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란 누구인가

송태근(강남교회)

1. 들어가는 말

수많은 교회가 있고, 교회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목사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목사들이 배출되고 있다. 역사상 신학교가 인기 있었던 때는 바로 종교의 세속화와 직결되었던 바, 목사직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위해서는 무엇이 오늘날 사람들을 목회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지에 대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글에서 필자는 목회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명에 대해서보다는 (1) ‘목사직 자체’에 대한 논의 및 (2) 이 시대 요구되는 목회자로서의 자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찰해 보려고 한다.

우선 ‘목사직’에 대한 논의와 관련해서는, 목사의 직분은 성경이 부여한 영적인 권위를 갖는다는 점에 착안하여, ‘권위’의 성경적 근거를 중심으로 진술해 나갈 것이다. 이는 목사의 ‘신분’과 관련된 것이다.

한편 목회자의 자질과 관련해서는 이 시대에 요구되는 목사의 ‘기능’적인 측면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은 변화하며,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위해 표현된 “동일한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언급은 비록 진리와 관련해서는 거짓이지만, 우리의 상황과 환경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목회자들은 격변하는 환경들을 감지하는 데 자주 실패하고 있고, 그 결과 교회는 늘 뒤에서 따라가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날 요구되는 목회자의 자질은 목회 사역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므로, ‘목회자란 누구인가’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목사의 신분’과 이 시대 요구되는 ‘목사의 자질’ 문제는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모두 본질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탁월한 은사와 능력을 겸비하고 있어도 성경이 부여한 권위를 깨닫지 못한 목사는 맹목적이며, 신분만 유지한 채 목회 현장에서 요구되는 자질을 갖추지 못한 목사는 공허하기 때문이다.

“내게 하나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백 개의 닫힌 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라는 안토니오 포키아(Antonio Porchia)의 말을 기억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목회의 길에 들어섰다는 사실 자체가 곧 난관과 역경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목회자들의 앞길에 언제나 열린 문들만 있지는 않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2. 목사란 누구인가?

2.1 ‘목사’의 어원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눅 2:12)

‘목사'(Pastor)란 말은 보호한다(protect)는 뜻의 어원에서 비롯된 헬라어 ‘ποιμην’이란 단어에서 번역된 것이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하나의 목자(shepherd)를 의미한다. Ralph G. Turnbull, Ed., Baker’s Dictionary of Practical Theology(Grand Rapids, Michigan: Baker Book House, 1976), p. 292

목사 또는 목자라는 직임과 관련된 가장 흥미 있는 구절 하나가 사도행전에 나타나 있다. 그것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 대하여 바울이 권면하는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진 것이다. “너희는 자기(장로:elders)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 20:28) 이 한 절 속에 장로, 감독 그리고 목사의 개념이 각각 포함되어 있고 또 그 직임이 무엇인지도 잘 언급되어 있다. Ibid., p.293

장로는 본래 값진 경험과 경륜을 쌓아 올린 나이 많은 원로들로서, 그 노련한 사고와 판단력이 젊은이들의 지혜를 능가한다는 것이다. 감독은 여러 사람들을 통괄하고 지도하는 임무를 띠고 세워졌다. 한편 목사는 여러 가지 임무를 총괄하는 목자의 개념에서 불려졌기 때문에, 직책면에서 장로나 감독이 가지는 기능을 겸하여 수행하게 되었다. Ibid., p.293

 2.2 목사직에 내포된 요소들

목사의 직임에는 교사(teacher)의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가르치는 직임은 일정한 교회를 담임하지 않고 여러 곳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evangelists)와는 달리 특히 지교회를 목회하는 목사에게 한결같이 그 중요성이 요청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교사는 목사일 필요가 없지만, 모든 목사는 가르치기를 잘해야만 하는 것이다. Ibid., p.291

