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의 핵심원리

제자훈련 운동의 흐름을 관찰하면서 앞서 말한 대로 이론적인 배경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이제 그러한 배경을 가진 제자훈련 운동의 핵심이 되는 원리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 사회에서든 교회에서든 영향력을 끼치는 운동들을 보면 무언가 기존의 것과는 다른 독특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운동의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핵심이 되는 원리를 빨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자훈련 운동도 예외는 아니어서 교회 역사에 나타났던 여러 운동과 공통적인 면과 색다른 면이 혼합되어 제자 훈련 특유의 강조 점들을 가지고 있다. 지역 교회 속에서 제자훈련을 시도하려는 목회자들은 바로 이런 핵심 원리를 발견해서 그 강점을 수용하면서 약점을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자훈련 운동의 핵심이 되는 원리를 다섯 가지로 요약 정리한 후 이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를 해보려고 한다.

Ⅰ. 재생산을 통한 증식(Multiplication by reproduction)

지금까지 제자훈련을 해오는 사람들이 기존 교회의 교인이나 목회자들을 향해 도전을 할 때 가장 먼저 그리고 힘있게 강조하는 제자훈련의 핵심은 재생산에 따른 증식을 통한 복음 화이다. 제자훈련에 관한 대부분의 책들은 복음 화를 제자훈련의 기본 동기로 말하면서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해오던 복음 전파 방식의 비효율성을 지적하고 증식이란 방법을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증식의 원리와 이를 적용하는데 따르는 문제점을 바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1. 증식의 원리

전통적으로 복음 전파는 사명을 받은 한 사람이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한 사람씩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래서 단번에 수 천명을 회심시키는 부흥사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으로 생각해왔다. 지금까지 많은 위대한 부흥사들의 전도로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다. 제자훈련을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전도 방법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들의 전도가 불충분하고 또 비생산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런 산수 급수 적인 증가에 비해 기하 급수 적인 증가를 가능하게 하는 제자훈련을 전도의 새로운 방편으로 제안했다.

여기 하루에 1000명씩 전도하는 전도자와 1년에 한 사람을 제자로 키우는 사람을 비교해 보자. 전자는 불가능해 보이고 후자는 아주 쉬워 보이지만 일단 이 둘을 가정하자. 1년 후에 전도자는 365,000명의 신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데 비해 제자훈련 자는 자기를 포함해서 2명밖에는 얻지를 못한다. 2년 후에 전도자는 730,000명의 신자들을 얻는데 비해 제자훈련 자는 4명의 제자를 확보하게 된다. 3년째 되는 해에는 전도자는 365,000X3=1,095,000명을 전도하게 되고 제자훈련을 하는 사람은 23=8명의 제자를 얻게 된다. 초기 몇 년간을 비교해보면 제자 훈련자가 얻게 되는 사람의 숫자는 전도자가 얻는 사람의 숫자와 비교가 안될 만큼 보 잘 것이 없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계속 사역을 하다 보면 20년 정도가 되면 제자 훈련자가 확보한 제자의 숫자가 전도자가 회심케 한 신자의 숫자를 능가하게 되고 그 후로 제자의 숫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40년이 되기 전에 세계의 모든 인구가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까지 된다. 이것이 배가와 증식의 차이이다.

제자훈련은 바로 이 차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전도 방법이다. 이런 과정에 얻게 되는 사람들의 영적인 자질의 차이는 말하지 않더라도 숫자 면에서 엄청난 반전(反轉)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제자훈련의 매력의 핵심이다. 물론 훈련의 결과가 이론적인 계산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그랬더라면 세계 복음 화는 이미 완성되었을 것이다)이 수학적인 계산은 세계 복음 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줄 수 있다. 우선 이런 식의 사고는 성경 적인 근거와 함께 실제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면에 강점이 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명령에 따라 인구가 증가되었는데 이것은 영적인 인구 증가에도 적용이 될 수 있다. 마치 야곱의 열두 아들이 증식을 해서 400년 만에 70명에서 수백만이 되었듯이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도 같은 원리를 따라 증식을 해서 지금 수억의 제자들이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증식은 주님의 창조원리를 따라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제자훈련의 기본원리인 것이다. 이 원리를 통해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되어 제자를 삼는 사역을 해온 많은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바로 이 원리가 예수님이 땅 끝까지 이르러 그의 증인이 되고 세상 끝 날까지 제자를 삼으라고 부탁할 때 그가 가지고 있었던 기본 원리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 증식을 위한 조건

