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 4년 차를 보내며 (1)

1. 교회 개척 4년 차가 끝나가고 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실패와 좌절, 고통의 시간들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름 1년 정도 고민하고 준비하고 개척을 했지만 이렇게까지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몰랐다. 아무튼 인간은 직접 경험해 봐야 안다. 주변에서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지금이 얼마나 개척이 힘든 시즌인지에 대해서도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어도(개척하기 전에 2년 정도 개척 교회 멤버로 섬기면서 개척의 어려움을 목도했다) 자신의 직접 경험해야 알게 된다.

2. 그렇다면 이 시간들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 한 문장으로 정리를 한다면, 전통적인 교회 개척 방법은 이제 한계가 왔다는 것이다. 진짜 이젠 안 된다(진짜 안 된다. 제발 과거의 방법으로 개척하지 마라!). 또한 전통적인 목회와 교회론에도 한계가 왔다는 것이다. 더 이상 건물을 멋지게 꾸며 놓는다고 모이는 시대는 지났다(그렇다고 건물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렇게 글을 쓰면 꼭 오해하는 분들이 계신다). 이 부분에 대해서 교단 선배님들이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땅 사서 건물 짓는다고 교회 개척이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물론 없는 것보단 좋을 것이다). 교회 개척은 건물을 짓는 것이나 눈에 보이는 공간을 만들어 놓는 것이 아니다. 간판 달고 십자가를 걸어놓는다고 개척이 되는 것은 아니다.

3. 사고의 틀, 교회 개척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흔히 말하는 전략이란 것이 그런 것이다. 교회 개척의 전략이라는 것이 어느 지역에 어떤 방식의 교회를 시작할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사고와 패러다임의 변화가 전략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완전히 판을 새롭게 짜는 시도와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4. 이것의 진정한 시작은 “우리가 실패했다”는 자기 반성과 인식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실패했고 실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방법으로 교회 개척은 계속되고 있다. “나는 괜찮을거야.”, “나는 그들과 달라!”라는 사고로 지금까지 실패하고 있는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며 교회 개척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지금까지 보고 경험했던 교회 생활을 그대로 재생하려고 한다. 그런 관점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결과는 실패와 좌절이다. 본인도 그런 실패와 좌절을 4년 동안 처절하게 경험했다.

5.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가 처절하게 실패했다. 이대로 안 된다.”라는 반성과 포기이다. 어쩌면 실패를 통해서 배운 것이 있다면 20년 넘게 사역과 목회를 하면서 붙들고 있었던 모든 것을 겸손히 내려놓는 것이다. 이게 말이 쉽지 굉장히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정체성도 흔들리고, 실패했다는 고통은 정서적 어려움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정적인 어려움으로까지 연결되어 바닥에 바닥을 치게 만든다. 마치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동안 신학과 사역을 통해 배우고 확신한 것들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6. 하지만 소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실패와 좌절을 통해서 새로운 길을 찾게 된다. 고난을 통해 패러다임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 방법 저 방법을 다 동원했는데도 실패하면 아예 처음부터 다른 접근을 생각하게 된다. 그럼 면에서 교회 개척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개척에 대한 접근 자체를 완전히 달리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어느 대형 교회에서 성공한 목회 방법론만을 찾아 다니지말고 교회와 목회가 무엇인지,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과 복음이 무엇인지, 신앙생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금은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을 추구하고, 그 본질을 통해서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시도가 필요한 시대이다.