목사의 직임에는 교역자 또는 성직자(minister)로서의 임무가 포함되어 있다. 특별히 신약 성경에 나와 있는 ‘minister’란 용어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세 가지의 서로 다른 헬라어로 번역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διάκονος”라는 말이다. 이는 노동자, 종(servant), 또는 집사(deacon)라는 뜻이다. 둘째는 “λειτουργός”인데, 이는 공종(public servant), 일군(worker)의 뜻을 가지고 있다. 셋째는 “ὑπηρέτης”라는 말로서 배에서 노를 젓는 사람(under-rower) 또는 보조자란 뜻이다. Ibid., p.293

2.3 목사와 관련된 여러가지 명칭

첫째로, 목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자'(messengers)이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가르침을 받았고 또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들은 어떤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며 권위와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메신저로서의 목사는 주님의 메시지를 받아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 둘째로, 목사는 말씀과의 관계에 있어서 파수군이다. 이는 복음을 전하는 자의 개념과 비슷하며, 히브리서 13장에 나오는 “영혼을 경성하는 사람들”의 임무이다. 구약 성경의 선지자도 역시 하나의 파수군이었다.(이사야 52:8, 56:10)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영혼들을 위하여 깨어서 경계하는 일이 파수군의 최상의 직무인 것이다. 셋째로, 목사는 교회와의 관계에 있어서 청지기이다. 청지기는 신임을 얻은 종과 같다. 청지기로서의 목사는 잘 가르치고 권면하며, 신실하고 충성된 마음으로 주님의 가족들에게 먹이를 주고 필요한 것을 때에 따라 잘 공급해 주어야 한다.

2.4 목사의 권위

목사는 자신의 권위를 모든 권위의 기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는다. 성경은 영적인 지도자, 양의 목자들에게 영적 권위를 허락하셨다.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목회자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히브리서 13장은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로.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이 말씀은 평신도들이 목회자들을 향하여 가져야 할 태도이다. 이에 비해 목회자가 스스로 이룩해야 할 권위와 또 그 권위있는 삶을 어떻게 계속적으로 영위해 나갈 것인가는 목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라 할 수 있다. 사실 예배 시간에 설교자가 어떤 내용의 설교를 하느냐보다 어떤 설교자가 설교를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설교는 강단에 서기 전에 이미 80%를 한 것과 다름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목사가 참된 권위를 갖는 것은 소중하다. 홍정길, “삶의 실증 속에 담긴 권위”, 목회와 신학, 창간호, pp.103~109

목사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권위는 무엇보다 삶의 실증에 있다. 사역자의 삶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 위에 서 있을 때 진정한 권위가 생기게 된다. 목회자로서 성경이 말하는 사역 뿐 아니라 성도들과 공유하는 부분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전 영역이 주님의 말씀과 같이 서 있을 때 더욱 찬란함과 존귀함으로 상급을 주시겠다고 주님께서 약속하셨다. 그리고 이 땅에서 살 동안도 성도들 앞에 권위 있는 목회자로 세우실 것이다. 결국 사도 바울이 늘 강조한 말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도 나를 본받으라”는 이 말씀이 삶으로 실증되어질 때 그 삶은 진실로 사역자로서 아름답고 권위 있는 인생이 될 것이다.

3. 시대가 요청하는 목사의 자질

3.1 목회자의 역할에 대한 잘못된 견해

첫째, 목회자를 만능선수로 생각하는 것이다. 역사를 통해 볼 때, 목회자만큼 수많은 과제들을 동시에 수행하도록 요청된 직종도 없었다. 때로는 목회자 자신이 과도한 압력을 스스로 가하기도 하지만, 성공 지향적 사회와 교회의 내적인 정책이 목회자로 하여금 충분한 통계적 성취를 달성하도록 압력을 가해왔고, 그렇지 못했을 경우 그는 실패자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목회자의 역할은 전문가라는 의미로 정의되어 왔다. 리차드 백스터는 교리문답 교수였으며, 찰스 스펄젼은 설교가였고, 죠지 휫필드는 부흥사였다. 물론 이들은 다른 일도 수행하였지만, 그들의 명성은 그들이 집중한 영역에서의 탁월성으로 인해 얻어진 것이다. 간단한 문장으로 표현해 보면, “많은 목회자들이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하기에 결과적으로 하나도 잘하지 못한다.”

