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장에 나온 은사 연구 – 예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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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로마서 12:6b~8

“6b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의 정도에 맞게 예언할 것이요, 7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8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쓸 것이요, 나누어 주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은 열성으로,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새번역)

“6b if prophecy, according to the proportion of his faith; 7 if service, in his serving; or he who teaches, in his teaching; 8 or he who exhorts, in his exhortation; he who gives, with liberality; he who leads, with diligence; he who shows mercy, with cheerfulness.”(NASB)

1. 로마서 12장엔 일곱 가지의 은사들이 소개되고 있다. (A) 예언 prophecy, (B) 섬김 service, (C) 가르침 teach, (D) 권면 exhort, (E) 나눔 give, (F) 지도 lead, (G) 자선 mercy.

2. 가장 먼저 예언에 대해서 살펴보자. 신약성경에 예언을 은사로 언급하고 있는 곳은 두 군데이다. 로마서 12장 6절과 고린도전서 12장 10절이다(“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하는 은사를 주시고 and to another prophecy”). 그렇다면 초대교회에서 ‘예언’의 역할과 기능은 무엇이었을까?

3. 신학대학을 다닐 때 신약 개론을 가르치신 교수님은 신약성경에서의 예언은 ‘설교’라고 말씀하셨다. 예언이 왜 설교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진 않으셨다. 이십대 초반의 어린 신학생들에게 워낙 단호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질문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런 해석은 은사 중지론을 주로 주장하는 장로교 개혁주의의 입장과 동일하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은사가 중지되었다거나, 예언이 설교의 기능을 대처했다고 말할 수 있는 구절은 없다.

4. 오히려 성경은 성령의 은사 중에 예언의 은사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고, 사도행전을 보면 실제적으로 예언의 은사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활용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사도행전을 통해서 그것을 직접 확인해 보자.

5. 먼저 사도행전 2:17~18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들과 너희의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그 날에 나는 내 영을 내 남종들과 내 여종들에게도 부어 주겠으니,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다.”

6. 이 말씀은 구약의 요엘서 2장 28절에서 32절까지을 인용한 것이다. 베드로가 요엘서의 말씀을 인용한 이유는, 오순절에 임한 성령으로 인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이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언어들로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말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할 수 없던 사람들은 그들이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했다(행 2:1~13). 그 소리를 들은 베드로가 일어나 요엘서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것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엘을 통해 약속하신 것처럼 성령이 임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7. 요엘서의 말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구약에서는 특별한 장소에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임무를 위해 성령이 임하였지만, 말세가 되면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언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이 임하셔서 예언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게 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구약과 신약의 차이이다.

8. 두 번째는 사도행전 11:27~29의 말씀이다. “그 무렵에 예언자 몇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내려왔다. 그 가운데 아가보라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일어나, 온 세계에 큰 기근이 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바로 그 기근이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들었다.”

9. 이 말씀을 보면, 초대교회 사역자들 중에는 예언자(선지자)가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에베소서 4장 11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분이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도자로, 또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이들을 어떻게 해석하든지 상관 없이 초대교회엔 분명히 예언자(선지자)라는 직분이 존재했다.

10. 다시 사도행전 11장을 보면, 몇 명의 예언자인지 알 수 없지만 예루살렘 교회에 있던 예언자들이 안디옥으로 내려왔다. 아마 이들의 방문 목적은 순회 사역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당시 사도, 예언자, 복음 전도자는 한 곳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 아니라 여러 곳을 다니며 복음과 말씀을 전하고, 흩어진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사역을 감당했다.

11. 그런데 그들이 안디옥 교회를 방문했을 때,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근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글라우디오 황제 때 기근이 일어났다. 그러자 안디옥 교회는 구제헌금을 모아서 바나바와 사울 편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보낸다(11:29~30). 이 사건을 통해서 예언의 한 가지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사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과 철저하게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12.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내려왔을 때 그런 예언이 주어졌다는 것은 굶주림으로 고생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돌보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언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고하는 것이지만, 무당이나 점을 치는 것과 같은 기능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예언자가 어떤 신령한 능력이 있어서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통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가 반듯이 전제 되어야 한다.

13. 세 번째 말씀은 사도행전 13:1이다. “안디옥 교회에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나바와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과 더불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마나엔과 사울이다.”

14. 안디옥 교회를 이끌고 있는 리더십 명단(바나바,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 사울)을 보여준다. 근데 주목해야할 것은 그들이 예언자들과 교사들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에베소서 4:11로 돌아가야 한다. 다섯 개의 직분(다섯 개냐? 네 개냐?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중에 두 개만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누가 예언자이고, 누가 교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아무튼 안디옥 교회 안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직분이 바로 예언자라는 것이다.

15. 네 번째는 사도행전 15:32의 말씀이다. “유다와 실라도 예언자이므로, 여러 말로 신도들을 격려하고, 굳세게 하여 주었다.”

