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개론

*본 내용은 김곤주 목사님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힙니다(https://www.facebook.com/konju.kim/posts/10155408880308964)

1. 바울과 로마서의 기록 동기

바울이 제3차 선교 여행을 하는 동안 고린도에서 기록된 로마서는 크게 두가지 동기 하에 기록된 것으로 이해할수 있습니다. 그 첫째는 목회적 동기로서 로마에 있던 교회 신자들이 복음에 뿌리를 내리고 바른 기독교 교리와 실천적인 신앙생활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며 (롬 1: 8-15). 더 구체적으로는 유대인 크리스찬들과 이방인 크리스찬들 간의 갈등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롬 11장과 14:1-15:13). 두번째는 선교적인 동기입니다 (15: 22-29). 바울은 서바나 (스페인)로 복음을 전하러 가려는 선교 계획을 알리면서 ‘먼저 너희를 만나서 교제의 기쁨을 나누고, 로마 교회 신자들의 후원을 받아서 스페인 선교를 하기를 원한다’ (15: 2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선교에 앞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예루살렘에 구제헌금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15:25-26). 이것은 사랑을 실천하고 유대인 크리스찬들과 이방인 크리스찬들의 연합을 이루며 사도바울의 선교가 예루살렘 교회의 지속적인 신뢰와 후원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영향을 끼치는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목회적 동기와 선교적 동기 두가지가 포함된 사안으로 볼수 있습니다.

2. 내용 요약

가. 로마서와 복음 (롬 1-3장)

바울은 인사말과 함께 자신이 ‘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고,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2절) 이라고 복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본질상 같지만 그 복음의 내용과 범위에 있어서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가 창세기로 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이 오시기까지의 구원의 전 경륜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복음을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믿음으로 얻는 영생’이라는 의미로만 한정해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이러한 이해의 가르침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적극적인 믿음의 삶과 긍정적인 사고로 살아가게 하기 보다는 천국가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살아가는 소극적이고 건전하지 못한 신앙관을 형성하기 쉽습니다. 이것이 십자가 복음주의의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또 복음의 내용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구원이라는 좁은 의미로만 한정해서 이해할 경우 성경의 다양한 진리들을 무시해 버리고, ‘죄-십자가–구원-영생’이라는 주제로 억지 해석 (잘못된 영적해석이나 알레고리적 해석)을 하는 경향으로 나타나기 쉽습니다. 이점에 있어서 십자가 복음주의는 율법의 성화적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율법과 복음의 반대적인 의미로 강조해서 가르치는 잘못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1장에서 원대한 하나님의 복음에 대해서 말씀하면서 로마서 전체의 내용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어 순종하게 되었다’고 1장 5절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의 의미는 ‘진정한 믿음은 순종을 동반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의 마지막장에 가서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롬16:26) 라는 ‘같은 표현’ (ὑπακοὴν πίστεως)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바울은 믿음을 강조하지만, 그 믿음은 순종의 행위를 동반하는 믿음을 의미하고, 이것은 신자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참된 신자의 삶을 살아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롬 8:3-4).

바울은 우리들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시고, 의롭다고 선언 하시고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게 하심으로서, 하나님은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고 말씀합니다 (3장 27-31; 5장8-9). 이러한 의미에서 로마서 1장 17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 (롬 1:17)는 하나님 자신이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소유하신 ‘하나님의 의’요.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해 주시는 ‘법정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의’요, ‘구원의 행위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는 관계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의’라는 면에서 이해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아 들이게 될때, 하나님은 죄인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을 ‘칭의’ (Justification)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적 칭의론을 거부한 새관점 (New Perspective)의 톰 라이트(NT Wright) 는 바울 서신에 나타난 ‘이신칭의’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일원이 되었다’는 선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결과 새관점은 죄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고, 단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일원이 된다는 점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나. 믿음과 율법 과 성화 (4-9장 중심)

바울은 4장에서 다윗의 행복과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믿음의 수준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은 아브라함이 먼저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이후에, 실제로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되어가는 믿음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5장에 와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영적인 축복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화목(평화)을 누리고, 그 결과 영혼의 참 평안을 누립니다 (5:1), 또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들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참 소망을 갖게 됩니다(5: 2). 그리고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서 인류 전체가 하나님의 형벌 아래 있게 되었고, 반대로 예수님 한 사람으로 인해서 인류 전체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아래 있게 되었다고 하는 ‘대표성의 원리’를 따라서 설명합니다 (5:17-19). 그리고 율법과 죄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기를 인간에게 율법이 주어졌을때, 그 율법은 인간의 죄를 더 분명하게 깨닫게 해주고 보여주었다는 점을 말합니다 (5: 20-21).

