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성경적 의미

들어가는 말

지금까지 선교는 주로 개인이 복음을 믿고 구원받는 데에 치중하는 개인주의적 선교의 양상을 보여 왔었으며, 또한 해외에 선교사를 보내는 형태에 치중해 왔다. 이것이 현대 선교의 두 가지 문제점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 염두를 두고 성경이 말하는 선교는 무엇이며 또한 성경은 어떠한 ‘선교의 방식’을 제시하는 지 고찰해보고자 한다.

교회와 복음의 본질은 공동체이다. 교회와 복음의 본질이 공동체라면 선교 사역도 공동체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공동체와 선교를 논하기 위해서 우선 성경이 말하는 공동체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공동체와 선교의 연관성을 알아보도록 하자.

1. 공동체의 성경적 의미

가. 공동체의 시작

공동체란 무엇인가? 흔히 공동체는 성령의 강림으로 이뤄진 초대교회 공동체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공동체의 기원은 삼위일체이다. 공동체는 하나님의 존재방식이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삼위로 사역하시면서 동시에 한 공동체로 존재하신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한 분 하나님의 존재 안에는 세 가지 관계성이 있는데 이 관계성은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의 관계라고 말한다. 여기서 관계라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이나 피조 세계와 가지는 관계가 아니라 삼위 하나님간의 관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 관계성은 삼위 중 어느 한 분도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세 분은 다같이 상호관계 안에서만 존재하며, 영원하신 한 분 하나님 안에서 공통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곧 성부, 성자, 성령이 상호 관계 속에서 하나가 되며 한 위격의 존재가 다른 위격의 존재 안에 관계적으로 동참하면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삼위일체의 공동체는 인간들 속에 이러한 공동체를 창조하시려고 하셨다. 그리하여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다. 인간 창조도 삼위일체의 공동체적 사역의 결과물이었다. 창세기 1장에서 삼위 하나님의 공동체적 사역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되” (창 1:26~27)

사람을 창조 시 남자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여자도 창조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동체적 존재의 특성이 사람에게도 투영된 것이다. 삼위 하나님이 공동체이듯이 사람도 공동체로 존재하도록 만드셨다. 하나님이 삼위 공동체라면 사람은 남여 공동체인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사귀고 섬기는 공동체인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의 공동체와 사람의 공동체도 더불어 함께 교제하는 ‘신인공동체(神人共同體)’인 것이다.

나. 공동체의 파괴

그 러나 이 신인 공동체는 죄로 말미암아 파괴되었다. 사탄은 이 신인 공동체를 파괴하기 위해서 우선 상대적으로 취약한 사람의 공동체를 공략하였고 사람 중에서도 가장 연약한, 창조의 끝자락에 있는 여자를 공격대상으로 삼았다. 뱀으로 분장한 사탄이 여자에게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유혹하였을 때, 하와는 하나님께 뱀의 유혹에 대해 물어보지도 않았고 남편에게도 의논하지도 않았다. 당시 하나님은 사람과 매우 충만한 교제의 관계에 있었기에 얼마든지 사실 확인이 가능했던 상태였다. 여자 하와는 혼자서 사탄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창 3:6). 여기서 우리는‘죄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죄란 하나님과 무관하게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즉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중심주의’가 죄의 특성이다.

죄는 공동체를 파괴한다. 이 여자의 죄로 말미암아 신인 공동체는 총체적으로 파괴되었다. 죄는 먼저 하나님의 공동체와 사람의 공동체 사이에 관계가 파괴되었다. 사람의 공동체 자체에도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 아담과 하와는 죄에 대한 책임공방으로 한 몸의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창 3:12~13) 그 몸에서 난 형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므로 형제 사이의 관계가 파괴되었고(창 4:8~9), 이로서 부모 자식과의 관계도 파괴되었다. 또한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도 파괴되었다. 사람과 뱀과의 원수 됨은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 파괴이며, 인간의 죄로 인해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저주 받은 땅이 되었다(창3:18). 죄는 결국 대신, 대인, 대물적 관계의 총체적 파괴를 초래하였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의 파괴의 역사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사람이 영원히 함께 살고자 하던 신인 공동체는 파괴되고 하나님은 하늘에 인간은 땅에 거하는 분리된 관계가 시작되었다.

다. 공동체의 회복

그러나 하나님은 사탄의 공략과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한 신인 공동체의 파괴를 방치하지 않으시고 회복할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파괴된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세 가지의 비밀 프로젝트를 실행하셨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이 땅에까지 내려오신 것은 파괴되고 분리된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회복 사역의 핵심은 바로 공동체의 파괴를 가져왔던 죄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신 것이었다.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 되게 하소서”(요 17장)를 외치며 대제사장적 중보기도를 드리셨다. 이로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었다(엡 1:10).

두 번째 프로젝트는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다. 에베소서 4장 3절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라” 고 하면서 성령의 기본적인 역사가 깨어진 공동체를 하나 되게 회복하는 역사임을 말해준다. 성령은 죄의 문제를 해결 하신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깨닫도록 전달해 주시고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 되게 역사하시고, 또한 우리를 서로 하나 되게 하신다. 이것이 성령의 교제케 하는 역사이다.

세 번째 프로젝트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다. 에베소서 1장 22~23절에서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는 충만 이니라.” 교회가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는 충만이니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 구절은 공동체 회복의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정확한 뜻을 해석하기에 난해한 구절이다.

