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와 제자훈련

방선기 목사

제자훈련이란 말이 어려서부터 전통 교회 안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에게 익숙지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란 말도 아직은 대부분의 교인들에게 익숙지 않은 것 같다. 나 자신도 오랫동안 교회생활을 하면서 천당이나 천국이란 말은 수없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하나님 나라’라는 말은 별로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신학적으로 ‘천국(Kingdom of Heaven)과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를 구별해서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의 견해를 따라 이 둘이 성경적으로 똑같은 개념이라고 인정할 때 이런 차이는 충분히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된 이유를 가만히 살펴보면 천당이나 천국은 대부분 교인들에게 신자들이 죽은 뒤에 다시 부활해서 살 영광스러운 장소로 쉽게 이해되는 반면 하나님나라는 일반 신자들에게 낯선 신학용어로 여겨졌기 때문인 것 같다.

이처럼 일반 교인들이나 목회자들에게 그다지 익숙지 않던 하나님 나라가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복음주의적인 젊은이들 가운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마치 70년대에는 복음주의적인 젊은이들이 제자훈련에 관심을 가지면서 약간의 물의를 일으키면서 기존 교회에 도전이 되었던 것처럼 80년대에는 많은 젊은 복음주의 청년들이 저마다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강의나 세미나가 꽤 인기를 끌었다. 그들 사이에는 하나님 나라를 모르면 무식한 신앙인으로 취급될 만큼 보편화되어 버렸다. 특별히 복음주의적인 사회 참여 문제나 기독교 세계관과 관련해서 이런 이슈들에 대한 이론적인 근거로서 하나님 나라 개념이 많이 거론되었다. 그렇게 되면서 이런 흐름이 전통 교회를 향한 또 하나 도전의 목소리가 되었다. 특히 미래적인 천국관, 영적인 천국관에만 젖어있는 신자들을 향해 이들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현실사회에 관련해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구체성을 강조함으로 크나큰 도전이 되고 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강조는 기존 교회뿐 아니라 이제 서서히 지역교회 안에 자리를 잡아가는 제자훈련 운동에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되었다. 기존의 제자훈련 운동이 기성교회에 많은 도전을 주기는 했지만 하나님 나라에 관한 한 전통의 개념과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제자훈련의 방향에도 새로운 안목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제 지역 교회 안에서 제자들을 양육하고 훈련하는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이미 있던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그대로 답습할 것이 아니라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쳐주는 하나님 나라를 바로 이해하고 그 개념을 훈련의 내용과 과정 안에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개념정리를 하고 제자훈련과 하나님 나라의 관계를 살펴본 뒤 이것을 기초로 새로운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제시해보려고 한다.

Ⅰ. 하나님 나라

하 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개념은 물론 그 단어 자체가 성경에 많이 나타나 있다. 그런데도 복음주의 교회 안에서 그 다지 익숙하지 않게 된 데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 말을 많이 사용하고 강조했던 사람들의 신학사상이 복음주의 시각에서 볼 때 받아들여지기가 힘들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긴 역사는 생략하고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독일 신학자 알브레이트 리츨(Albrecht Ritzschle)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 당시 자유주의 신학의 흐름이 그렇듯이 신앙의 초월적인 면보다는 내재적인 면을 강조하면서 바로 하나님 나라의 내재적인 면을 강조하게 되었다. 그에게 하나님 나라는 바로 이 세상에서 크리스천의 윤리적인 삶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신학 모티브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흐름은 윌터 라우센부쉬(Walter Rauschenbusch)와 같은 사회 복음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하나님 나라는 현실 사회에서 정의를 회복하기 위한 중요한 신학적인 도구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 나라의 전통적인 해석을 뒤집어엎는 이러한 강조는 결국 그 당시 보수주의자, 혹은 근본주의자들의 지나친 반작용을 낳게 되었다. ‘하나님 나라’ 자체는 성경에서 분명히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만 이것을 자유주의자들이 자기들의 관심사인 종교 윤리나 현실참여를 위해서 사용하는 바람에 복음주의자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금세기 복음주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칼 헨리(Carl Henry)는 <현대 근본주의자들의 불편한 양심>이란 책에서 이러한 상황을 인정하면서 복음주의자들을 향해 성경적인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주장했던 것은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그 이후로 이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어 오다가 1974년 로잔회의에서 복음주의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과 현재성, 영적인 차원의 정치. 사회적인 차원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물론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전통적으로 강조했던 영적인 차원의 하나님 나라와 현실적인 적용을 강조하는 그룹과의 갈등이 없지 않으나 전통에 묶이지 않고 성경이 말하는 의미로 돌아가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흐름 가운데서 한국교회에서는 먼저 젊은이들이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하나님 나라의 중요성을 한국교회를 향해서 외치게 되었다.