6장에 와서 바울은 신자들이 은혜 아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지으며 살아갈수 없다고 말하면서, 신자들은 ‘율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아래 있다’고 말씀합니다(6:14-15). 여기서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말은 율법과 상관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말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려는 노력이 구원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7 장에서 결혼제도를 예로 들면서 율법에 관하여 설명한 후에, ‘이제는 율법에서 벗어나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고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하지 않는다’(7:6)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구원받은 신자들은 유대인들과 같이 율법의 외면적 행위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아니라, 복음의 은혜를 따라서 성령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롬 2: 29; cf렘31: 33; 겔 36: 26-27). 그래서 바울은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7:12).

8장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죄와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롬 8:2)고 말합니다. 이 말은 율법을 통하여 구원에 이를수 없고, 율법 그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수 있는 능력을 주지 못하기에, 이런 차원에서 성령의 법이라는 말과 대조해서 ‘사망의 법’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 머물러 살기 때문에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 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 8:4).

더 나아가서, 바울은 신자와 불신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피조물(창조물)도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8: 22).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인간의 죄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서 함께 좌절과 허무함속에서 신음하고 고통받다가 사라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이러한 고통과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8: 24-25).

이 마지막 열매를 맺게 될때까지 성령의 도우심이 함께 할 것을 바울은 말씀하고 있고 (8: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신다’ (8:26-30)고 말씀합니다.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고 우리가 장차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한 영광을 누리도록 하나님이 모든 사건들 가운데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에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다(8: 35)고 말씀합니다.

다.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의 신실함 (9-11장 중심)

바울은 예수를 믿지 않는 자신의 동족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은 저주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부터 끊어져도 상관이 없다고 9장 1-3절에서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그의 택하신 백성들을 버릴수가 있는가 하는 고민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롬9: 6).라고 선언합니다. 다시말해서, 이 말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특별히 선택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짧은 구절은 로마서 9-11장 전체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핵심 문장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진정한 이스라엘 (true Israel)은 오직 택함받은 이스라엘(ethnic Jews)이라는 사실을 9-11장을 통하여 일관성있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가 진짜 하나님의 선택받은 이스라엘이냐’ 하는 문제를 설명하려고 ‘이삭의 선택’과 ‘야곱의 선택’이라는 두가지 이야기 (9:7-9)를 예로 들고 있으며, 이어서 ‘애굽의 바로’ (9: 17~18)와 토기장이 비유 (9:19-21)를 통해서 이야기 합니다. 이 내용을 오해해서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지옥에 가도록 선택되었다고 강조하는 극단적인 칼빈주의 (Hyper-Calvinism)의 가르침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는 것은 부르심을 받은 모든 이방인들에게 해당된다 (9: 24)고 말씀하면서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의 은혜와 하나님의 언약이 ‘이스라엘의 남은자들’을 통하여 성취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9장 마지막에서 설명합니다 (9:25-33).

10장으로 가면, 바울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10: 2-3). 다시말해서, 유대인들이 율법을 통하여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보다는 그 율법으로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는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막 7:7-8; cf. 마 23: 23).

그 이유는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진단합니다 (10:2; cf. 호 4:6). 그래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다’(10:3)고 말씀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에 이를수 있다는 구원의 진리를 받아 들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네가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9)고 말씀한 후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10:10). 또 10장 13절에 가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한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합니다(욜 2: 32).

그러면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를 부를수 있으며, 전하는 자가 없다면 어떻게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수 있겠느냐고 말씀합니다 (롬 10:14-17).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음을 들었으나 거절하였다’는 사실을 10장 19-21절에서 다시 이야기 하면서, ‘하나님이 종일 손을 펴서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을 불렀다’고 이사야 65장 2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1장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가운데 있지 않은 정말 버림받은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속에서 다루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을 자신이 예수를 믿게 된 것, 구약에 나오는 엘리야와 7천명의 남은자를 예로 소개합니다 (롬 11:2-5; cf.열상19: 9-18; 롬 9:27~29).

바울은이 점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구원문제와 이방인의 구원문제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말하면서, 유대인들의 강팍한 상태는 일시적인 것이고, 이것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 가운데 있다고 말합니다 (11:11-12). 그러면서 ‘참 감람나무에 붙어 있던 나무가지들 (유대인들) 가운데 일부가 꺽이고, 대신 돌 감람나무에 붙어 있었던 가지들 (이방인들)이 접붙여져서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게 되었다 (구원을 받게 되었다)고 해서, 이방인 신자들인 너희들이 그 가지들(유대인들)을 향해서 ‘자랑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11:17-18).

또, ‘그들(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꺽이고, 반대로 너희들(이방인 신자들)은 예수를 믿음으로서 꺽이지 않았다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말고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경고한다 (11:20). 왜냐하면, ‘원 가지들 (유대인들)도 버림받았다면, 너희(이방인)들도 얼마든지 버림 받을수 있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경고합니다 (11:21).

특별히 로마서 11장 25-26절은 바울이 로마서 9-11장 전체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이요결론과 같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구원의 자리에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일부는 우둔하게 된 것은 구원의 신비 가운데 하나’라고 말씀합니다.

