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키우는 사람

가정교회로 개척을 하고
힘든 시간을 보낼 때의 일이다.

하는 일마다 안 되고, 교인들도 재정도 없고,
번듯한 예배당도 없어 기존 교회처럼
주중에 이런 저런 예배나 모임 조차 할 수 없고,
겨우 주일예배 딱 한 번만 드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내 자신이 무척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목사로서 하고 있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할 수 있었던 것은 주일에 가정을 오픈해서
(가족들을 제외하고) 다섯 손가락도 안 되는 교인들과
예배를 드리고 점심식사를 나누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러 채널을 통해서 가정의 필요들을 채워주셨다.
그런데 나는 그런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너무 불편했고 싫었다.
왜냐하면 그런 채우심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신실하게 공급하셨다.
그러면서 나를 계속 설득하셨다.
“그것이 은혜다. 나는 너의 아버지다. “,
“나는 사역보다 너와 너희 가정이 더 소중하다.”,
“너가 무엇인가 받을만한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에
채워주는 것이 아니다. 너가 내 아들이기 때문에
너의 필요를 채워준다.”

하나님은 사역보다, 결과보다
사람을 더 소중하게 여기시는 분이시다.
사람들은 일의 결과로 판단하고 가치를 따지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더 소중하게 여기신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키우는 것에 있다.
그것을 위해 비효율적으로 재정을 쏟아부으시고,
환경과 사람들을 사용하시며,
계속해서 시간을 허비하시며 참고 기다리신다.

오늘 어느 분이 로이 카페에 대해서 물으셨다.
카페를 운영하는 목적이 무엇이고
왜 그런 식으로 운영하냐고.
(카페 운영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할 수 없다)

나의 대답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것이라고!
만약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카페를 이런 식으로 운영하면 안 된다.
하지만 카페를 열어주실 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은 돈도, 사역도 아닌 사람이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렇게 하다가 카페가 문을 닫고 망해도
나는 괜찮다. 후회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했고,
돈보다 건물보다 여러 가지 물건들보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기회를 주고,
새로운 도전들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통해 한 사람이 꿈을 실행해 보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을 시도함으로서
한 발자국 성장할 수 있었다면,
하늘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일을 했기에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늘 아버지는 사람을 세우시는 분이시다.
더불어 우리들을 동일하게
사람을 세우는 사람으로 부르신다.

요즘 드는 생각(새로운 출발을 꿈꾸며)

어차피 하나님 앞에서 한 번 사는 인생이다. 그러니 좋아할뿐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좀 거룩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뜻과 그 분의 부르심을 위해서 살자. 주변 사람이 뭐라고 하든, 눈에 보이는 결과가 어떠하든 상관 없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자.

그럼 그 일이 무엇일까? 하나님이 인도하신 과정들, 시간들, 만남과 사건들을 뒤돌아 보면서 요즘 내리는 결론은 ‘가정교회 개척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선교지에 하고 싶었다. 하지만 요즘 조국 교회 현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제 한국 교회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시작하느냐이다. 제주도에서 가정교회를 개척하면서 뼈저리게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가정교회 개척 운동의 핵심은 건물이나 프로그램, 돈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이다. 신약교회(혹은 가정교회)의 가치와 정신에 동의하고 그렇게 살고 싶은 준비된 한 사람, 한 가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시작할 수 있다.

그동안 선교단체 간사, 선교사 지망생, 목사, 안수집사, 권사 등등 나름 신앙생활도 오래 했고, 어느 정도 훈련도 받았다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고, 그런 사람들과 이런 저런 시도들을 해 보면서 여러 번 실패하고 좌절를 경험하였다. 그 때마다 내린 결론 ‘교회론’의 문제와 준비된 한 사람의 문제였다. 건물이나 방법론의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약 교회의 가치와 정신을 가지고 삶 속에서 살아가려고 몸부림을 치는 한 사람만 있다면 가정교회 개척 사역은 시작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어 다시 가정교회 개척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픈 소망함이 요즘 생긴다. 비빌 언덕은 아무것도 없는데 자꾸 그런 소원함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온다.

그러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20년 전 방글라데시 시골 마을 길을 걸어다니며 꿈꾸었던 일들이다. 건물이나 직분 제도나 프로그램에 갇히지 않고 복음과 성령의 역동성(다이나믹)을 담아낼 수 있는 그런 교회 공동체를 계속해서 세워가는 일들을 이제 시작하고 싶다. 작지만 성령과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교회들이 곳곳에 일어난다면 혼탁한 한국 교회 생태계가 조금은 나아질 것이다.

