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인은 그리스도입니다!

king-jesus1묵상한 말씀 : 로마서 14:1~12
나에게 주시는 말씀 : “우리 중에 아무도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없고 자기만을 위해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습니다. 그러므로 죽든지 살든지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 (7~8절)

1. 오늘 말씀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다른 의견과 생각, 취향 그리고 아직 믿음이 약한 지체들과 어떻게 관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당시 로마교회 공동체 안에 이런 갈등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잠시 당시 로마교회의 상황을 살펴보자. 로마교회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 아마 사도행전 2장의 사건을 통해서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듣고 다시 로마로 간 유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세워졌을 것이다. 그 이후에 글라우디오의 칙령에 의해서 대부부의 유대인들은 로마를 떠나게 된다(행 18:2). 그때 로마교회 멤버들이 이방 그리스도인들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리고 로마를 떠났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돌아오게 되면서 로마교회는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 그리스도인이 서로 혼재되어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아마 이런 배경 때문에 로마교회 안에는 적지않은 갈등과 혼선이 존재했을 것이다.

2.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율법을 지키며 유대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고, 이방 그리스도인들도 자신들의 문화와 삶의 방식들을 어느 정도 고수하여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복음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해서 구원의 문제, 율법의 문제, 생활양식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의견과 생각과 가치들이 충돌하게 되는 상황들이 만들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상황에 놓인 로마교회를 향해서 장문의 편지를 쓴다. 복음이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율법이 무엇인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유대인의 구원과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서, 그리고 오늘 말씀처럼 믿음과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3. 첫 번째 원칙은, 믿음이 약한 사람을 받아들이되 그의 견해를 논쟁거리고 삼지 말라는 것이다(1절). 각자의 믿음에 따라 어떤 음식은 먹기도 하고 먹지 않기도 한다는 것이다(2절). 모든 음식을 다 먹을만한 믿음이 있다고 해서 먹지 못하는 지체를 거부하거나 그것을 가지고 논쟁거리고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4. 두 번째 원칙은, 그렇게 먹지 못하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반대로 아무 것이나 먹는 사람을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먹는 사람이나 먹지 못하는 사람이나 구별하지 않으시고 다 받아주셨다는 것이다(3절). 하나님에게는 그런 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인간들이 그런 음식의 문제를 가지고 서로 무시하고 비판하냐는 것이다.

5. 더 나아가 어떤 사람은 어느 한 날을 다른 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반대로 모든 날이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것은 각자의 마음에 있는 확신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이다(5절). 어떤 날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어떤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는 것도,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으로 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6절). 중요한 것은 어떤 날이나 어떤 음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와 동기이다.

6.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동기와 태도를 보신다. 그것을 보시고 그 사람을 세우기도 하시고 허물기도 하신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몫이지 인간의 몫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런 날이나 음식을 가지고 서로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4절). 여기서 우리는 이런 문제를 다루는 중요한 세 번째 원칙을 발견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7. 형제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심판대에 올라가서 자신이 스스로 심판관이 되어 지체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똑같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10절).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을 하나님 앞에 자백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11절).

8. 그러면서 이런 문제에 대한 가장 중요한 원칙을 제시한다. 무엇을 먹을 수 있는가? 없는가? 어떤 날이 중요한가? 그렇지 않은가? 그런 것들을 가지고 논쟁하고 지체들을 정죄하고 비난하지 말고, 무엇을 하든 무엇을 먹든 주님을 위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 우리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분을 위해 살고 그 분을 위해서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7절).

9.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으로 죽은 자와 산 자의 주님이 되셨다는 것이다(9절). 십자가를 통과하고, 복음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했다면, 그 사람의 삶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인이 바뀌었다. 그 전에는 죄가 주인이었고 자신이 주인이었다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삶의 주인이 되셨다.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주를 위한 삶이 되어야 한다.

10. 어떤 날을 중요하게 지켜야 한다면 그것이 주님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반대로 모든 날을 똑같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그것도 주님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한다면 그것도 주님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어떤 음식이든 상관 없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주님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모든 것이 주님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이것을 잃어버리고 어떤 음식 때문에, 어떤 날 때문에 지체들과 논쟁하고 정죄하고 비난하는 일은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11. 우리가 올라가 있는 심판대에서 내려오자. 우리는 심판자가 아니다. 그런 행동과 말들을 당장 멈추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삶을 살아가자. 무엇을 하든지 주님을 위한 삶을 살아가자. 더불어 지체들을 사랑하고 인정하고 수용하자. 생각이 다를 수 있고, 취향이 다를 수 있으며, 문화가 다를 수 있다. 그것 때문에 주님의 몸을 나누고 분열 시키지 말자. 지체들을 비난하고 공격하지 말자.

율법의 완성과 종말론적인 삶

10-new-2-e1329596303874묵상한 말씀 : 로마서 13:8~14
나에게 주시는 말씀 :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어두움의 일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10b, 12b)

1. 오늘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8절에서부터 10절까지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완성(10절)이라고 말씀하신다. 11절부터 14절까지는 어두움의 일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12절) 말씀하신다. 그것이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성도의 자세라고 하신다.