증식의 원리는 언뜻 보면 아주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그 결과를 보기 위해서는 인내와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문제 점(?)이다. 앞서 보았던 대로 증식을 통한 열매가 눈에 띄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교회를 막 개척하고서 성장과 부흥을 기대하는 목회자들에게 이와 같은 기다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제자훈련을 받는 교인들이 답답해 할 것이며 당장 눈에 띄는 열매가 없기 때문에 안팎의 압력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그러는 가운데 전통적인 방법으로 돌아가려는 유혹과 싸우면서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한 사람을 재생산할 정도로 만들어야 하므로 처음 시작할 때 열의로 말미암은 과욕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올해 안에 모든 교인을 혹은 모든 제직을 제자로 훈련시키려는 목회자는 결코 증식이 주는 열매를 맛볼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증식은 영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제자로 양육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철저한 훈련을 통한 양육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증식이란 개념은 무의미해져 버리고 만다. 그러나 이런 조건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바로 이것들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나갈 일꾼들이 지니고 있어야 할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조건은 결코 증식의 원리의 약점이라기보다 오히려 이 원리를 주님의 뜻과 하나되게 하는 요소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목회자들이 이런 요소들을 갖추게 될 때 증식의 원리는 교회 안에서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Ⅱ. 양육(Nurture/Follow-up)

사람이 자손을 낳아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서는 재생산을 할만큼 육체적으로 성숙되어야 한다. 재생산을 통해 증식을 하기 위해서는 양육이 필수적인데 똑같은 원리가 영적인 증식에도 적용이 된다. 한 사람이 영적으로 또 다른 사람을 낳을 수 있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양육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양육은 증식에 이어 제자훈련의 두 번째 요소가 된다.

1. 양육의 다양성

양육이란 새 신자의 신앙에 있어서 기초를 닦는 영적인 작업이다. 사실 이 작업이 기존 교회에서는 목회자들이 설교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 생활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왔다.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서 설교를 듣고 모든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하다 보면 아닌게 아니라 신앙이 조금씩 성장하는 것을 본인은 물론 주위 사람들이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저 자기 설교만 꾸준히 들으면 신앙에 별문제가 없을 거라고 장담하는 목회자들도 있다.

그런데 제자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이러한 자연적인 양육(나는 이런 목회를 방목(放牧)이라 부른다)에 만족하지 않고 피 양육 자를 향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양육하기를 원한다.

골로새서 1장 28~29절에서 바울이 말한 대로 목회자는 주님을 알게 된 각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되도록 하기 위해 성령의 역사를 따라 수고해야 한다. 그러므로 회 중을 향한 설교는 이 양육의 한 방편은 되지만 양육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톰 사인은 교회 안에서 제자를 만들기 위한 양육을 네 가지 형태로 구분했다.1회 중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양육, 소그룹 양육, 가정을 통한 양육. 일대일의 관계를 통한 양육이 그것이다. 한 사람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바람직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 네 가지가 다 필요하다.

그런데 제자훈련을 강하게 하는 그룹들에서는 이 네 가지 형태 가운데 특별히 일대일을 통한 양육을 강조한다. 일대일의 관계를 통해 양육을 받은 사람들은 확실히 다른 데가 있다. 제자훈련이 일대일 양육과 혼동되어 사용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2. 일대일 양육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4장 15절에서 스승은 일만 명이 있을 수 있으나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영적인 성장에 있어서 영적인 부모의 중요성을 시사했다. 지금까지 교회에서의 교육이나 양육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무리를 향해서 이루어졌다. 교육의 체제 자체가 개개인에게 깊은 관심을 쓸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영적인 양육은 선생과 학생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보다 영적인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 점이 일대일 양육의 핵심이다. 부모가 자식을 기르듯이 사랑을 부어주며(살전 2:7) 가르치며 경계하게 될 때(살전 2:11) 양육을 받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 잘 알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도록 양육할 수 있다.