특별히,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11:26)는 구절은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 (ethnic Jews)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는 유대인 개개인 모두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건전한 해석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예수를 거부한 버림받은 민족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사실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있고 (11:28), 그래서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 (11: 2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전에 하나님을 몰랐고 그래서 하나님을 순종치 않았던 ‘너희’ (이방인 신자)들이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11:30; cf. 행 13: 46).

이와 대조적으로 ‘너희(이방인)에게 베푸시는 긍휼이 이제는 그들(유대인들)도 긍휼을 얻게 하기 위함’ (11:31) 이라고 대조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방인 신자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 즉 유대인들에게도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라는 말이며, 이렇게 하나님이 모든 사람이 순종하지 않은 가운데 있도록 내러벼 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11:32).

바울이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유대인 크리스찬들은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 필요가 있었고, 이방인 크리스찬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로마 교회에 있었던 이방인 신자들과 유대인 신자들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한 가족임을 깨닫고, 연합과 일치를 깨뜨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11장 33-36절에서 바울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송영으로 마침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라. 삶이 예배인 신자의 생활 (12-16장 중심)

로마서 12장 1-2절은 로마서 12-15장에 걸쳐서 나오는 전체 내용의 서론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가 산 제사를 드리는 영적 예배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예배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교회 공동체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3-8절에서 밟히고 있습니다 (12:3-8).

그래서 바울은 서로가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믿음의 분량대로, 자신이 받은 은사대로 주어진 달란트를 사용함으로써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가기를 권면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거짓 없는 진실한 사랑과 형제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과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뿐만 아니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말씀합니다(12:9-12). 더 나아가서 우리의 이웃에게 행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선한 삶과 사랑의 실천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12: 14-21)

13장에 가면 국가와 사회 공동체에 대해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적인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먼저 13장 1-10절을 보면 , 신자들이 정부의 권위에 복종하고, 양심을 따라서 국가에 복종하면서 시민의 의미를 다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모범적인 시민의 삶을 살아갈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더욱 효과적으로 전파될 것이고, 신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국가에 대한 이러한 기본적 의무 뿐만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이야기하고, 그러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함을 말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적 신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롬 13:11-14).

그 다음에 바울은 14장1-15:13절에 걸쳐서 로마 교회 공동체 내의 갈등의 문제를 ‘약한자’와 ‘강한자’ 사이에 있는 갈등의 구조로 구체적으로 다루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지만,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는다’ (14:2)고 하면서, 반복해서 ‘서로 비판하지 말라’고 ‘서로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약한 자’는 유대인 출신의 크리스찬으로 그리고 ‘강한자’ (14:1-2)는 이방인 출신의 크리스찬으로 이해할수 있습니다. 즉, 바울이 말하는 믿음이 강한 자는 특정한 고기들을 먹는 것에 대해서 마음의 두려움이나 양심의 거리낌을 느끼지 않았던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서로 비판(비난)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그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4: 7-9).

또 바울은 이렇게 율법에 규정된 음식문제로 인한 신자들의 신앙적 갈등과 관계해서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롬 14: 17-20). 또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14:23a)고 말씀하는데, 이 말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율법의 규정을 어겼다고 스스로 정죄 의식과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한 것이기 때문에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14:23b).

계속해서 바울은 ‘믿음이 강한 우리가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15:1)고 말씀합니다. 또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라(15:2)고 권면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유대인들과 이방인 모두에게 구원의 소망을 누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구약의 말씀들을 인용하여 설명합니다(15: 9-11). 이 ‘소망의 하나님이 믿음 안에서 기쁨과 평강을 너희에게 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한다’ (15:13)는 축복의 기원으로 편지의 본론 내용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마. 바울의 선교계획과 문안인사 (15장14-16:27)

바울은 복음의 제사장이 되어 선교 사역을 감당했던 자신의 사역을 소개하고 나서 (15:14-21), 자신의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헌금을 전달하고 하는 계획과 로마 방문을 통해서 스페인 (서바나) 까지 이어지는 자신의 선교계획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요청합니다(15:22-29; cf. 행 19:21; 고후 8: 1-5).

그리고 16 장 1-16절에 가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수고한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당시에 신자들의 가정이 중심이 되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오늘날 교회의 예배형식이나 제도와 큰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등장하는 가정교회들은 당시의 상황과 관계가 있는 것이지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가 따라가야 할 완전한 교회의 모델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16장17-27절에는 바울의 마지막 경고가 나오는데, 여기서 바울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6:17) 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16장 21-23절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은 바울과 함께 있는 고린도 교회에 있는 교인들이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문안인사를 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나의 복음”(16:25) 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이것은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 (16:26)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믿음을 강조하지만, 그 믿음은 순종이 따르는 믿음이라는 점 역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롬 1: 5; 15:18; 16: 19).

그리고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 것 이라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로마서를 마칩니다(16:26-27). 즉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으로 시작해서 그 복음이 “나의 복음”이라는 고백으로 로마서의 긴 편지를 마칩니다.

(출처: 원문 중심의 이야기 로마서 저자, 김곤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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