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에 대하여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2-3)

여기서 ‘묵상’이란 말과 ‘즐거워하다’라는 말에 대해 조금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묵상은 조용히 앉아서 도를 닦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동양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묵상’이라는 말에 명상을 떠올립니다. 명상은 그냥 욕심을 비우며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적인 묵상은 다릅니다. 이는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묵상하는 것입니다. 켄 가이어는 묵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묵상하다’라는 히브리 단어는 ‘중얼거리다, 나지막히 소리 내다’라는 뜻이다. 비둘기가 정답게 ‘구구’하는 소리, 사자가 저음으로 으르렁 거리는 소리, 하프의 감미로운 음악 소리 등에 사용되는 단어이다. 말씀을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 성경을 묵상하는 이들의 습관이었다. 그 과정에 말씀을 입으로 말하게 되는데, 그 낮은 목소리가 꼭 중얼거리는 소리처럼 들릴 때가 많았다. (켄 가이어, 묵상하는 삶, p.104-105)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라고 하신 말씀 속에 히브리적인 묵상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즉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말씀이 우리의 입에 젖어들고, 우리의 언어가 되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의 생각이 가슴으로 내려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존재의 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묵상할 때 중요한 것은 말씀을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즐거워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켄 가이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시편 1편 2절의 ‘묵상하다’라는 말과 나란히 등장하는 ‘즐거워하다’라는 말을 잘 보라. 이 두단어가 짝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묵상의 과정에서 머리와 가슴이 둘 다 반드시 필요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무의 수액과 목질 섬유처럼, 섬유는 없고 수액만 있으면 형체가 없는 생명이 된다. 수액은 없고 섬유만 있으면 생명 없는 형체가 된다. … ‘묵상하다’라는 말과 같이 이 단어(즐거워하다)에도 재미있는 뜻이 있다. ‘들뜬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인다’는 뜻이다.(켄 가이어, 묵상하는 삶, p.105)

말씀을 즐거워 한다는 것은 말씀을 읽을 때, 들을 때, 암송할 때, 묵상할 때 우리의 마음이 들뜬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말합니다. 들뜬 마음은 기대에 찬 마음입니다.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려고 하면 마음이 들뜨는데, 들뜬 마음이라고 해서 호들갑 떠는 마음은 아닙니다. 들뜬 마음이면서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말합니다.

묵상의 맛을 보기 위해 머리에 있는 말씀이 가슴으로 내려 올 때까지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을 사로잡고, 마음을 사로 잡을 때까지 묵상하십시오. 말씀이 당신의 피에 흐르고, 당신 존재의 한 부분이 될 때까지 묵상하십시오. 묵상이 깊어지면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묵상을 하면 깨달음이 임하고 말씀의 세계가 열립니다. 감화를 받게 되고,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그 때 지나간 과거가 재해석되고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생각과 태도가 변화되고 비전이 생기며, 인생이 열리는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미움이 변하여 사랑이 되고, 부정적인 사람이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축복을 경험합니다. 두려움이 변하여 기도가 되고, 탄시깅 변하여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깊이 묵상하면 그 말씀이 우리를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맙니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말씀 묵상이 깊어지면 기도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말씀 묵상과 기도는 같이 갑니다. 예수님도 말씀과 기도가 함께 해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켄 가이어는 묵상과 기도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줍니다.

말씀을 읽되 묵상이 없으면 진수성찬이 차려진 식탁에 앉아 음식을 쳐다만 보고 먹지 않는 것과 같다. 말씀을 묵상하되 기도로 반응하지 않으면 음식을 씹기만 하고 삼키지 않는 것과 같다.  영혼에 양분을 섭취하는 방식은 육체에 양분을 섭취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우선 식탁에 앉아 음식을 한 입 베어문다. 다음 씹는다. 그 다음 삼킨다. 그래야 한 입 한 입 식사가 소화, 흡수될 수 있다. 영혼에 양분을 흡수함에 있어 이것은 자연스런 과정일 뿐 아니라 필수적인 과정이다. (켄 가이어, 묵상하는 삶,  p.104)

말씀을 읽었다면 묵상해야 합니다. 묵상하되 기도로 반응해야 합니다.

_강준민 , 지혜와 영적 성숙, p.163-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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