둘째, 목회자를 최고경영자(CEO)로 생각하는 것이다. 목회 사역에 관해서 오늘날 발간되는 많은 책들이 은연중에 현대 교회의 쇠퇴에 대한 해결책으로 효과적인 최고경영자적 목회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책들은 대형 교회의 성공 비결이 우수한 최고경영자들에 의한 것이라고 암시한다. 물론 목회 행정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영적인 능력 없이 교회에서 조직 운영과 경영의 탁월함만을 추구하는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셋째,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심리치료사로 여겨진다. 과거의 일대일 목회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되면서 갖게 되는 사람들의 영적인 필요에 그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오늘날 목회자들은 공동체와 개인의 문제를 풀어주는 사람으로 인식이 바뀌어 갔다. 물론 상담은 틀림없이 중요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의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로 상담을 꼽는다거나 많은 시간을 상담 사역에 투자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3.2 목회에 장애가 되는 요소들

목회사역에 어려움을 초래하는 요인들을 생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 가치를 비하하는 것(자존감 상실)이다. 자기 비하의 태도를 가진 소극적이고 불안한 목회자들은 자기 가치를 증명하는 노력들-깨지기 쉬운 자아를 가진 사람들은 자주 그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훌륭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키기 위해 명성이나 권세나 학벌을 추구한다-을 통해서 일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는 있지만, 목회의 유익한 목적들을 추구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이기적인 마음이다. 이기적인 사람은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의 생각, 느낌, 계획, 그리고 여건 등과 같은 자기 중심적인 일에 계속해서 관심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은 깊고, 실질적이며, 장기간의 인간 관계들을 피하려고 한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나 자신을 아는 것, 즉 진실로 나 자신을 아는 것은 나를 거부하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사실 많은 목회자들이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된다는 두려운 부담을 면제해 준다면 자신들의 직업을 사랑할 것이라고 말한다.

셋째, 교주심리이다. 많은 목회자들은 교회를 통치하려고 하는 자기 도취에 빠진 권력욕과 교인들의 삶을 지배하려는 지배욕이 자기 자신의 가치감을 강화시켜 준다고 생각한다. 독재적인 인물들은 물량적이고 외형적인 성공을 열망한다. 결국 그들은 내면적, 영적인 목표들을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넷째, 많은 젊은 목회자들이 자신들이 세워 나갈 교회에 대해 지나친 인간적인 기대들을 한다는 점이다. 젊은 목회자들이 갖고 있는 웅대하지만 실제적이지 못한 생각들은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 많은 젊은 목회자들은 성공에 대한 하나님의 표준이 “최고의 교회”의 건설이 아니라 충성스러움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3.3 요청되는 인격적 특성

목회 사역에 있어서 타협할 수 없는 것으로서 네 가지 인격적 특성을 들 수 있다.

첫째, 개인적인 성실성이다. 오늘날 우리 시대 목회의 문제점은 자주 성실성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목회 역사상 오늘날보다 더 심한 목회 실패, 추문, 암울, 좌절, 환멸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교계에는 불미스러운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섹스 추문, 교회 공금 횡령 사건, 교회 재산으로 레저 산업에 투자하는 것 등등) 성실은 윤리, 정직, 명예, 원리 그리고 도덕성을 포함한다. 성실함은 오로지 진리와 정직을 향한 열정적이고 끊임없는 헌신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둘째, 영적 생명력이다. 영적 생명력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성경의 권위 아래 사는 삶을 말한다. 영적으로 생명력 있는 지도자들은 목회를 향한 열정, 그리스도를 위한 복음 전파의 열정, 그리고 영적 훈련에서 충실함을 보인다. 또한 영적 생명력은 복음의 핵심 메시지인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가 말한 것처럼, 설교자와 목회자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성도들에게 영향력을 미쳐야 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청교도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의 충고는 귀기울일 만 한다. “선한 삶이 없는 선한 말씀은 헛된 것이다. 목회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귀한 말씀이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무기력한 삶이 상처를 입히게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자.”

