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는 생각(새로운 출발을 꿈꾸며)

어차피 하나님 앞에서 한 번 사는 인생이다. 그러니 좋아할뿐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좀 거룩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뜻과 그 분의 부르심을 위해서 살자. 주변 사람이 뭐라고 하든, 눈에 보이는 결과가 어떠하든 상관 없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자.

그럼 그 일이 무엇일까? 하나님이 인도하신 과정들, 시간들, 만남과 사건들을 뒤돌아 보면서 요즘 내리는 결론은 ‘가정교회 개척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선교지에 하고 싶었다. 하지만 요즘 조국 교회 현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제 한국 교회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시작하느냐이다. 제주도에서 가정교회를 개척하면서 뼈저리게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가정교회 개척 운동의 핵심은 건물이나 프로그램, 돈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이다. 신약교회(혹은 가정교회)의 가치와 정신에 동의하고 그렇게 살고 싶은 준비된 한 사람, 한 가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시작할 수 있다.

그동안 선교단체 간사, 선교사 지망생, 목사, 안수집사, 권사 등등 나름 신앙생활도 오래 했고, 어느 정도 훈련도 받았다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고, 그런 사람들과 이런 저런 시도들을 해 보면서 여러 번 실패하고 좌절를 경험하였다. 그 때마다 내린 결론 ‘교회론’의 문제와 준비된 한 사람의 문제였다. 건물이나 방법론의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약 교회의 가치와 정신을 가지고 삶 속에서 살아가려고 몸부림을 치는 한 사람만 있다면 가정교회 개척 사역은 시작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어 다시 가정교회 개척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픈 소망함이 요즘 생긴다. 비빌 언덕은 아무것도 없는데 자꾸 그런 소원함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온다.

그러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20년 전 방글라데시 시골 마을 길을 걸어다니며 꿈꾸었던 일들이다. 건물이나 직분 제도나 프로그램에 갇히지 않고 복음과 성령의 역동성(다이나믹)을 담아낼 수 있는 그런 교회 공동체를 계속해서 세워가는 일들을 이제 시작하고 싶다. 작지만 성령과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교회들이 곳곳에 일어난다면 혼탁한 한국 교회 생태계가 조금은 나아질 것이다.

개척 일기(1) “돈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대체하지 않는다!”

2013년 가정교회를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건물(예배당, 그들은 교회라고 부르지만)을 어떻게 해서든 얻으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적인 환경 속에서 건물은 곧 교회이기 때문에 십자가가 걸려 있는 예배당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물론 개척을 준비하면서 충분히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 보니 머리로 상상했던 것보다 무지하게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그 분들의 충고가 맞았다. 어떻게 해서든 건물을 가져야 했다. 아마 그때 무리를 해서 건물을 얻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 가운데 목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때 건물을 얻으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다. 개척을 시작한 동네에서 어떻게 해서든 지역교회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여러 건물들을 찾아다니며 예배 공간을 구하려고 애를 썼다(마침 그때가 제주도 부동산이 고공행진을 시작할 때였다). 그 때마다 발목을 잡은 것은 돈이었다. 천만원이 넘는 년세(제주도는 일년치 월세를 한꺼번에 낸다. 그것을 ‘년세’라고 부른다)도 문제였지만, 그 공간을 꾸미려면 만만치 않은 돈이 필요했다. 생각해 보라. 개척교회에 돈이 어디 있어서 그런 투자를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은행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다 빚으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 개척하며 몇 가지 원칙을 정한 것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가능하다면 빚을 지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돈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믿지만, 돈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대체하고 싶지도 않았다. 없으면 없는대로 하면 된다. 구지 무리를 해서 시설을 갖추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기존 신자를 끌어모으는 목회가 아니라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랬다. 그것이 교회가 개척되는 첫 번째 이유라고 믿었다. 기존 신자들을 위한 교회는 너무 많다. 휴가 기간에 육지를 가보니 건물마다 예배당 간판과 십자가 걸려 있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새롭게 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은 기존 교회가 접근하지 못하는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런 교회를 시작하기 위해 수 천만원에서 수 억원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실적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여전히 동의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전하려고 하는 것은 교단이나 교리, 성공이나 축복이 아니다. 편안하고 안락한 의자에 앉아서 드리는 예배 프로그램도 아니다. 설교자의 자기 개발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개척 교회는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그러므로 건물이나 프로그램이 아닌 복음과 성령의 능력이 더 간절히 필요하다.

건물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은 건물이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건물이 없어도 복음만 있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 된다면 그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진짜 소유해야 하는 본질은 잃어버리고 껍데기 같은 건물이나 조직이나 프로그램만을 강조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은 건물의 유무가 아니라 복음을 소유하고 있는지, 그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복음을 들어야 하는 영혼들에게 다가가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그것이 본질이다.