Ⅱ. 하나님 나라의 기본 개념

신, 구약의 맥을 흐르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사상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렇지만 천국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가 가졌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특별히 강조되어야 할 하나님 나라 기본 개념을 통치권의 개념과 역사적인 개념으로 요약해서 설명할 수 있다.

1. 통치권

한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국민, 영토, 통치권의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하나님 나라 역시 이 세 가지 요소가 필수적인데 그 가운데 성경이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이다.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가르쳐온 천국이 다분히 장소적인 면을 강조한데 비해 이제 새롭게 우리의 관심을 끄는 하나님나라는 태초부터 영원까지 계속되는 하나님의 통치권을 더욱 강조한다. 구속역사의 흐름에 따라 하나님의 통치권이 행해지는 모습은 달랐다. 에덴에서와 이스라엘 국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통치권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역사 이후에 행사되는 하나님의 통치권과 그 양상이 다르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권으로 정의되는 하나님나라는 태초부터 있었고 영원토록 있을 것이다.

통치권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정의할 때 하나님 나라는 죽은 뒤에 있을 또 하나의 세계로만 국한되지 않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영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하나님의 주권이다. 물론 현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치한다는 말이 영적인 영역만을 관여하신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을 다 창조하시고(골1:16) 또 십자가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듯이(골1:20) 지금 이세상의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들을 통치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세상 속에서의 교회와 성도들의 사명을 확장시키게 되며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는 사역의 방향과 훈련과정은 이에 따라 수정 보완되어야 한다.

2. 역사성 : ‘이미’와 ‘아직’

전통적 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천국의 개념은 실제로 볼 때 미래에 속한 세계이다. 천국은 우리가 죽은 뒤에 갈 곳이며 예수님이 재림하신 뒤에나 그 실재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성경은 이러한 미래적인 차원의 하나님 나라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또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속사역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가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때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완성하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계속 소망하는 한편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이루어졌고 또 교회를 통해 성장해가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참여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크리스챤이 ‘이미’ 임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사실은 현재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크리스챤들의 신앙과 책임에 대해 새로운 안목을 갖게 한다. 크리스챤의 현재의 삶은 단순히 장래를 준비하는 삶만이 아니라 장래에 나타날 그 나라를 이 땅에서 미리 실현시키려는 삶이 된다. 그리스도의 삶을 이렇게 이해할 때 제자로서의 삶과 사명에 새로운 차원이 보완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가 핵심이 되기는 하지만 하나님 나라가 이 두 가지로 완전히 요약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천국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의 부족한 부분은 이 두 가지로 보완한다면 ‘하나님 나라’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자훈련의 방향이나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Ⅲ. 제자훈련과 하나님나라

60년대만 해도 교회 안에서 제자나 제자훈련이란 말이 익숙지 않아서 거부감을 가지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었으나 이제는 제자훈련이 목회의 한 영역이 될 만큼 지역교회에 깊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아마도 ‘하나님 나라’라는 말과 개념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어가면서 한국교회의 방향과 목회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회의 역사를 보면서 이 두 가지 흐름이 한국교회를 성경적으로 다시 회복하게 하는 중요한 흐름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이 흐름들이 교회의 개혁과 목회의 갱신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므로 이 둘 사이의 관련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1. 성경이 보여주는 공통성