셋째, 목회에서 상식(common sense)은 뛰어난 능력이나 은사보다 더 중요하다. 상식은 지도자로 하여금 적절한 우선순위를 정하게 하고, 잘못된 것보다는 좀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도록 도와준다. 상식이 부족한 목회자는 그 어떤 가치있는 일들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가 어렵다.

넷째, 목회에 대한 열정이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은 그 자체로 사람에 대한 사랑과 목회에 대한 열정으로 표현된다. 현대의 정신적, 문헌적 사조는 경영법의 개발, 실용적인 전략, 전문 기술, 그리고 교회 부흥을 위해 엄청나게 갖추어진 실용적 방법론 등에 대해서는 강조하지만 영혼에 대한 깊은 사랑, 열정적인 사랑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수많은 현대 교회의 성도들은 양육되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이용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목회에서 열정이 없거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에 대해서 목회자들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능력 있는 목회의 핵심적인 내용은 “지상명령” 안에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목회자들이 행한 일들은 통계나 물질적 성공의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자 삼는 기준에 의해서 평가된다. 사람들이 복음을 받았을 때 불신자가 제자가 되고, 영적인 성숙에 도달하는 제자가 되며, 교회는 성도들의 하나된 몸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된 경우에 한해서만 목회자는 영향력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맺혀진 열매들이 제자가 아닌 다른 것이 경우, 탁월함의 자질들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목회자는 자신의 수고가 제자삼는 일이 되도록 애를 써야 한다.

3.4 목회 철학

목회사역의 탁월성에는 명확하고도 이해하기 쉬운 목회 철학이 반드시 필요하다. 목회 철학은 고유한 자기 정체성, 목적, 그리고 방향성에 대한 이해를 구체화한다.

 3.4.1 개인적 차원의 목회 철학

효과적으로 장기간의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자신의 성격, 은사, 관심사, 비전, 그리고 우선순위 등에 대해서 정확하게 결정짓는 것이 필요하다. 철학은 행동으로 옮겨진다. 바울은 자신의 철학에 근거해서 먼저 유대 지역에서 전파하였고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향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서 전파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자비량 사역을 하였다.

우선 ■ 목회자들은 교인들과의 인간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교인들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갈등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거나 친숙한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다른 목회자들은 사랑과 온정으로 형성된 교인들과의 친밀한 관계가 의미 있는 목회와 목회적 효율성의 관건이라고 생각하여 개방성, 겸손함, 친근함 등을 목회 활동의 특징으로 삼는다. ■ 현상태를 얼마만큼 유지하거나 변화시킬 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 설교, 상담, 제자훈련, 교회 행정,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활동 분야에 대해서 목회자들은 어떻게 하면 사역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 목회자는 주중의 시간을 어떻게 배분해야 시간을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단기간의 편의 때문에 장기적인 목표나 기본적인 의무 사항을 희생하지 말아야 하고, 개인이 갖고 있는 본래의 소명과 영적인 은사에 맞게 시간을 배분해야 한다. ■ 목회자는 자신이 어떤 지도력을 발휘할지 결정해야 한다. 독재적이거나 방임적인 면모는 극단적인 두 측면이고, 그 두 사이에 다양한 선택의 여지가 있다. 훌륭한 지도자는 제반 여건에 따라서 적절한 폭으로 지도력을 발휘한다.