교회 개척 + 복음전도 (1)

1. 교회 갱신 중의 하나가 교회 개척이라고 말하지만, 현장에서 경험하는 교회 개척의 가장 큰 한계와 문제는 기존 신자들을 흡수하는데 그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개척 때부터 무리하게 하드웨어에 투자하는 경향이 강하고, 개척의 방법이나 모양이 기존 교회의 스타일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2. 교회 개척의 진정한 목표는 복음 전파와 회심이다. 그것을 위해 다양한 모습으로 교회 개척이 시도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세상 속으로 들어가 불신자들과 지속적으로 만나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며, 우리가 누리고 경험하는 하나님과 그 나라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3. 하지만 그것이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개척자 자신이 이미 기존 교회의 스타일과 그 안에서 보고 배운 신앙생활의 패턴에 완전히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불신자들과 거의 단절된 삶과 사역을 해 오다가 개척한다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패턴들이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아니다.

4. 교회 개척은 불신자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기존 교회를 축소해 놓은 그런 모습으로는 이젠 어렵다. 새로운 접근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진 개척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개척 이전부터 불신자들과 만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몸부림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척 4년 차를 보내며 (2)

1. 개척 4년 차를 보내면서(더불어 2017년을 보내면서) 삶과 사역을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개척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비신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채널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삶의 패턴들을 점검해 보니 목사로서 비신자들과 너무 단절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루의 대부분을 교회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면서 보낼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아무리 살펴봐도 온통 목사와 직분들 뿐이다.

2. 인간이라는 존재가 참 신기한 것이, 한 번 세팅된 생활 방식들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학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신학생과 전도사라는 명칭이 붙고, 대부분의 시간을 소위 경건이라는 이름 하에 세상과는 단절된 상태로 살아간다. 그러다가 안수를 받으면 풀타임 사역자로 목회를 시작하게 되는데, 그 시간도 대부분 교회와 관련된 일들을 하느라 바쁘다. 새벽 기도회부터 시작해서 밀려오는 행정 업무들, 설교 사역과 심방들,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돌리는데 정신이 없다보니 비신자들의 세계 가운데로 들어갈 기회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하다.

3. 문제는 개척을 하면 생긴다. 개척을 했다는 것은 기존 신자가 아니라 복음을 아직 듣지 못한 비신자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목사는 그런 비신자들의 세계에 대해서 거의 혹은 많이 모른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며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경험하지 못하고 개척이라는 현장에 뛰어든다. 여기서 많은 목사들이 오해를 한다(나도 오해를 했다). 지금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못하는거지, 기회가 주어지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삶의 습관이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4. 복음 전도는 농사에 비유될 수 있다. 농사의 목적은 추수이다. 결과적으로 원하는 열매를 얻어내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선 앞선 과정들과 시간들이 필요하다. 토지를 개간해야 하고, 씨를 뿌리고, 자라도록 관리하고 돌봐야 한다. 그리고 난 후에 때가 되면 열매가 맺혀 추수를 하게 된다. 우리의 착각은 앞선 과정들은 무시한채 추수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노방 전도를 나간면 간혹 그런 경험들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가 그 한 영혼을 위해서 앞선 과정들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쉽게 추수만 하려고 한다. 그것을 위해 기도한다. 그러나 진정한 전도는 울며 씨를 뿌리는 과정들이 먼저 필요하다.

5. 개척 교회 목사는 무엇보다 세상 속으로, 비신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옛날처럼 건물을 얻고 예쁘게 인테리어를 꾸미고 십자가를 세운다고 사람들이 몰여오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반 기독교적 정서와 불신이 팽배한 시대이다. 좋은 시설을 갖추고, 설교를 잘해야 개척 교회가 성장한다는 말은 (비판적으로 말하면) 기존 신자를 대상으로 개척 목회를 하라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계속 이야기 하지만 우리는 ‘파이 싸움’을 하려고 교회를 개척한 것이 아니다.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로 들어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결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 개척을 한 것이다.

6. 하지만 불신자를 대상으로 사역을 해 본적이 없는 목사가 개척을 한다고 하루 아침에 목사로서 살아온 삶의 방식들을 벗어버리고 비신자들의 거친 세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일은 거의 성육신에 비견되는 일이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이미 종교화/기독교화 되어 있다. 사용하는 언어부터 시작해서 삶의 방식들이 자신들만의 독특함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런 환경 가운데 오래 살아오다보니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삶의 스타일들을 벗어 버리고 비신자들의 세상 안으로 들어가 그들과 관계를 맺고 친구가 되고 신뢰를 쌓고 복음을 전하는 일은 절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많은 목사들이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삶의 방식일 수 있다(내가 그렇다는 말이다. 누구를 정죄하고 비난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살아왔다는 말이다).

7. 건물도 필요하고 여러 가지 하드웨어가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그것만 준비한다고 채워지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우리들만의 장소와 시간과 삶의 스타일을 벗어버리고 세상 속으로,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 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 기존 교회는 그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라도 있지만, 개척 교회는 목사와 목사의 가정이 그런 일들을 시작해야 한다. 비신자들을 만나고 친구가 되고 좋은 신뢰를 쌓아가는 시간들을 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목사가 먼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런 부분들이 준비되지 않고선 개척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도전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