개척 일기 (2) “건강한 가정교회가 대안이다”

가정교회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된 곳은 90년대 후반 방글라데시였다. 그때 나는 이슬람권 선교사가 되고 싶어서 이런 저런 선교훈련을 집중해서 받았고, 선교지는 방글라데시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처음으로 선교지를 밟은 곳이 방글라데시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곧 깊은 좌절감을 경험하게 되었다. 무슬림이 삶이고 삶이 무슬림인 그 사회를 경험하면 할수록 내가 받은 선교훈련이 의미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그곳에서 교회 개척 사역을 하고 싶었다.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곳, 교회가 개척되지 못한 곳에 교회를 개척하는 사역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피부로 느껴지는 무슬림 사회는 철옹성과 같았다. 도저히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 개척 사역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때 가정교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 남침례 선교사들이 무슬림 지역 안에서 가정교회라는 방식으로 교회 개척 사역을 한다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교회론과 신학을 한 사람으로서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구별된 예배당 없이 가정에서 모이는 모임을 교회라고 부른다는 것이 수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정교회를 접하면 접할수록 그것이 교회의 본질(존재 방식)에 가깝다는 것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나아가 무슬림 지역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 가정교회 방식의 교회 개척 사역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중국 성도들이 엄청난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어떻게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 했는지에 대한 책을 접하게 되면서 중국 처소교회(가정교회, 삼자교회와는 구분된다)를 알게 되었다. 더불어 한국에 셀 교회 사역이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셀 교회 열풍이 강력하게 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참 많은 셀 사역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서 미국식 가정교회가 소개 되었고(앞에서 언급한 가정교회는 ‘레디컬’(과격한)한 방식이라고 한다면, 후자에 언급되는 미국식 가정교회는 온건한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미션얼 처치(missional-church)가 소개 되고 있다.

이런 일련의 흐름을 보면 모두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관련이 있다. 이상하게도 한국에 소개가 되면 모두 프로그램화 되어 버린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가정교회이든 셀 교회이든 미션얼 처치이든 그 핵심은 모두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서 시작하는 교회 회복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절대 교회 성장 프로그램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피값으로 세운 교회가 무엇이며, 그 교회는 세상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처절한 몸부림인 것이다. 나는 이런 교회론적 질문에 가장 성경적으로 답할 수 있는 방식이 (레디컬한) 가정교회라고 생각하고 믿는다.

가정교회를 처음 접한지 20년이 되었다. 지난 20년 동안 다양한 사역의 현장들을 경험했다. 작은 교회에서 중형 교회까지, 선교단체에서 개척 교회까지. 그런 가운데 한국 사회는 엄청난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하루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과거의 목회 방식이나 프로그램들이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 새로운 접근과 시도가 필요하다. 이럴 때일수록 방법이나 도구의 변화를 시도하기 보다는 본질의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나는 교회론의 변화가 시급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답이 될 수 있는 것이 성경적(레디컬한) 가정교회라고 생각한다. 유일한 답이라고는 말하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 문화적인 옷을 어떻게 입힐 것인지에 대해선 남은 숙제이다. 하지만 가장 건강하고 복음적이고 성령의 역사에 민감하며 시대의 변화에 적합한 방식은 가정교회라고 믿는다.

가정/가문을 부르시는 하나님

묵상한 말씀 : 민수기 4:21~33
나에게 주시는 말씀 : “게르손 족속도 그 가문별, 갖고별에 따라 인구를 조사하여라… 므라리 족속을 그 가문별, 가족별 인구를 조사하여라.”(22, 29절)

1. 제사장 이다말의 감독 아래 성막과 회막의 물건들을 운반하는 일을 해야하는 두 가문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로 게르손과 므라리 족속이다.

2. 오늘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가족별’(families)와 ‘가문별’(clans)이다.

3.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는 너무 개인화, 파편화 되었다. 구원도 개인이고, 신앙생활도 개인이다. 예배도 개인이고, 부르심과 사명도 개인이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역사는 많은 경우 가족과 가문(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4. 물론 이것은 어떤 세습이나 특별한 가문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신약을 보아도 신앙의 전수나 교회가 가정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다는 것이다.

5. 현대 교회는 여러 많은 위원회와 조직들이 존재하면서 세분화 되었고 파편화 되었다. 그러면서 유기적인 몸으로서의 교회를 말한다. 하지만 초대교회는 대부분 가정교회로서 관계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였고, 그 관계를 통해서 사역들이 진행되었다.

6. 요즘 여기저기에서 교회 개혁을 외친다. 하지만 조직의 개편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것은 교회를 가정교회로(다시 말하면 가정을 중심으로) 재편하는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

7. 하나님은 가정을 부르셨고, 그 가정을 통해 신앙이 전수되고, 그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미션(mission)이 이루어지길 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