우선 이 두 흐름이 기존 교회들에게는 낯선 것들이지만 사실상 성경에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제자훈련의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를 삼는 사역에서 찾았듯이 하나님 나라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에서 찾는다. 예수님의 사역은 제자를 키우는 일이었고(막3:13~19) 또한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는 일이었다(마11:1~6). 그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면서 훈련시켰으므로 제자들의 훈련 목표나 비전은 하나님 나라였다. 물론 성령이 임하기 전까지 그 비전의 폭은 좁았을지 모르지만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아주 익숙한 개념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신학의 주제로 가르쳤다기 보다 그들의 사역의 기본이 되는 비전으로 가르쳤다. 그가 제자를 만들었던 사역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될 수도, 흉내 내어질 수도 없다. 또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는 일을 위해서 그는 제자들을 키워야만 했다. 그러므로 제자훈련과 하나님 나라는 서로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부활하신 뒤 그가 제자들에게 맡기신 사명에서도 이 두 가지의 공통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사명은 제자 삼으라는 명령이며(마28:19~20), 또한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되라는 것이었다(행1:8; 8:12; 28:31). 제자 삼는 명령과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되라는 명령은 같은 명령의 다른 표현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교회상, 성경적인 크리스챤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 나라를 바로 이해하고 성경이 보여주는 제자 삼는 사역에 임해야 할 것이다.

2. 한국교회 안에서의 갈등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 이 두 가지가 한국교회 안에서 두 흐름으로 나뉘어서 소개되었을 뿐 아니라 어느 면으로는 대조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 복음주의 교회나 선교단체들 가운데 제자훈련을 강조하는 그룹과 하나님 나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룹 사이에 관심사나 강조점의 차이로 갈등을 빚기도 한다. 그 이유를 가만히 살펴보면 강조점에 몇 가지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제자훈련”은 개개인의 구원과 신앙성장에 초점을 맞추는데 비해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보편적인 뜻에 먼저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제자훈련’은 재생산을 통한 세계복음화를 목적으로 하는데 비해 ‘하나님 나라’는 그 나라가 이 땅의 여러 영역에 실현되는 질적인 변화를 더 강조한다. ‘제자훈련’에서나 ‘하나님나라’에서 모두 성경을 강조하지만 성경을 훈련에 사용하는 방법 면에서 차이가 있다. 물론 흑과 백으로 구별되듯이 구별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에서는 훈련을 위해 성경말씀이 사용되는데 비해 다른 편에서는 다분히 성경신학적인 흐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들의 차이가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은 교회 역사를 통해 흔히 있는 일이지만 사실 이것은 갈등의 원인이기보다는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서로 보완해야 할 성질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에 관심을 가지고 이 사역에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그 나라의 비전을 자신의 사역에 적용해야 할 것이고 하나님 나라의 비전에 심취한 사람들은 제자훈련운동에 잠재해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해야 할 것이다.

Ⅳ. 하나님나라를 위한 제자훈련

일찍이 자유주의 신학에 입각한 종교교육을 주장했던 죠지 알버트 코(George A. Coe)는 종교교육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했었다. 그는 기독교 교육의 목적을 어린아이가 하나님 나라에 효과적으로 헌신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도록 성장시키는 것으로 정의했다(주1). 최근에 토마스 그룸(Thomas Groome)이란 교육학자도 기독교 교육의 목적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 나라로 이끄는 것이라고 정의했다(주2). 이렇듯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는데 비해 아직도 대부분의 복음주의 교육학자들 사이에는 하나님 나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일반 기독교 교육보다 더 근본주의 성격을 띠고 있는 제자훈련 운동에서는 하나님 나라가 별로 거론되고 있지 않다. 현재까지 소개된 대부분의 제자훈련 교재를 보면 교과내용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제자훈련의 목적이나 이념을 다루는 경우에는 세계 복음화의 비전을 말하는 것만큼 하나님 나라를 말하고 있는 책이 없다.