양육을 목회자에게만 의존하는 기존 교회의 상황에서는 이러한 일대일 양육의 유익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목회자가 교인 가운데 몇몇 사람들에게 일대일로 양육을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결국 평신도를 훈련시켜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일대일로 양육하도록 도와야 한다. 물론 이런 양육 체제를 기존 교회 안에서 시작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지만 제자훈련을 목표로 한다면 결국 평신도가 평신도를 개인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며(딤후 2:2) 목회의 초점을 다른 사람을 양육할 수 있는 평신도를 양육하는 일에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양육 방법 가운데 일대일 양육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국내에 있은 여러 선교단체들을 통해 양육을 받은 사람들을 비교해 보면서 얻는 결론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하는 면에서나 사역에 임하는 자세 면에서 비교해 볼 때 역시 일대일 양육 체제가 든든한 곳에서 양육을 받은 사람들이 휠 씬 잘 훈련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기존 교회에서는 바로 이런 단체들에게서 일대일 양육의 강점들을 겸손히 배울 수 있어야할 것이다.

Ⅲ. 훈련

제자훈련에 관한 책을 보면 때때로 양육이란 말과 훈련이란 말이 혼동하여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양육은 아주 포괄적인 개념인데 비해 훈련은 제한이 되는 개념이다. 훈련은 양육을 위한 방편으로써 어떤 정해진 상황이나 시간 안에 제한이 된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양육은 사실상 평생 계속되어야 하는데 비해 훈련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정해진 기간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존 교회에서는 신앙 성장을 위한 양육의 한 방편으로써 훈련이란 개념이 익숙지 않으므로 먼저 훈련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 교육(Teaching)과 훈련(Training)의 차이

지금 까지의 제자훈련을 전 교회적으로 보급하는 일에 전념해 왔던 빌리 행크스는 제자 양육을 설명하는 가운데 양육의 두 요소인 교육과 훈련의 차이를 엄격히 구별한다. 그는 전통적인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실패했음을 지적하면서 그 이유가 하나님이 훈련을 통해 신앙 생활이 심어지도록 의도한 것을 교육을 통해서 전달해 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교육은 이념이나 개념의 전달을 요구하지만 훈련은 습득된 기술의 전달을 요구한다고 정의했다. 비행사들이 지상에서 이론 교육을 받고 난 후 공중에서의 실제 비행 훈련이 필요하듯이, 의대생들이 교실에서 이론 교육을 받고 난 다음 병원을 돌면서 임상 훈련을 받아야 하듯이 제자가 되기 위한 양육에도 이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2 그의 지적을 오늘날 우리 교회에 적용해 볼 때 반박할 길이 없음을 느끼게 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하면서 열심히 보라고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성경을 습득할 수 있는 훈련을 제대로 시키지 못했고, 마음에 부담감을 느낄 정도로 전도를 강조하기는 했지만 어떻게 전도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훈련이 없었다.

즉, 기독교 교육은 있었는지 모르지만 주님이 하셨던 것 같은 제자훈련은 없었던 것이다. 수 십 년 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성경 몇 구절도 제대로 기억 못하고 불신자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해서 한 마디도 못하는 교인들을 대할 때마다 훈련이 따르지 않는 기독교 교육의 한계성을 느끼게 된다.

2. 훈련의 필요성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지만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통한 훈련이 필요하다.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윌터 헨릭슨이 쓴 유명한 책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Disciples are made not born)]은 바로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제자에게 있어서 훈련의 필수 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3

훈련 받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을 통해서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이루어지기가 어렵다. 그래서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다 포용하는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충성된 사람들을 훈련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은 어떤 사람들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네 번째 원리인 집중의 원리가 필요하다.