예수님으로 충분한 목회

“개척자가 예수 복음을 회복하여 십자가 부활의 능력으로 목양한다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의 교회는 든든히 세워질 것이다. 예수를 가진 자는 모든 것을 가진 자이다”

음… 요즘 이런 문구만 보면 화가 난다. 나는 이런 말을 하는 선배 목사님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그러세요? 정말이요?” 당신들은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후배들에게 혹은 작은 교회/개척 교회 목회자들에겐 그렇게 살라고 요구하시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예수님 한분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정작 본인들은 더 많은 것들을 가지려고 하고, 더 많은 것들을 누리려고 하고, 더 높이 올라가려고 하면서 그런 말을 너무도 쉽게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목회의 비법인 것처럼 말하는 선배 목사님들의 가르침이 싫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다면 먼저 그렇게 살아내라. 진리는 지식으로 전달 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훈련 방법이었다. 우리는 멋있고 화려한 말로 가르치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직접 삶으로 보여주셨다.

교회는 가족이다!

개척교회를 하면서 느끼는 비애는… 교회를 쇼핑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대형교회 기준들을 가지고 와서 목사의 설교를 평가하고… 교회 공동체를 평가한다.

하지만 그들이 놓치는 것이 하나 있다. 우리는 흔히 교회를 가족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들 중에 가족을 자신의 기준으로 선택한 사람이 있는가? “아! 난 이 가족이 마음에 드네. 앞으로 이 가족의 일원이 될거야” 이런 식으로 자신이 가족을 선택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교회를 그렇게 선택하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교회 안에 어떤 프로그램이 있고, 목사의 설교가 어떤지, 예배당 시설은 잘 갖추어져 있는지를 두루 살핀다. 그리고 가족이라고 말하는 교회를 선택한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관계는 반대로 만들어진다. 입양을 하더라도 부모 혹은 가족이 선택한다. 그리고 가장 건강한 모습은 새생명의 탄생으로 가족이라는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난… 한 가지를 결정하고 선택하려고 한다. 교회가 가족이라는 것과 그 가족이라는 관계는 오직 입양과 탄생을 통해서만 만들어지게 하려고 한다. 그외 다른 방법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건강한 가족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세워기기 위해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세 겹 줄의 원리

Golden Gate Bridge묵상한 말씀 : 전도서 4:1~16
나에게 주신 말씀 :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9~12절)

계속해서 전도서의 저자는 인생의 헛됨을 말하고 있다. 이것도 저것도 헛된 것들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런 헛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모든 것이 헛된 것들 뿐인데 그 속에서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할까?

저자는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이 함께 하는 삶을 말한다. 한 사람으로는 그런 헛된 인생을 힘있게 살아갈 수 없다.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이 함께 하면 넘어지더라도 다른 사람이 붙잡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누우면 춥지만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싸우면 쉽게 패하지만 두 세 사람이 함께 하면 맞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세 사람이 함께 수고할 때 좋은 상(결과, 열매)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혼자서 수고하면 고독하고 외로울 뿐이다. 하지만 함께 고생하고 수고하면 보람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이것이 헛된 인생에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세 겹 줄의 원리’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엄청난 길이의 현수교(도로를 지지하는 상부 케이블이 설치된 교량, 주탑과 주탑 사이에 게이블을 늘어뜨려 연결하는 형식의 다리)는 수많은 얇은 케이블을 엮어서 연결한 다리이다. 굵은 줄 한 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느다란 쇠줄을 서로 꼬아서 주탑과 주탑을 연결한 것이다.

헛된 것들로 가득찬 세상 속에서 가장 지혜로운 삶의 방식은 바로 ‘세 겹 줄의 원리’를 따라 사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이다. 혼자 고독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두 세 사람이 혹은 두 세 가정이 함께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침에 이 말씀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함께 주님이 기뻐하시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헌신하고 수고할 수 있는 두 가정을 보내어 달라고 말이다. 함께 붙들어 주고, 함께 격려하며, 함께 싸울 수 있는 두 가정만 있다면 어려운 교회 개척의 상황 속에서 힘 있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미 내 주변에 있는 귀한 동역자들, 지체들과 함께 복음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에 더욱 힘써야겠다. 나에게 허락된 관계속에서 계속 세 겹 줄을 만들어 가는 노력을 쉽지 않아야겠다. 그것이 척박한 이 제주도 땅에서 넘어지지 않고 달려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