그런데 최근 들어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현실사회에서 책임 있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자도와 제자훈련을 말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톰 사인(Tom Sine)이 그 한 예가 된다. 그는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제자도(Thinking Discipleship Seriously)>(주3)에서 이 두 가지 주제를 계속 엮어가면서 제자도의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다. 그는 먼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현실을 부각시킨 뒤 이런 현실에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권면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우리가 사는 현실사회에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 장애가 되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제자도를 강조한 사람으로는 월드론 스코트(Waldron Scott)나 크리스 석덴(Chris Sugden)을 들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는 많이 쓰지 않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제자도와 제자훈련에는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스코트는 그의 책 <Bring Forth Justice>(주4)에서 세계선교에 관해서 이야기한 뒤 7, 8장에서 불의한 세상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의 제자도와 제자훈련은 바로 이러한 세계선교의 비전과 현실세계의 구체적인 문제점의 바탕 위에서 강조된 것이다. 이러한 바탕에서 말하는 제자훈련은 단순히 전도자를 키우는 제자훈련과는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성경적인 바른 이해가 바로 이러한 차이를 나타내게 된 것이다.

석덴 역시 그의 책 <Radical Discipleship>에서 이러한 관점을 보여준다. 그는 제자도의 기본 정의를 내리고는(1~4장) 제자 공동체로서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 말하고(5~7장) 이어서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불의와 가난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8~10장). 마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실 때 그 당시 유대 땅에 있었던 가난과 불의와 질병을 보셨고 그것을 안타깝게 여기시면서 하나님나라의 사역을 하시고 제자들을 키우신 것처럼 이들 역시 현실에서 발견하는 문제들을 제자 삼는 사역의 상황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들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하나님 나라는 제자훈련 과정에서 첨가되어야 할 새로운 주제 정도가 아니라 제자훈련에 임하는 지도자들의 안목을 바꾸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입각한 이들의 주장은 제자훈련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갖게 해주고 있는데 이러한 안목과 감각의 변화가 앞으로의 제자훈련사역에 임하는 모든 사역자들에게 필요할 것이다.

Ⅴ. 하나님나라를 위한 제자훈련의 실제

하나님 나라의 중요성을 알았고 하나님 나라와 제자훈련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으므로 이제는 실제 제자훈련 과정을 새롭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 나라를 강조한다고 해서 기존의 제자훈련 과정이 무의미한 것으로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네비게이토의 제자훈련에 익숙했던 월드론 스코트가 제자훈련의 기본원리와 방법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단순히 신학적인 맹점이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생긴 결점들만을 보완하려고 한 것은 앞으로 제자훈련의 방향을 정립하려는 사람들에 바람직한 예가 된다. 그가 보여준 예를 참고해서 제자훈련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문제들을 다루어보면 다음과 같다.

1. 복음전파와 전도훈련

제자훈련의 기본은 역시 복음전파이다.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교회로 인도해 오는 정도로 전도를 이해한데 비해 제자훈련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소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을 강조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그가 개개인의 구세주가 되는 것은 강조됐지만 예수님 자신이나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각오했듯이 그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 오신 메시야이며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신 것은 대체로 약화되는 것 같다. 그 결과, 예수님을 개인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구주로는 영접하지만 이 세상을 다스리는 왕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러한 전도는 통계적으로 볼 때 많은 열매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전도와 분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몰티머 아리아스(Moltimer Arias)의 주장은 바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 보완된다. 그는 복음전파를 “하나님의 통치를 알리는 것”으로 이해했다(주5). 그래서 어떤 사람을 기독교라는 종교로 개종시킨다는 차원 이전에 하나님의 통치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을 선포하는 것이 전도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일 뿐 아니라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왕으로 소개하며 그를 영접하되 구원의 방편으로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으로 모시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도를 받은 사람이 제자로 성장하게 될 때 분명히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전도가 이러한 관점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전도훈련 자체에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훈련을 위해서 기본적인 틀은 암송하도록 해야 하겠으나 암송한 성경구절이나 말들을 전달하는 것 이상의 영적인 지혜와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우는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2. 구원의 확신과 역사관