Ⅳ. 집중(Concentration): 교회 안의 교회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특별히 12명을 택하셨다(눅 6:13). 또 경우에 따라서는 그 열두 명 가운데 세 사람을 따로 세워 특별한 체험을 하도록 하셨다. 변화 산에 올라갈 때(마 17:1)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막 5:37) 또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실 때도(마 26:37)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가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 세 사람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권면을 하는데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딤후 2:2)고 했다. 충성된 사람들에게 먼저 투자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권면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어떤 영적인 차별을 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훈련의 열매를 얻고 그들이 재생산을 하기 위해 취한 자연스러운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교회 역사에서도 나타나서 18세기 독일에서 일어났던 경건주의 운동에서는 기존 교회들로부터 교회 안의 교회(ecclesolae in ecclesia)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강한 훈련을 하다 보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눈에 띄는 구별이 없을 수가 없다.

현재 제자훈련을 하는 단체들과 지역 교회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역 교회 안에서 제자훈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이런 핵심 그룹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이들에게 목회의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값싼 감상으로 이 문제를 생각하면 결코 제자훈련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Ⅴ. 세계 복음화

거의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의 일을 말하지만 결국 그들의 관심사는 개교회의 성장에 머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그 자체의 존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확장에 있으므로 교회 안에서 제자훈련을 할 때 세계 복음 화라는 목적을 상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목적이 없이 이루어지는 제자훈련은 고린도전서 9장 26절에서 바울이 지적한 대로 향방 없이 달음질을 하거나 허공을 치는 운동선수의 수고가 되고 만다. 일반 선교단체에서도 세계를 향한 선교에 대한 비전이 희미해진 채로 제자훈련을 할 때 결국 그 단체의 성장을 위한 제자훈련이 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제자훈련에 임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제자훈련을 한 목적이 갈릴리나 예루살렘 의 큰 모임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땅 끝까지 이르러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되기 위한 것임을 새삼 기억해야 한다. 세계 선교는 제자훈련의 목표 중의 하나가 아니라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Ⅵ. 비판적인 평가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원리에 입각한 제자훈련 운동은 전통적인 교회들을 향해서 큰 도전이 되었다. 특별히 이런 원리에 입각해서 양육을 받은 사람들이 교회의 전통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 비해 훨씬 충성스럽게 일하며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제자훈련이 가진 이 다섯 가지 요소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원리가 강점이 있는 반면 이에 못지 않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제 지역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이미 증명이 된 이 원리들을 적용하면서 이 원리들에 잠재해 있는 문제점들을 미리 알아야 한다. 어차피 해 아래서는 완전한 것이 없으므로 이 원리 속에 잠재해 있는 문제를 발견해서 개혁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제자훈련도 또 하나의 새로운 전통으로 전락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앞서 말한 다섯 가지 원리가 가질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보완책을 생각해보도록 한다.

1. 목표냐 결과냐

사람은 육신 적으로 성장하면 결혼을 해서 자녀를 생산하고 생육해서 번성하게 된다. 즉, 사람이 자라는 과정을 제대로 거친다면 그 결과로 생물학적인 재생산을 하게 되며 증식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럴 경우 자손을 낳는 일이 사람이 사는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손을 낳게 되는 것이 그 사람을 키운 결과는 될 수 있겠으나 그것이 양육의 목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논리는 그리스도의 제자에게도 적용이 된다. 제자가 제대로 성장이 된다면 그는 당연히 다른 사람을 제자로 만들게 되며 그에 따른 증식의 과정이 계속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양육의 목적을 재생산에만 둔다면 결국 사람을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된다. 이것은 조금 심하게 표현한다면 사람을 인격체로 보기보다는 전도의 도구로 보는 것이 되므로 아무리 그 일이 가치가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재생산을 위한 증식의 비전이 중요하기는 하나 그것이 제자훈련의 목표가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제자 훈련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 수학 공식을 초월하는 우리 주님의 인간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2. 일대일 양육의 함정

한 사람이 제자가 되기 위해 영적으로 성숙한 다른 사람으로부터 양육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별히 일대일 양육에 있어서는 양육자가 피 양육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양육 자와 피 양육 자의 관계가 깊어질 때 양육자가 피 양육 자의 생활을 지배하게 되는 수가 있다.