3.4.2 교회적 차원의 목회 철학

목회자 개인이 목회에 대한 개인적 철학을 반드시 명확히 해야 하듯, 개 교회도 그 교회 나름의 목회 철학을 분명히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 우선 교회의 철학은 교회의 사명에 대한 명시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명에 대한 진술은 교회의 목적이나 존재 이유에 대한 것이다. 많은 교회들이 교회의 사명에 대해서 다음 다섯 가지로 이해한다. 예배, 전도, 교육, 교제, 사회적 관심. ■ 목표들을 채택하는 것이다. 교회가 세워야할 특별한 목표들은 상황과 여건에 따라서 변할 수 있지만, 기본적인 철학과 관련된 원리적 목표들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 투명한 행정 조직이 필요하다. 행정 조직은 그것이 명료하고 기능적 효율성을 갖는 한 문제되지 않는다. ■ 가치관에 대한 합의가 중요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가치관은 교회의 목회 철학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현대의 많은 교회들은 다원적이기 때문이다. 출신 지역, 연령, 학력, 경제력, 사회적 신분, 직업, 결혼 여부, 영적 성숙의 단계들, 교단적 배경 등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가 어떤 가치관을 어떻게 추구하느냐가 그 교회의 장래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인들에 의해서 승인될 뿐 아니라 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가치관을 명시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내와 관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 마지막으로 효과적인 방법론이 중요하다. 교회의 목회 철학에서 그 방법론은 천차만별이다. 교회의 사명과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윤리적으로 합당한 것인 한, 어떤 효과적인 방법도 실제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3.5 목회 비전

역사가가 과거에 대한 정보 꾸러미를 취하여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도자는 실행 가능하며 신뢰할 만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젼을 지닌 지도자는 행정적인 잡무와 안건 처리에 과도하에 시간을 사용하지 않으며, 비현실적인 꿈의 세계에 매료되어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진정한 지도자는 내부의 세세한 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하고 자신은 장차 실현될 비전에 초점을 맞춘다.

3.5.1 비전을 가진 지도자들의 기량

비전을 가진 목회자들은 다음과 같은 기량을 갖추어야 한다. ■ 우선 협동을 도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비전을 가진 목회자는 팀을 만들고 모든 구성원들이 그들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격려한다. 현대의 지도자들은 구성원들과 협력하여 문제의 해답을 찾아내고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탐구하고 위험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 기독교가 현재 당면한 위기는 뛰어난 통찰력을 필요로 한다. 목회자들은 현추세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다양한 측면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야 한다. ■ 또한 현대의 목회자는 단순한 문제 해결사가 아니라 역동적인 상황에서 변화에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비전을 가진 목회자는 지속적인 적응과 변혁을 성취하기 위해 변화하면서 발전하는 상황에 관심을 갖는다. 변화와 안정 모두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능력 있는 목회자는 안정과 변화에 따르는 위험을 모두 계산하고 모든 가능한 행동에 따른 결과를 검토한 후 건강하고 지속적인 변혁을 장려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한다. ■ 비전을 가진 목회자는 주도면밀한 집행력을 갖는다. 지도자들은 덜 중요한 대부분의 일은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반면, 긍정적인 일들을 도모하기 위해서 그들의 영향력을 발휘해야 될 부분을 살핀다. 스티븐 코비(Stephen R. Covey)의 말처럼, 부족한 지도자는 성공의 사다리를 직접 올라가지만 진정한 지도자는 그 사다리가 제대로 위치하고 있는지를 정하는 것이다.

* 신뢰할 수 있는 비전을 확인하기 위해 다음의 요소들을 검토할 수 있다. 첫째, 진정한 가치있는 비전은 목양에 초점을 맞춘다. 신뢰할 수 있는 비전은 복음 전도와 제자 훈련에 중점을 둔다. 둘째, 가치있는 비전은 전통과 가치의 한계를 벗어나도록 많은 사람들을 도전한다. 현상태에 만족하는 것은 곧 비전의 결여를 의미한다. 셋째,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는 비전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교회의 미래를 위한 비전을 가꾸기 위해 수고하는 목회자는 가치있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반드시 그에 따르는 대가가 목회자 자신과 교인들에게 따른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3.5.2 비전 함양을 위해서

비전 함양을 위한 기량은 저절로 개발되지 않는다. 지도자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경험이라는 모진 환경을 통해서 개발되고 성숙되어진다. 사도 바울 역시, 그의 탁월한 지도력은 오랜 세월 동안의 교육, 수십 년의 경험, 바나바로부터의 조언, 개인적인 훈련 등을 통해 나타나게 되었다. 훌륭한 지도력을 개발하기 위한 지름길은 없는 것이다.