구원을 개인적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우주적인 차원으로 이해한다면 구원의 확신 문제도 개개인의 구원문제로 국한시키지 말고 하나님에 대한 확신으로 확대 해석하게 된다.

이에 대한 좋은 예는 고린도후서 5장 17절의 해석 문제를 들 수 있다.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 특히 제자훈련을 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하게 됨을 강조해왔다. 이때 사용된 Ktisis는 피조물(Creature)로도 번역이 되지만 창조 자체(Creation)으로도 번역이 된다. 후자의 관점으로 보완이 된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이란 말은 개개인이 예수를 믿게 되는 차원보다 더 넓게 모든 창조물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롭게 변화된 역사적인 차원으로 보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구원의 확신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개개인의 변화를 확인하는 한편 그리스도로 인해 피조 세계에 변화가 있었음을 인식하는 또 다른 확신이 필요하다. 아마도 이것은 구원의 확신이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우주적인 확신 혹은 역사적인 확신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주는 궁극적인 확신이다. 이런 확신을 가진 사람은 단순히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만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미래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오늘 우리가 처한 사회에 대해서 훨씬 더 책임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3. 큐티(Q.T)훈련

구원의 확신이 주님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라면 큐티는 주님과 교제의 중요성를 강조하는 제자훈련의 중요한 요소이다. 하나님과 개인교제의 측면에서 큐티는 여전히 강조되어야 한다. 그러나 개인의 묵상이나 개인적인 적용 이 개인만을 위한 경건생활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영성 계발이나 경건생활을 위한 훈련에 하나님 나라의 안목이 결여되면 그야말로 이기적인 신앙을 키우기가 쉽다.

그러므로 큐티훈련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의 음성을 들을 때 개인의 사생활에 관계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이 세상의 구석구석을 향해서 주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기도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비전을 변화시켜주며 하나님의 안목으로 이 세상과 모든 사람과 역사를 보게 해준다”(주6)고 토마스 머톤(Thomas Merton)은 바로 하나님나라의 비전으로 큐티훈련을 해야 할 필요성을 가르쳐 준다.

이밖에도 제자훈련의 방향이나 과정에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새롭게 정의해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제자훈련을 단순히 새롭게 변형시키자는 것이라기보다 앞으로 제자훈련의 목적과 방향을 예수님이 하셨던 대로 회복하자는 것이다. 그가 가졌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생각으로 제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필요에 따라서 기존의 가르침이나 훈련내용을 과감히 수정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계속해서 지금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제자를 훈련하는 목표나 과정을 정하는 데 적용해야 할 것이다. 제자훈련에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역동성이 있게 될 때 정말 주님이 기대했던 대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 나가는 제자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주(註) ——-

1. George A. Coe는 A Social Theory of Religious Education에 쓴 이 말(p. 55)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의 민주사회(Democracy of God)로 바꾸어 썼다.
2. Thomas Groome, Christian Religious Education, p. 35.
3.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제자도란 이름으로 두란노서원에서 번역되었다.
4. 세계선교와 사회정의를 위한 제자도란 이름으로 두란노서원에서 번역되었다.
5. Moltimer Arias는 Announcing the Reign of God란 책 제목으로 전도의 개념을 요약했다.
6. Thomas Merton, Contemplative Prayer, p. 112. 이 책의 번역본 마음의 기도는 분도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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