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개론

1. 저자는 누구인가?

고린도후서의 저자는 누구인가? 서신 자체의 증거(1:1)로 보나 외적인 증거로 보내 서신의 저자는 사도 바울임이 확실하다. 외적 증거들은 초기 교부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여러 교부들과 저술가들이 고린도후서의 저자가 사도 바울임을 밝히고 있다.

2. 언제, 어디서 기록되었는가?

여러 가지 복잡한 역사적 상황 때문에 고린도후서의 연대를 결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가지 고정된 사항이 있는데, 사도행전 18:12~17에는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대에” 고린도에 있는 유대인이 바울을 공격했던 일이 묘사되어 있다.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의 공표를 담은 비문에 의하면, 갈리오는 주후 51년부터 1년간 그 직책을 수행했다. 갈리오가 바울을 공격한 유대인의 고소를 기각한 후, 바울은 고린도에 ‘더 여러 날 머물다가'(행 18:18) ‘배 타고 수리아로’ 52년 봄에 떠났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에서 얼마를 보낸 다음, 바울은 선교 여행을 시작하고 곧바로 에베소로 왔다. 바울이 에베소에 2년 반을 머물고 나니 55년 봄이 찾아왔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아마도 55년 초에 고린도전서를 기록하고, 다음 해쯤 마케도니아에 있는 동안 고린도후서를 완성했을 것이다(고후 2:12~13; 7:5; 8:1~5; 9:2).

3. 역사적 상황

고린도후서는 바울 서신 가운데 가장 개인적인 편지이다. 바울은 자기 변론을 위해 자신의 연약한 면모조차 숨김 없이 드러냈다. 고린도 교회는 큰 위기에 빠졌고, 적대자들은 바울의 지난 행동을 두고 믿을만한 사람이 못 된다고 온갖 억측과 비난을 쏟아냈다. ‘근심 가운데’ 한 (두 번째) 바움ㄴ이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보고, 그가 아시아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한편 바울이 진짜 사도가 아니라는 말도 돌았다. 심지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을 횡령했다는 비난도 있었다. 바울은 이에 대해 편지(‘눈물로 쓴 편지’)를 써서 보내고 가슴 아파한다. 미침내 디도가 돌아와 편지의 효과가 있었다고 전하자(2:12~13, 7:5~16), 바울은 크게 안도하며 ‘고린도후서’를 쓴다. 이를 통해 흔들리는 고린도 교회를 다시 세우고자 애쓴다.

  •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소통

바울은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은 고린도 교회에 첫 번째 편지를 썼다. 대적하는 유대 사람들 때문에 쫓겨나듯 고린도를 빠져나왔기 때문에(행 181~17)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교회를 바로 지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 편지는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존재를 알리는 정확은 많다. 그런데 이 편지는 소용이 없었다. 바울은 둘째 편지인 ‘고린도전서’에서 자신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교회 상황은 악화되었음을 드러낸다. 이때 바울은 에베소에 머물면서 ‘고린도전서’를 보낸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이 기간 중에 고린도를 두 번째로 방문하게 된다. 바로 ‘근심 가운데’한 방문이었다(고후 2:1). 바울의 직접 방문도 고린도 교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바울은 후회하며 세 번째 편지를 써서 디도 편에 보낸다. 바울 ‘눈물의 편지’이다(고후 2:4; 7:8). 교회를 얼마나 직설적으로 나무랐는지 바울 자신도 보내기를 주저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편지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어 일부 성도가 행위를 돌이켰다. 안도한 바울은 네 번째 편지를 써서 보내며 다시 고린도를 방문할 의사를 밝힌다. 이것이 ‘고린도후서’다.

4. 개요

가. 바울의 첫 번째 변론(1:1~7:16)

고린도후서를 기록한 주요 동기는 바울이 자신의 행동을 해명하고 사도권을 변호하기 위함이다. 바울의 변호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고린도 교회 방문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1~2장)와 자신이 진정한 사도라는 점이다(3~5장).

  • 방문하지 않은 이유(1:23~2:17)

바울은 유례없는 짦은 인사말에 이어 자신이 아시아에서 받는 고난과 환난을 설명한다.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는 대신, 아시아(에베소)로 돌아갔던 행동을 변호하기 위해서다. 에베소에서 고린도를 방문했던 바울은 마케도니아를 거쳐 다시 고린도에 들렀다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고린도 성도들에게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처럼 구체적으로 빈틈없었던 계획이 틀어지며, 결과적으로 바울은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돌아갔다가 거기서 드로아를 거쳐 마케도니아로 간다(행 20:1). 바울과 동역자들은 고린도 대신 에베소로 돌아가 엄청난 환난을 겪었다. 육체적, 정서적으로 얼마나 긴장이 컸는지 사형 선고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 심정이었다고 말한다. 바울과 동역자들은 말 그대로 큰 사망 앞에서 간신히 하나님께 건짐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이 환난이 단지 고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갈로서, 고난당한 자를 하나님의 위로로 위로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깨닫는다.