비전 함양을 위해 우선 비전을 가진 지도력에 대한 의식적인 개발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현재 교회를 맡고 있는 목회자들을 재교육하고 재훈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신학교에서 지도력 훈련을 위한 교과 과정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나아가 체험적 개발 역시 필요하다. 비전을 가진 지도자는 체험을 통해 성숙해 간다. 어떤 학문적인 훈련도 탁월한 조언자의 지도에 의한 경험을 대신할 수 없다.

3.6 권위 있는 설교

목사의 첫째 사명과 역할은 설교이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의 상황 속에서 선포하는 것이다. 그런데 설교는 단순히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의 인격과 삶이라는 그릇 속에 담겨서 전하여지기 때문에 설교와 설교자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목사의 역할이 설교인 한, 목사가 된다는 것은 한 평생 설교자의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강단에서의 말씀 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강단의 진부함이 교회 성장에 저해 요인이 되고 있고, 수많은 영혼들의 삶에 상처를 준다. 설교자도 인간이므로 낙심하고 실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성직자로 부르는 이유는 그 자신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그 일 자체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권위 있는 설교의 여러 요소들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첫째, 영향력을 끼치는 설교는 성경의 주된 주제를 하나님의 심오한 계시의 말씀으로 제시하고 설명하며 적용한다. 아무리 화술이 좋고 학문성이 높다 할지라도 성경의 주요 주제를 적실성 있게 선포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 된다. 성경의 주제를 포기하고 현대의 주제를 감각적으로 설교하는 것은 성도들을 영적 빈혈증에 걸리도록 한다.

둘째, 영향력 있는 설교는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설교이다. 많은 설교가들은 교인들이 위대한 학자들이나 주석들에서 발견되는 정보를 듣게 될 경우, 좀더 훌륭한 성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학적이고 유식한 말들이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 놓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든 좋은 설교는 말씀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나아가 설교의 주된 사명은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설교자 속에 살아있고, 성령에 의해서 능력이 부여된 진리만이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셋째, 교인들은 설교자가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에 대한 믿음의 증거를 보기를 원한다. 기교있는 설교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진리에 의해 불붙은 신령한 설교자들이야말로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즉 열정적인 설교가 영향을 미친다.

넷째, 때로 설교자들은 삶의 현실(context)로부터 본문(text)을 도출해 내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편견에 성경 본문을 억지로 맞추기도 한다. 때때로 목회자들은 자기 자신도 믿지 않는 내용을 설교할 때도 있다. 이런 식의 설교가 깊은 인상을 줄 수는 있지만, 여기에는 진리가 결여되어 있다. 권위있는 설교는 진실한 설교여야 한다.

 4. 목회자가 되기 위한 준비와 훈련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양떼들을 지키기 위해 이리와 사자들과 싸우는 실전 경험을 오랫동안 쌓았기 때문이었다. 목회를 위한 준비와 훈련은 결코 하루아침에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4.1 지적 측면

목사는 신학적 배경이 든든해야 한다. 신학이 확립되지 않고서는 결코 좋은 목사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지적인 요소를 생각할 때, 그것은 반드시 신학 자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신학과 관련된 학문들, 즉 실제 목회에 필요한 여러 가지 학문을 폭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대의 목회는 목사의 공부를 필요로 한다. 말씀 연구를 깊이 하기 위해 성경 원문을 보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어느 정도 익숙하게 익힐 필요가 있다.