대부분의 제자훈련 단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이런 현상을 데이빗 왓슨은 새로운 제사장제도라고 부르면서 우려하고 있다.4 과거에 전통적인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평신도들에게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제사장으로 여겨진 것도 문제였다면 양육 자들이 피 양육 자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도 비슷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일대일 양육은 개인이 개인을 도와준다는 강점이 있는 반면에 개인주의적인 접근으로 인해 교회의 공동체 의식을 잃게 하기 쉬운 약점이 있다. 제자훈련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기존 교회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가장 심각한 이유가 바로 이 문제이다.

그러므로 일대일 양육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함께 모이는 예배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서 그 예배를 통해서 한 몸의 지체의식이 함양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특별히 찬양을 통해 함께 예배 드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3. 훈련과 삶

한 사람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훈련의 기간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이 훈련이 지나치게 기계적이거나 비인격적일 경우에 문제가 되며 또한 훈련이 장기간 계속될 때 피 훈련자의 인격 형성에 어려움을 주게 되는 수가 있다. 특히 제자훈련 단체에서 훈련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모습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이에 대한 목회자들의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 군사로서의 삶의 자세가 필요하지만(딤후 2:3~4) 그로 인해 인간미를 잃게 되서는 곤란하다. 결국 제자로 삼는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사람을 예수 믿는 사람으로 회심시키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사랑과 평화를 누리며 또 보여주는 삶을 사는 것이므로 훈련된 삶은 필요하지만 삶이 훈련으로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제자훈련에 임할 때 훈련으로 인해 경직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또 한 필요하다.

4. 영적인 엘리트 의식

교회에서 제자훈련이 실시될 때 앞서 말한 대로 모든 교인이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 사람들에게 제한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될 때 훈련을 받은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생길 수 가있다. 이런 갈등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이것이 일종의 계층 의식으로 발전되면 초대 교회 당시의 영지주의자들에 있었던 것 같은 불건전한 계층 의식을 조장하게 될 수가 있다. 이러한 문제는 왜곡된 영적인 엘리트 의식을 낳게 되므로 교회 연합을 깨뜨리게 된다. 목회자의 리더tlq이 없이 제자훈련을 하게 될 때 이런 문제가 생겨서 교회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목회자의 지도 아래서 이루어져야 하며 몸의 지체가 된 교인들의 공통적인 이해(consensus)를 얻어서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자훈련 반 같은 공인된 제도를 통해서 하는 것이 이러한 부작용을 막는 방법이 되겠다.

5. 하나님 나라의 비전

제자훈련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계 복음 화이다. 이 비전은 개교회의 성장에만 제한되어있는 일반 지역교회에 비해서는 훨씬 커다란 비전이기는 하지만 잘못하면 지역 교회의 존재를 무시하게 만들 수도 있다.

성경이 가르치는 지역 교회는 단순히 불신자들을 예수 믿도록 하는 전도의 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을 통해서 성장하는 제자들은 전도의 열매를 맺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의 역할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직접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을 수 있다.

Ⅶ. 마무리

제자훈련의 핵심원리를 안다고 제자훈련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의미로는 이런 원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제자 삼은 일에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굳이 이런 원리들을 나열해서 생각해 보는 것은 한국 교회 내에서 제자훈련이 뿌리를 내리면서 더욱 바람직한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에 제자훈련의 전통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이론적인 이해와 더불어 이에 대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의 평가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 이런 감정을 알았으면 실제로 제자훈련에 많은 열매를 맺어온 사람들에게 겸손하게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비록 그들이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에게서 문제점을 발견한다 할지라도 약점을 미리 알고 포용하는 자세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원리를 바로 아는 사람의 바람직한 자세일 것이다.

주(註)

1. 톰사인,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제자도](두란노서원), 제6장(pp. 89~93).
2. 빌리 헹크스, [제자 훈련](생명의 말씀 사), 제7장(pp. 113~126).
3. 월터 헨릭슨, [훈련으로 되는 제자](네비게이토 출판사).
4. 데이빗 왓슨, [제자도](두란노 서원), p.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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