한편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기 않은 것은 둘째 방문이 남긴 가슴 아픈 후회 때문이기도 하다. ‘근심 가운데’ 진행된 방문은 상황을 개선하지 못했다. 그래서 또다시 쓰라린 경험을 하기보다는 적당하 ㄴ때를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을 근심하게 한 사람들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바울은 교회를 향한 사랑을 나타내고 서로 용서하되 사탄의 미혹에 속지 말라고 당분한다. 바울이 드로아에 이르렀을 때, 주 안에서 ‘문’이 열렸다. 그는 소식을 가져오는 디도를 만나려고 드로아로 갔지만 만나지 못해 마케도니아로 간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이를 감당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 바울의 사도 직분(3:1~4:18)

바울은 자신의 사도성을 스스로 입증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신 분이 그리스도며 성령이다. 돌판에 새긴 율법은 죄를 드러내 사람을 죽게 한다. 그러나 새 언약은 영으로 망므에 새긴 것이며, 사람을 살린다. 율법보다 나은 것이 참자유를 주시는 성령이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보다 자신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실함을 확신하기에 담대히 이를 선포할 수 있었다. 바울의 직분은 영으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사도 됨에 대한 바울의 자부심은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자신이 질그릇처럼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잘 알고 있다.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를 보배롭게 한다. 바울이 고난을 겪으며 영화롭게 되었다면, 그것은 그의 안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 때문이다. 하나님은 연약하고 하찮은 인간을 통해 역사하셔서 그들이 당하는 고난의 경험을 영광의 중함으로 바꾸신다.

  • 그리스도 안의 희망(5:1~6:18)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게는 희망이 있다. 바울은 땅에 있는 자신의 ‘낡은 장막 집’(육신)이 ‘하늘의 영원한 집’이 될 것을 바라본다. 하나님은 이를 위한 보증으로 성령을 보내 주셨다. 바울은 몸이 당한 고난이 크기에 어서 몸을 떠나고 싶은 심정임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누구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몸의 심판을 받기까지 주를 기쁘시게 해야 한다. 이전까지는 육신을 따랐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새것이 되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을 이루시고, 바울 일행에게 화목의 직분을 주셨다. 바울은 이 직분에 근거해 세상을 향해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가르쳤다.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못하게 하려고 바울은 허다한 고난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그 모든 환난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부요하다. 그는 아무것도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가졌다. 이런 담대함이 있기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불법과 어둠을 떠나 의와 빛에 거하라고 명한다.

  • 고린도 교회의 응답(7:1~16)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이방 사상과 문화를 분별 없이 받아들여 죄악 된 세상과 섞인 것이다. 이에 바울은 엄중한 어조로 더러운 것에서 떠나 자신을 깨끗하게 하라고 권한다. 이어서 자신이 마케도니아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위로를 얻었는지 설명한다. 한편 자신이 ‘눈물로 쓴 편지’가 고린도 성도들을 돌이켜 깨끗함을 나타내게 했다는 소식을 디도에게서 듣는다. 바울은 근심 중에 쓴 것을 후회할 정도였지만, 자신의 간절함이 결국 통했음에 위로를 얻는다.

나.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8:1~9:15)

예루살렘 교회는 재정적인 곤경에 시달렸다. 유대 사람 고용주들의 적대감이 심해, 예루살렘 지역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집과 일터를 잃기 쉬웠다. 게다가 그 땅에 기근까지 들었다. 바울은 이방인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마땅히 지원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에 복음의 빚을 졌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헌금 모금은 단순히 구제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에 바울은 마케도니아 교회들이 매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넘치게 헌금한 것을 언급하며 고린도 교회도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권한다. 헌금은 예수님이 주신 모든 것을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한 도리다. 따라서 헌금하는데 주저하거나 인색해서는 안된다. 우리를 부여하게 하시려고 스스로를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한다. 자신의 넉넉한 것으로 타인의 부족한 것을 채우는 ‘나눔의 선순환’이 모두를 풍성한 삶으로 이끈다. 바울은 거액의 헌금을 다루는 일에 오해와 비방이 없도록 조심하기 위해 신실한 동역자 디도와 함께 두 형제를 고린도 교회에 보낸다. 그리고 이전에 약속했던 헌금을 고린도 성도들이 미리 넉넉히 준비해, 마케도니아 성도들 앞에서 그들에 대해 바울이 자랑한 것이 무색해지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한다.

다. 바울의 두 번째 변론(10:1~12:21)

10장부터 바울의 어조가 달라진다. 바울은 자신에 대해 적대적인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고린도 교회 안에 있다면서, 옛 삶의 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을 안타까워한다. 이들을 향해 엄중히 경고하고 자신을 변호하면서, 바울은 진정한 사도란 어떤 사람이고 자신이 왜 그에 합당한지 설명한다.

  • 진정한 사도(10:1~18)

고린도 성도들 중에서 어떤 무리는 바울이 직접 대면할 때와 편지로 대할 때의 태도가 다르다고 비방했다. 이에 바울은 주님이 자신에게 권세(권위)를 주심은 성도들을 바르게 세우고자 하심이며, 자신은 말고 행함이 다르지 않다고 밝힌다. 고린도 교회가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몸도 약하고 말도 시원치 않았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이 정해 주신 범위의 한계대로 복음 전파 사명을 감당한 것이다.

  • 바울이 받는 고난(11:1~12:21)

바울은 말은 좀 부족해도 지식은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또한 여러 면에서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자기 자랑을 어리석은 것으로 여겼다. 그런 그가 부득불 자랑함은, 거짓 예언자들의 말을 따르는 고린도 성도들이 돌이켜 참된 사도인 자신이 전하는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셋째 하늘(낙원)까지 이끌려 올라간 적이 있었다. 인내, 표적과 기사, 능력을 행한 것과 더불어 바울이 받은 고난이 그가 진정한 사도라는 증거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거짓 사도들과 달리,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고자 값없이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참된 일꾼으로서 주를 위해 허다한 고난을 받았다. 육체에 가시를 지닌 그의 약함은 그리스도의 강함을 증명하는 도구다.

라. 마지막 권면(13:1~13)

바울은 세 번째로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면서 잘못으르 바로잡을 기회를 준다. 믿음 안에 있는지 스스로 시험해 보고, 진시를 따르라고 권한다. 고린도후서의 마지막 구절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의 일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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