4.2 영적 측면

지적인 측면에 탁월하도록 학문을 얼마나 갈고 닦았는지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영적으로 얼마나 성령 충만한 지의 여부가 목회자에게 더욱 중요하다. 목회란 대학 강의실에서처럼 이론과 학문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4.3 실천적 측면

목회 훈련은 모든 문화에 대한 연구를 위해 준비케 하는 것을 포함한다. 목회자는 복음을 사회 속에 침투시킴으로써 교회를 인도해 나가는데, 문화에 민감하지 않고서 이런 사역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목회 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장기간 지속되는 인간 관계를 발전시키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을 기르고, 갈등 상황을 대처하는 기술과 가치 있는 목표를 달성하도록 인간 관계의 중요성과 유용성을 유념해야 한다. 나아가 능력 있는 목회는 대화 능력에 좌우된다. 대화술은 신중하게 듣는 기술과 명확하게 자기 자신을 이해시키는 기술을 말한다.

 5. 나오는 말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 (욥 25:4~6)

지금까지 ‘목사직 자체’에 대한 논의와 이 시대 요구되는 목회자로서의 자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찰해 보았다. 그러나 목사라는 성직을 받게 된 한 사람의 목사는 그가 목사이기에 앞서 신자의 한 사람이고, 신자의 한 사람이기 전에 한 인간임을 기억해야 한다. 목사는 어디까지나 여전히 인간인 것이다.

## 교갱협에 실린 글을 복사해서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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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esponses to 목사란 누구인가

  1. 이상준 says:

    요즘 유명하다고 하는 목사님들이 언론에 너무 많이 노출되는 것 같네요. 그럴수록 ‘목사’가 진짜 누구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ㅎㅎ

  2. 김여호수아 says:

    목사란 누구인가 알고싶어서 뒤지다가 이글을 읽게 되었는데 실증을 느끼게 되었네요. 이 간단한 질문에서 왜 이리 긴 설명이 필요한지… “목사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권위는 무엇보다 삶의 실증에 있다. 사역자의 삶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 위에 서 있을 때 진정한 권위가 생기게 된다. ” 이러니 목사님들이 교만해서 하나님위에 서서 권위를 부리지요. 하나님 말씀위에 와 하나님 말씀 안에서 는 엄청난 차이이지요. 목사는 하나님의 Messenger 라면 하나님의 어명을 전달하는데에만 그쳐야 하는데 하나님의 권위까지 침범했으니 이 시대 교회에 예수님이 설자리가 없으시지요. 참 안탑깝네요 🙁

  3. 사무엘 타일러 says:

    김여호수아 님 의 의견 정말 지당하다고 믿습니다 목사님들 을 너무 추켜주고 하느님말씀 전한다 하여 무조건 존경 을표시하니까 저들이 자기가 정말 높은 권위있것으로 착각하고 예수님보다 더높아져가고 있고 하느님과 같은 권위를 갖고있지요 결과 성도들 앞에서 제마누라를 우리 사모님 이란 최고의 존칭을 자기스스로 쓰고 한국 목사들 무식해서인지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대중앞에서 제마누라를 사모님 이라고 부르지요 얼마나 높아지고 싶어서 목사님호칭도 주님앞에서 죄송할텐데 마누라 까지 최고의 존칭을 자기입으로 거침없이 쏟아내는지 사악과 교만의 절정이며 철면피 에 넉살 좋은 예수님 팔아먹는 혀와 입술만 갖고 세상에 서 목사를 비웃게 만드는 원흉이지요

    • 이상준 says:

      귀한 의견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한국적인 상황에서 목사의 부인을 대중 앞에서 뭐라고 부를만한 적당한 호칭이 없는 것도 문제이지요. 목사들의 문제라기 보다는 한국의 문화적인 상황의 문제가 아닐까요? 물론 큰 의미에서 사무엘 테일러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공감은 갑니다. 그래도 여전히 드러나지 않게 헌신하고 수고하시는 많은 목사들이 있다는 것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4. 묻고 싶은 이 says:

    신앙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은 무엇인가?
    목사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길가, 돌밭, 가시밭길의 마음을 진단하고 좋은 밭으로 바꾸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마음이 회복되는 길, 가정이 회복되는 길은 알고 있는가?
    실제적으로 이런 회복을 경험하고 있는가?

  5. Jhon pak says:

    목사님은 12 사도와 같은사도직분이고. 장로는 7집사와. 같은가요?
    성경의 장로는. 목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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