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클레시아와 가정교회

사도 바울의 에클레시아와 가정교회

가정교회를 논의할 때 소그룹 모임과 지역교회를 구별하여 정의해야 한다. 초기 기독교는 소그룹 가정교회들이 서로 네트워크가 되어 지역교회를 이루었고, 지역교회는 가정 교회들의 개별적인 가치를 인정하였다.

최근 초대교회 가정교회(오이코스 house church)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소위 가정에서 모였던 가정 모임(house church)과 지역 교회(에클레시아 local church) 사이에 분명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초대 교회에서 가정 교회의 중요성, 정의 그리고 그 역할만 강조해 왔다. 대부분 학자들은 가정교회가 예배를 위한 규칙적인 모임을 가졌고, 이런 가정교회 모임이 전도 중심적이었으며, 가르침이 있었고, 세례·성찬과 잔치가 베풀어졌고, 기도와 교제가 있었다고 동의한다. 그러나 가정 모임과 지역교회를 정의하는데 무엇이 소그룹이며 무엇이 대그룹인지 분명히 구별하지 못하는 혼돈을 불러일으켜 왔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는 소그룹 모임과 지역교회 모임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지역교회라고 볼 수 있는 에클레시아 교회가 가정교회 안에서 어떻게 함께 공존하였는지 살펴본다.

에클레시아 용어의 정의 사도 바울은 헬라의 시의회를 의미하는 에클레시아를 교회라는 뜻의 용어로 사용하였지만 사실 그 단어는 원래 정치적인 용어였다. 고대 헬라 도시 국가(폴리스) 의회를 가리키는 말이었던 에클레시아는 사도행전 19장 39절에서 에베소 시의회가 지니는 법적인 집회를 가리키기도 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히브리어로 ‘카할’은 백성들의 모임과 정치적 단체(body)를 의미한다. 헬라어 구약 성경인 셉투아진트(the LXX)는 하나님의 총회를 에클레시아로 번역한다(신 9:10; 23:3; 사 21:5,8; 미 2:5).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회중인 에클레시아는 땅에서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그 은혜와 진리를 보존하며, 모든 민족에게 야웨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하여, 영광과 진리와 은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였다.

