일부러 목회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믿음과 헌신을 강요하면서, 하나님이 채우시고 책임지실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어느 때는 하나님이 까마귀를 통해 먹이신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람을 통해 하신다. 그리고 제도(십일조와 구제)를 만드신다.

4. 하지만 사람들은 계속 믿음과 헌신, 기도만을 말한다. 평균케 하거나 필요를 채우는 것에는 관심이 별로 없어 보인다. 페이스 미션(faith-mission)과 무보수 목사로 칠년을 살아보니, 믿음만을 강조하는 우리 안에 허구가 많다는 것을 발견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이 되시지만, 하나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5. 그것을 하나님이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필요한 제도들을 만드시고, 그것을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오늘날 십일조가 존재해야 한다면, 이런 십일조의 정신과 목적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what) 그리고 “어떻게?”(how)라는 질문에 우리 스스로 답을 해야할 것이다.

6. 성경은 이것을 ‘공의’라고 부른다. 적어도 구약의 율법을 통해 십일조를 보면, 십일조는 공의의 문제이지 ‘복’의 문제는 아니다. 십일조만 하면 하늘의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다. 십일조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고 필요를 채우며 평균케 하는 일을 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참된 복을 주실 것이다.

7. 본질의 정신은 사라지고, 남아 있는 껍데기만을 가지고 찬성과 반대만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십일조를 찬성한다면, 그 가치와 목적에 부합하도록 사용해야 한다. 반대로 반대한다면,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약자들을 위한 돌봄과 채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그것을 위한 성경적인 제도들을 마련해야 한다. 그저 찬성을 위한 찬성, 반대를 위한 반대는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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