16. 사도행전 15장의 내용은 이방인 선교로 인해 발생한 초대교회의 갈등 문제를 풀기 위해 처음으로 열린 예루살렘 공의회 장면이다. 여러 논쟁과 토론을 통해서 이방인들도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결론을 내린다(15:11). 그리고 우상에 바친 더러운 음식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권면의 편지를 바울과 바나바의 손으로 이방 교회에 보낸다(15:20, 22).

17. 그때 유다와 실라를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보내기로 결정한다(15:26). 즉, 예루살렘 공의회를 통해 결의된 내용이 적힌 편지뿐만 아니라 유다와 실라를 함께 보냄으로 이방교회 성도들을 격려하고 굳세게 해주기 위함이었다(15:32). 그러면서 그들이 예언자들이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예언의 두 번째 기능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격려하고 굳세게 해주는 것이다.

18. 이것은 고린도전서 14:3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이 된다. “그러나 예언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덕을 끼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도 예언의 은사가 가지는 기능이 세 가지라고 밝히고 있다. 덕을 끼치고(strengthening), 위로하고(encouragement), 격려하는 것(comfort)이다.

19. 신약 성경에서 예언은 어떤 신기를 통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맞추는 –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어떤 대학을 가야 하는지, 누구와 결혼해야 하는지 등등 –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신약 성경에서의 예언은 교회 공동체를 세우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교회가 더욱 건강하고 세워지도록 돕는 것이다.

20. 다섯 번째는 사도행전 19:6이다. “그리고 바울이 그들에게 손을 얹으니, 성령이 그들에게 내리셨다. 그래서 그들은 방언으로 말하고 예언을 했는데”

21. 이 말씀은 에베소에서 만난 열두 명의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러자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슨 세례를 받았습니까?”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라고 대답한다(19:2~3). 이것을 통해 이들이 침례자 요한의 제자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침례자 요한이 선포한 회개의 세례만을 받았던 자들이다.

22. 그러자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침례자 요한이 소개한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19:4~5을 보면 매우 짧게 나눈 것 같지만, 아마 실제적으론 예수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나누었을 것이다. 그 결과 그들 모두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곧 거듭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이어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고, 그 증거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다는 것이다.

23. 이것을 통해 다시 확인이 되는 것은, 방언이나 예언이 특별한 사람만이 특별하게 받을 수 있는 은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령 세례이든, 성령의 충만함이든 상관 없이 성령이 임재하시는 역사가 있을 때 자연스럽게 방언과 예언의 은사가 드러나고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재미 있는 것은 그 즉시로, 어떤 학습이나 훈련, 혹은 신앙의 성숙과 상관 없이 바로 그런 은사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24. 마지막으로 사도행전 21:9~10의 말씀이다. “이 사람에게는 예언을 하는 처녀 딸이 넷 있었다. 우리가 여러 날 머물러 있는 동안에, 아가보라는 예언자가 유대에서 내려와”

25.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사도 바울은 가이사랴에 도착해서 전도자 빌립의 집에 머문다. 그런데 빌립에겐 딸이 넷이나 있었고, 그 딸들이 모두 예언자였다고 말한다. 이점에 대해선 이미 앞에서 여러 번 확인했다. 사도행전 21장에는 다섯 가지 직분(엡 4:11) 중에 전도자와 예언자가 언급되고 있다.

26. 그곳에 사도행전 11장에 등장했던 아가보라는 사람이 내려온다. 그리곤 바울의 허리띠를 가지고 자기의 손과 발을 묶으면서 예언을 한다. “유대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허리띠 임자를 이와 같이 묶어서 이방 사람의 손에 넘겨 줄 것이라고, 성령이 말씀하십니다.”(21:11)

27. 이런 아가보의 예언을 들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간곡히 만류한다(21:12).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런 동역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어디까지가 예언이고, 어디까지가 사람의 해석인지를 잘 구분해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11절만이 예언이다. 하나님은 이미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을 말씀하셨다(20:22 참조). 그리고 이렇게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은 아가보를 통해서 다시 한번 말씀하신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고하시면서 사도 바울의 마음을 준비 시키고 계신 것이다.

28. 그런데 그런 예언을 들은 사람들은 인간적인 해석을 한다. “그러니까 올라가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경고하고 계시는데 왜 올라가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 해석한 것이다. 인간적인 생각과 감정으로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주장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다.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러므로 예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매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삶이다.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그 분의 인도하심 가운데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을 때, 예언이라는 은사를 통해서 격려하시고 위로하시고, 굳건하게 세워 주신다.

29. 많은 사람들이 그런 하나님과의 개인적이고 실제적이며 친밀한 관계를 가지지 않으면서, 누가 예언의 은사가 있다고 하면 기도를 받으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잘못 오해하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예언의 은사로만 하나님의 뜻을 찾고, 인도하심을 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분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30. 전체 내용을 종합해 보면, 초대교회에서 예언자 혹은 예언의 은사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은사가 초대교회 안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서 예언의 은사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신약 성경에서 예언의 은사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가운데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알리는 것이고, 교회 공동체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튼튼하게 세우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또한 구약처럼 어떤 특별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은사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부어지는 일반적인 은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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