사도 바울의 에클레시아인 교회는 세상의 미신 종교와 종교 의식이 전혀 달랐다. 1세기 당시 많은 종교 사상과 이방 숭배 의식 중에서 예수 운동은 이 종교적 용어인 에클레시아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그들의 공동체가 다른 세상적 모임과 종교 사상과는 전혀 다른 공동체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신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교회로 사용된 하나님의 에클레시아가 유대인의 회당(쉬나고게)과 다른 공동체임을 생각하며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에클레시아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회당은 유대인들이 건물 중심으로 모였고, 회당이란 이름은 유대인의 모임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는 건물 중심으로 모이던 유대인의 공동체와 다른 공동체임을 나타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1세기 헬라 도시의 시의회인 에클레시아는 로마 황제 숭배에 열을 올린 로마 황제와 제국주의 숭배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로마 황제는 헬라 시의회를 지원하고, 헬라 시의회는 황제를 신으로 숭배함으로써, 충성을 맹세하는 하인과 보호와 수혜를 제공하는 황제 간의 관계를 맺었다. 사도 바울의 공동체인 에클레시아는 헬라 도시 시의회인 에클레시아와 유대인의 회당과 다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임을 차별화하고자 하였다. 사도 바울의 공동체인 에클레시아는 로마 황제 숭배에 지대한 공헌을 하던 헬라 도시의 시의회인 에클레시아와 분명히 다른 공동체였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지향했던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인 에클레시아는, 로마 제국으로부터 받는 지원과 후원 관계에 열을 올린 헬라 도시의 시의회인 에클레시아(행 19:39;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단할지라)와 건물 중심으로 모이는 유대주의 회당과는 다른 새로운 하나님의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에클레시아라고 부르면서, 로마 사회가 계급 사회로서 불평등 계급 사회였다면, 예수를 믿는 하나님 백성의 사회적 계급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새로운 에클레시아에 존재함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가정교회와 지역교회의 정의 가정교회는 소위 가정집(오이코스)에서 소그룹으로 모였던 그리스도인의 모임이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말할 때 지역교회인 에클레시아와 가정에서 모이는 가정 모임, 소위 가정교회를 구별하여 사용한다. 헬라어 오이코스와 오이키아는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셉투어진트에서 사용되며, 히브리어로는 집의 빌딩과 장소라는 의미로서 가정 또는 가족을 의미한다. 용어 오이코스는 하나님의 집인 성전 또는 지성소의 의미를 내포한다. 용어 오이코스가 하나님의 공동체를 의미했을 때에는 하나님의 가족과 가정을 의미했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개념에 따라 오이코스는 노예들을 포함했는데 공동체로서 가정은 교회 구성원들의 가장 작은 기초와 공동체의 단위였다. 신약 성경에 언급된 가정교회들은 집을 만남의 장소로 사용했다(행 11:14; 16:15, 31, 34; 18:8; 고전 1:16; 빌 4:22; 딤후 1:16; 4:19). 복음은 이 가정교회를 통해 확산되었고, 주님의 성찬도 이루어졌다(행 2:46). 로마의 가정집은 로마 양식으로서 큰 홀을 가진 집이었고, 아래층에 위치한 아파트 형식의 다세대 주택을 오이코스라고 불렀다. 대그룹인 지역교회는 가정교회가 지역교회로서 대그룹으로 모였던 모임으로 정의한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소그룹이 아닌 지역 공동체 개념의 교회인 에클레시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사도 바울은 헬라 시의회인 에클레시아와 ‘경쟁적인 개념’으로서, 온 하나님 백성과 ‘지역 공동체’ 개념의 에클레시아란 용어를 사용하였다(살전 1:1; 고전 11:18; 16:1, 19; 고후 8:1; 갈 1:2; 살전 2:14). 큰 집을 가지고 있는 호스트의 집에서 드려지는 대그룹인 에클레시아는 가정교회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지며, 동시에 소위 지역 교회로서 가정교회 전체가 가정집의 큰 홀에 모여 성찬과 가르침과 기도회, 그리고 예배를 드렸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로마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집에 있는 교회(롬 16:5), 라오디게아교회(골 4:15, 눔바의 집에 있는 교회),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몬 2), 고린도교회 가이오 집에 있는 가정에서 모인 교회만을 에클레시아라고 부른다. 이 ‘카토이콘’이란 표현은 모임의 ‘지역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이었다. 예를 들어 로마서 16장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집에 있는 교회는 다른 그룹들과 달리 노예들과 아이들을 포함한 다양한 계층이 한데 어우러져 교회를 형성하였다.

로마서 16장의 다른 그룹들은 각자 그들의 후원자가 제공하는 전셋집에서 모이는 소그룹이었지만 이 그룹들을 교회란 용어인 에클레시아를 사용하여 부르지 않는다. 오직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인도하는 모임만을 교회인 집에 있는 에클레시아라고 부른다. 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집에 모이는 에클레시아는 서로 다른 인종과 계층들, 그리고 아이들과 노예들이 함께 모이는 모임이었다. 따라서 소그룹인 가정 교회만을 따로 에클레시아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따라서 필자는 바울의 교회인 에클레시아는 그룹인 가정에서 모이는 모임과 그 모임이 모여 지역 교회인 에클레시아를 이루었다고 본다.

사도 바울의 에클레시아: 소그룹 모임(오이코스)과 대그룹 지역 교회(에클레시아)의 두 날개를 가진 교회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는 가족이 중심이 된 가정교회와 그 가족, 또는 가정교회를 주축으로 도시 내의 여러 가족이나 가정교회가 모인 지역교회로 구성되었다.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가족 또는 가정은 가장, 그의 남자 계보의 가족들, 자유인들 그리고 노예로 구성되었다. 크리스천 가정이나 가 교회는 집주인과 자유민 노예들로 구성되었다. 가정교회 모임은 개인의 집에서 모인 크리스천 그룹이었다.