하 나님의 공동체와 사람의 공동체에서 떠난 가운데 인간의 공동체는 타락하고 피폐한 공동체가 되었다. 하나님은 사람의 공동체를 다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이 깃든 상태로 회복하시길 원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의 모든 충만함은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 안에 충만히 거하고, 성령 안의 하나님의 모든 충만은 그리스도의 몸에 충만하게 거하고, 마침내 그리스도 몸 안에 있는 모든 충만함은 온 세상 각처에 충만하게 임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정의한다. 그 그리스도의 몸은 만물을 즉 타락된 온 세상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채워 하나님과 교회와 세상이 하나로 회복되게 하는 ‘충만의 마지막 통로’인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 이란 말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하나의 유기체, ‘하나 된 공동체’란 말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한 몸 된 공동체이며, 교회가 그러한 온전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충만함이 교회를 통하여 온 세상으로 흘러 나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 교회가 진정한 공동체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충만함과 교회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교회의 단계에서 멈추어 버린다.

하 나님의 공동체 회복의 세 번째 프로젝트가 교회인 것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영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서 애초의 신인공동체를 회복하시기를 원하시는 의도인 것이다. 사탄은 신인공동체를 파괴하기 위해 가장 연약한 하와를 공격했듯이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공격한다. 교회가 그 본질인 공동체를 상실하면 교회는 사탄의 치명적인 공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의 능력을 가지고 세상의 타락한 공동체를 잠식시켜 나가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한 전략이다.

라. 공동체의 완성  

요한계시록 21장 1절에서  천년왕국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등장 한다. 이것은 바로 하늘의 영역과 땅의 영역이 새로이 ‘하나 됨’을 의미한다. 2절에서는 신랑과 신부의 이미지가 나온다. “거룩한 새 예루살렘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신랑과 신부의 하나 됨을 의미한다. 3절에도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 됨을 예고한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이처럼 새 하늘과 새 땅, 신랑과 신부, 하나님과 사람의 동거의 말씀을 통하여 ‘공동체의 완성’을 강력히 선언 하신다.

이것은 바로 애초의 신인 공동체의 회복이며 그곳이 천국이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죄로 파괴된 공동체의 회복이며 공동체의 완성은 곧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다. 이렇듯 성경은 공동체의 시작, 공동체의 파괴, 공동체의 회복, 공동체의 완성으로 이어지는 공동체의 역사이다.

2. 하나님의 경륜과 공동체

이 세상 만드시기 전부터 태초부터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함께 깊은 사랑과 사귐을 누리고 계셨다. 그 언젠가 삼위 하나님은 한 마음으로 무언가 계획을 세우셨다. 이 계획이 바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비밀의 경륜’이다(엡 3:9, 골1:25~26). 이 비밀의 경륜은 헬라어로 ‘oikonomia’로 표현되어 있다. 이 비밀의 경륜은 ‘하나님의 집 경영계획’을 뜻한다.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에는 서로 사랑하고 사귀는 가운데 충만한 생명과 사랑과 기쁨이 들끓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 사랑의 교제가 밖으로 더 확장되기 원하셨다. 그래서 사람을 만드신 것이다. 즉 하나님의 생명이 연장되고 확대되어 더 큰 가족을 이루는 계획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삼위 하나님이 하나이듯이 새로이 만든 사람들과도 하나를 이루고자 하신 것이다.

가. 경륜의 예정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부터 이미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집의 확대 가족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 놓으셨다. 그래서 바울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라고 표현했다.

이 하나님의 경륜(경영 계획)이 비밀스러운 이유는 창세전에 하나님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계셨던 것인데 어느 한 때가 되면 그 비밀스러운 계획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비밀의 경륜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났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엡 1:9).

나. 경륜의 실행

에 베소서 3장 9절에서도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나게 하려하심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골로새서 2장 26절도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비밀의 경륜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인가? 그 실체는 무엇인가? 에베소서 3장 10절은 뒤이어 그 실체를 밟힌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즉 그 실체는 ‘교회’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마음속에 품고 있던 비밀의 경륜은 사람의 창조에서 나아가 ‘교회’를 창조하는 것이다. 교회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가족이다. 이는 삼위 하나님의 교제가 확대된 ‘하나님의 확대 가족’(God’s extended family)이다. 이 확대가족은 바로 ‘공동체’를 의미한다. 에베소서 1장 5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골로새서 2장 26절에서는 ‘성도들’이라고 말하는데 단수 ‘아들’이 아닌 ‘아들들’, ‘성도들’의 복수형의 표현도 역시 교회의 공동체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은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실행된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교회가 ‘완전히 하나 된 공동체’를 이루는 하나님의 경륜을 지금 지상에서 맛볼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드러내신 것이 바로 교회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핵심은 ‘서로 사랑함’의 새 계명이다. 교회가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 가 될 때 이 땅에서 하나님의 경륜이 실행된다.

다. 경륜의 완성

요한계시록 21, 22 장에 가보면 완전한 공동체가 등장한다.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새 예루살렘 성은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신부요 아내’(계 21:9~10) 이다.  그리고 이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더 이상 성전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님이 성전’(계 21: 22) 이기 때문이다. 즉 성전은 공간, 시간,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의 온전히 ‘하나된 관계’ 가 성전임을 의미한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과 예수님과 교회가 모두 ‘하나’가 되었음을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교회가 완전히 하나가 되는 날이 온다. 이것이 창세전에 하나님의 마음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 곧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다.

이 처럼 하나님의 경륜은 공동체인 교회를 만들어 삼위 하나님의 교제권에 가입케 하시고 하나님과 예수님만 하나가 아니라 마지막에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교회가 ‘완전히 하나 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륜은 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김현진 목사님의 글을 인터넷에서 가지고 온 글입니다.

(Visited 3,716 times, 1 visits today)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