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3 주일예배 설교

일시 : 2018년 12월 23일 주일예배 설교
말씀 : 누가복음 4:18~19
제목 : 복음이란 무엇인가?
설교 : 이상준 목사(복음자리교회)

2018년 12월 9일 주일예배 설교

2018년 12월 9일 주일예배

누가복음 17:20~21

이상준 목사(복음자리교회)

예수님께 듣고, 예수님께 배우자!

묵상한 말씀 : 누가복음 20:19~26
나에게 주시는 말씀 : “그렇다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25)

1. 율법학자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이 하신 비유가 자신들을 향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당장 예수님을 체포할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그들은 백성들을 두려워 하였다(19). 그만큼 예수님은 백성들의 지지(인기)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허상이고 허구이다. 왜냐하면 그 백성들이 곧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의 문제가 여기에 있다.

2. 기회를 엿보던 그들은 첩자를 보내어 의로운 사람을 것처럼 행동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트집을 잡아 총독에게 넘겨주려는 음모를 꾸몄다(20). 이것은 그들에게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로 예수님을 로마 총독에게 넘기려고 했던 것이다.

3. 첩자들은 예수님께 질문을 던진다. “선생님, 선생님의 말씀과 가르침이 옳은 줄 저희가 압니다. 또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고 언제나 진리에 따라 하나님의 길을 가르치시는 것도 압니다. 저희가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21~22) 이들은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로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칭찬하고 높임으로서 자신들이 쳐놓은 함정에 빠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들의 표현대로 예수님은 그들의 숨은 의도와 목적을 정확히 알고 계신다(23). 또한 참된 진리를 가르치시는 분이시다.

4. “데나리온을 나에게 보여 다오. 동전에 있는 얼굴과 새겨진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24) 그 첩자들은 대답한다. “가이사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은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25) 그들은 예수님의 대답을 통해서 총독에게 예수님을 고소하려고 했다. 아마 이런 주제들이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인들에게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였을 것이다. 이렇게 대답하든지 저렇게 대답하든지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두 가지를 상충되는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으신다.

5. 이것은 단순히 세금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많은 성도들에게도 많은 것들을 말씀하신다. 구원을 받음으로서 하나님 왕국의 백성이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 왕국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더불어 우리는 여전히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겐 두 가지 의무가 동시에 부과되는 사람들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의무와 동시에 하나님 왕국의 백성들으로서 진리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의무이다.

6. 우리는 자주 그것이 상충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는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그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진리이고 삶의 방식이다. 진리를 부정하거나 죄를 짓게하는 것이 아닌 이상 우리는 이 두 가지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행했다고 이 세상에서 행해야 하는 의무를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7.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면, 아마 이런 이슈는 당시 사람들에겐 매우 민감한 문제였을 것이다. 여러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 치열하게 논쟁하고 갈등 했던 이슈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문제로 예수님을 함정에 빠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이런 대답에 어떤 트집도 잡을 수 없었다. 반대로 그런 예수님의 대답에 놀라서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26). 이렇게 그들의 음모는 무너지고 깨어졌다.

8. 예수님은 진리이시고 하나님이시다.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보실 수 있는 분이시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다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네 개의 복음서가 있다(비록 세 개의 복음서는 많은 부분들이 비슷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자. 참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바르게 배워 가자.

믿음으로 듣고 볼 수 있어야 한다!

묵상한 말씀 : 누가복음 18:31~43
나에게 주시는 말씀 : “다윗의 자손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38)

1. 누가복음의 많은 이야기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 위에서 발생한다. 이제 그 여정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은 제자들을 따라 불러 놓고 말씀하신다. “보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예언자들이 인자에 대해 기록한 모든 것이 이뤄질 것이다. 인자가 이방 사람들에게 넘겨져 조롱과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채찍질한 후에 그를 죽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3일째 되는 날 살아날 것이다.”(31~33)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고 계셨다. 그 일은 절대 유쾌하거나 즐거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무서운 고통과 모욕과 치욕을 겪어야 한다. 예수님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하지만 3일 후에는 다시 살아날 것도 알고 계셨다. 예수님은 지금 그것을 제자들에게 따로 예고하신다.

2. 하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왜 이런 말씀을 지금 하시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의 뜻이 제자들에게 숨겨져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34). 이 말씀에서 독특한 점이 두 가지가 발견된다(누가복음에서만 나타나는 요소들). 첫째는 선지자들이 기록한 것을 성취한다는 것이고(31), 둘째는 제자들이 전혀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34). 다시 말하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이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성취하신다는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방 사람들에게 넘겨지며, 왜 조롱과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해야 하는지, 왜 죽어야 하고, 왜 3일만에 부활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3.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어느 맹인의 치유 사건이다. 예수님의 일행이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길거리에서 구걸하던 한 맹인이 있었다(35). 그는 갑자기 길거리가 소란해지자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36). 사람들은 그 이유를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고 말해준다(37). 그러자 그 맹인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38) 주변 사람들이 그 맹인을 꾸짖으며 조용히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맹인은 그런 핀잔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동일하게 소리를 지른다. “다윗의 자손이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39) 마침 길을 가시던 예수님은 그 맹인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를 부르신다. “그 사람을 데려오라”(40) 그리고 그에게 물으신다. “내게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그가 대답한다. “주여, 다시 보고 싶습니다.”(41) 예수님은 그 맹인에게 말씀하신다.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42) 그러자 그는 곧 보게 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을 따라갔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찬양했다(43).

4. 이 사건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 맹인이 사람들에게서 들은 소식(나사렛 예수)과 구약 성경에 약속된 ‘다윗의 자손’을 연결 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다윗의 자손이 지나간다고 듣지 않았다. 그는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고 들었다. 하지만 맹인은 그 나사렛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분임을 고백하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가 예수님에 대한 어떤 소문을 어떻게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정확하게 인식하고, 인식할뿐 아니라 그렇게 불렀다는 것이다. 감사한 것은 예수님이 그런 맹인의 외침을 들으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외침에 응답하시어 그를 자신의 앞으로 데려오도록 명령하신다. 그리고 그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으신다. 이것은 예수님이 그의 필요와 상황을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지금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의 믿음을 드러내시고, 그가 구원 받았음을 선포하시기 위함이다.

5.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맹인을 고치신다. 그 결과는 맹인뿐만 아니라 그 광경을 본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예수님은 보지 못했던 한 사람이 다시 보게 되었다는 것, 그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계신다. 그 맹인 육체적인 시력은 없었지만 먼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외쳤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다시 보게 될뿐만 아니라 구원도 받았다고 선언하신다. 즉 이 맹인은 육체적 시력뿐만 아니라 영적인 시력도 회복하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다.

6. 이것이 누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일어날 일들을 미리 이야기해 주어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과, 비록 육적인 시력은 없지만 영적으로 예수님을 볼 수 있었던 맹인의 이야기가 묘하게 오버랩(overlap)이 된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따르고 있지만, 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지 못하는 제자들과 나사렛 예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맹인의 믿음을 보면서, 어쩌면 하나님의 역사를 가장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작은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비록 육체적인 시력은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영적인 시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