그러나 지역교회는 마을이나 도시와 같은 지역에서 모인 모든 그리스도인을 구성한 교회였다. 만약 특정한 지역에 오직 한 교회만 있었다면 지역교회와 가정에서 모이는 모임은 지역교회이며, 동시에 가정에서 모이는 같은 그룹을 말한다. 어떤 지역에서 ‘온 교회’라는 표현과 ‘지역 교회’란 표현은 같은 의미가 될 것이다. 보편 교회 또는 우주적인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용어다. 사도 바울이 지역과 도시를 언급한 것은 지역교회를 지칭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겐그레아에 있는 교회’(롬 16:1), ‘고린도에 있는 지역 교회’(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지역 교회’(고후 1:1), ‘라오디게아에 있는 지역 교회’(골 4:16), ‘데살로니가에 있는 지역 교회’(살전 1:1; 살후 1:1)가 그 예다. 개인 후원자가 장소를 제공하는 집(오이코스)에 있는 교회들(에클레시아)이 존재했다. 로마 교회(롬 16:5,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집에 있는 교회), 라오디게아교회(골 4:15, 눔바의 집에 있는 교회),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몬 2), 고린도 교회(가이오 집에 있는 교회)가 이에 해당한다. 이 집에 있는 교회들은 온 가정교회가 함께 모이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 집에 있는 교회는 지역교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집에 있는 교회(롬 16:5), 눔바의 집에 있는 교회(골 4:15),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몬 2), 가이오 집에 있는 교회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지칭하는 가정에서 모였던 가정교회를 지역교회로서의 에클레시아라고 분명하게 부르지는 않는다. 가정에서 모이는데 온 지역교회가 모이는 모임 장소를 제공하는 주거 공간이 있는 장소의 경우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을 에클레시아라고 부른 것 같다.

따라서 지역교회 개념이었던 에클레시아가 가정에서 모였지만 이 에클레시아의 기능은 지역교회 개념이었고 모든 가정교회들이 한 장소에서 모였다. 고린도교회에서는 이 집에 있는 교회들이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최소한 1개의 지역교회가 존재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사도 바울은 소그룹인 가정교회가 집에서 모였지만 가정교회는 지역교회에 속하여 함께 연합되기를 원했다.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가정교회는 하나님의 권속(household of God)이며 그들 건물마다 함께 지어져 성전이 되어 가야 한다고 권면한다(엡 2:19~22). 따라서 개인 가정교회는 독립체로 인정되지만 함께 지역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연합하고 서로 연결되어 지역교회를 이루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 로마에 있던 지역교회인 로마교회는 가정교회들이 독립되어 서로 모이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실제로 가정교회가 모여 지역교회가 되기를 바라던 동기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장에서 장황한 인사말로 그들에게 편지한 이유는 가정교회가 함께 모이는 지역교회로서 서로 연합하기를 바라는 의도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지역교회 안에 있던 가정 모임들이 서로 연합하고 유기적 관계를 맺도록 머리와 몸의 비유를 들어 서로 불가결의 관계임을 강조했다(롬 12; 고전 12). 따라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가정 모임들이 서로 다른 지도자를 선호하고 독립된 사고를 갖는 파당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는 몸과 머리의 비유를 사용하여 가정 모임이 독립된 유기체가 아니며 고린도교회인 지역 교회 속에서 존재하며 서로 연합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보와 가이오에게 세례를 주었다(고전 1:14).

사도행전에 의하면 그리스보는 회당장으로서 “그의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었다고 했다(행 18:8). 이것은 그가 자신의 집을 가정 모임 장소로 제공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가이오는 로마서에서 ‘온 교회의 식주’(롬 16:23)로 소개되었다. 이것은 가이오의 집이 가정교회로 사용되었으며, 때때로 전체 교회의 집회 장소로 제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스데바나의 가족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전 16:15). 고린도에는 여러 가정 모임이 연합하여 지역교회인 고린도교회를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린도에는 6~10개의 가정교회가 존재했다고 본다. 그것은 그리스보의 집(행 18:8), 스데바나의 집(고전 1:16; 16:15~18), 글로에의 집(고전 1:11), 가까운 겐그레아의 뵈뵈의 집(롬 16:1~2), 에라스도의 집(롬 16:23),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고전 16:19), 가이오 집(롬 16:23) 등이다.

1세기 당시 부자의 주택은 30~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뱅크스(Banks)는 고린도에 있는 ‘온 교회’는 고린도에 더 작은 가정교회가 있었다는 것을 가정한다고 지적한다. 가정교회가 온 교회에 있었고 그 가정교회들이 분리되어 존재하였다는 것은 아니다. 고린도 교회는 한 장소에서 지역교회로 모였다.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는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고전 11:18).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을 말하면”(고전 14:23). 로마서 16장 23절에 온 고린도교회의 식주(host)인 가이오를 언급한다. 가이오는 사도행전 18장 11절의 디도 유스도(Gaius Titus Justus)로 로마 시민권을 가진 부유한 귀족 출신이든지 아니면 노예에서 해방된 자유민일 것이다. 그의 라틴 이름은 키케로와 로마 시인 호라스가 언급한 명문가인 티티안 가문(Titian family)일 것이다. 대부분 주석가들은 가이오가 그 당시 주후 49~54년에 로마로부터 그리고 여러 지방에서 고린도로 오는 피난민 크리스천과 유대 크리스천들에게 숙식을 제공했을 것이라고 보고, 한 집에 고린도교회가 다 모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고린도에 있는 온 가정교회가 한 가이오 집에 모이는 특별한 모임이 가이오가 호의를 베풀면서 가능했다고 보는 것도 본문에 적합한 해석이다. 한 집에서 고린도의 모든 가정교회가 모였다면 비좁았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자주 모이지는 못하고 고린도의 온 교회가 가이오 집에 특별한 경우에 모였다고 가정할 수 있다. 가이오가 온 고린도교회의 호스트였다는 표현에서 ‘온’(whole)이란 표현은 고린도에 있는 더 작은 가정교회가 존재했고 그의 집에서 넘치는 신자의 숫자 문제 때문에 규칙적으로 모이지 못했다는 추론을 해 볼 수 있다. 고린도의 가이오와 같은 집에서는 온 도시의 가정 모임이 함께 모여 기도회, 가르치는 모임, 그리고 성찬 모임이 열렸을 것이다.

결론 사도 바울에게 교회는 소위 가정 교회 모임으로 시작하였지만 인종과 계급을 초월한 하나님의 에클레시아인 지역교회로 구성되었다. 이 집에 있는 교회들은 온 가정교회가 함께 모이는 장소이며 지역교회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가정교회를 논의할 때 이 집에 함께 모이지 않았던 더 작은 규모의 집에서 모인 모임은 소그룹 모임이었으므로, 이 소그룹 모임과 지역교회의 모임인 지역 교회를 구별하여 정의해야 한다. 초기 기독교는 소그룹 가정교회들이 서로 네트워크가 되어 지역교회를 이루었고, 지역교회는 가정교회들의 개별적인 가치를 인정하였다. 로마 제국의 박해로 인해 가정에서 모이던 1세기의 상황을 자유가 보장된 현대 사회와 교회에 문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원리와 원칙은 지역 교회의 역동성을 위해 적용될 수 있다. 그 내용으로서 지역 교회 안에 있는 소그룹 모임인 가정 모임은 내부적으로 형제 사랑과 공동체적 교제의 풍성함을 제공할 수 있다. 외부적으로는 가정에서 모이는 소그룹이 불신자 전도를 위한 전도 중심적 공동체로 활용되어야 한다.

홍 성 철 고려신학대학원(M.Div.)과 트리니티웨스턴대학교(Th.M.)에서 공부하고 영국 웨일즈대학교에서 신약학으로 철학박사학위(Ph.D.)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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