2. 먼저 8절을 보면, 사랑의 빚 외에는 다른 어떤 빚도 지지 말라고 하신다. 비슷한 이야기를 로마서 1장 14절에 하고 있는데, 사도 바울 자신은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라고 고백한다. 여기서의 빚은 복음을 말한다. 두 구절을 종합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복음과 사랑에 빚을 진 자들이다. 그리고 그 복음과 사랑의 원금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그 빚을 하나님께 갚아야 하는데, 하나님은 그 빚을 자신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에게 갚으라고 하신다.

3. 우리는 여기서 복음과 사랑이 하나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복음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다. 죄인을 향한 사랑, 집 나간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복음의 시작이다. 그 잃어버린 아들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이 직접 인간이 되어 죄값을 치루신다. 아버지를 거부한 아들은 그 놀라운 사랑을 통해서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온다. 아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을 경험한 것이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그 사랑을 이제 아버지가 아닌 다른 이웃, 그 사랑을 알지 못하는(더불어 그 사랑을 함께 경험한) 이웃들에게 나누라고 말씀하신다.

4. 그런 의미에서 8절과 10절을 다시 보면,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다(whoever loves others has fulfilled the law, 8절). 10절에서는 사랑이 율법의 완성(therefore love is the fulfillment of the law)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이미 로마서 전반부에서 다룬 율법과 구원(믿음, 의롭다)의 상관 관계를 다시 보여주는 구절이다.

5. 우리는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 그렇다고 율법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할례(vs. 육체의 할례), 새언약(vs 옛언약), 십자가의 복음이 말씀하시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하는 삶이다. 구약에서는 타락한 죄인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율법을 준행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신약에서는 그 죄로부터의 완전히 해방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준행할 수 있게 된다. 신자 안에서 그 일을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다.

6. 그렇다면 어떻게 율법을 준행하고, 그 율법을 다 이룰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하면 율법을 준행하게 되고, 사랑하면 율법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9절이 그것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간음’, ‘살인’, ‘도둑질’, 탐심’은 모두 십계명의 두 번째 돌판 내용이다. 그런데 이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그것이 바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7. 여기서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자. 아니 십계명을 두 가지로 요약해 주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39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은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8. 복음에도 두 돌판이 있다. 첫 번째 돌판의 내용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이야기이다. 두 번째 돌판에는 그 사랑을 경험한 자가 이웃들과 나누는 사랑 이야기이다. 이것을 다시 마태복음 22장으로 연결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만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누리고 있는 사람만이 네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다.

9. 성경은 그것이 바로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씀하신다. 율법은 선하고 영적인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율법주의를 말하고 것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가 구원 받은 목적은 그 율법을 준행하는 것이다. 사실 여기서부터가 갈림길이다. 율법을 준행하느냐? 율법주의에 빠지느냐? 차이는 한 가지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고, 그것으로부터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율법을 준행하는 것이다. 반대로 과거와 동일하게 자신의 힘과 능력, 규례와 원칙들을 지키려고 한다면 율법주의에 빠지게 된다.

10. 11절부터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질 것을 말씀하고 있다. 주님의 재림과 심판의 때가 가까이 왔고, 그 시기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잠에서 깨어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11.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종말론적 신앙에 대해서 여러가지 오해를 가지고 있다. 오늘 말씀 12절 이하를 읽어보면 종말론적 신앙을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어두움의 일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는 것이다(12절). 방탕하지 않고, 술 취하지 말고, 음행하지 않고, 호색하지 않으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않는 것이다(13절). 오직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더 이상 과거처럼 육신의 일을 애쓰지 않는 것이다(14절). 성경은 이것을 빛의 삶, 낮의 삶이라고 하신다.

12. 더 이상 밤의 삶, 어두움의 삶을 살지 않는 것이다. 그런 삶을 청산해 버리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종말론적인 삶이다. 주님의 오실 때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삶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잘못된 종말론의 가르침에 현혹되지 말라. 굉장한 비밀을 아는 것 같고, 시대를 분별하는 것 같고, 성경의 깊은 비밀을 말하는 것 같지만, 성경은 그렇게 복잡하게 말씀하시지 않는다. 주님의 재림, 종말을 정말로 믿고 인식한다면 주님과 동행하며 빛 가운데 살아가라. 그것으로 충분하다.

권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authority.jpg묵상한 말씀 : 로마서 13:1~7
나에게 주시는 말씀 : “여러분은 모든 사람에게 의무를 다하십시오. 조세를 바쳐야 할 사람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바쳐야 할 사람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해야 할 사람을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할 사람을 존경하십시오.” (7절)

1. 오늘 말씀은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많은 논란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여러 정권에 의해서 악용되기도 한 말씀이다. 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무슨 권세든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없고 이미 있는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2.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 공동체을 향해 권세들 – 국가, 정치 지도자들, 권력과 정권 – 에게 복종하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모든 권세를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한다면,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에 불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3. 역사적으로 보면 이 말씀을 놓고 많은 논쟁들이 있어 왔다. ‘무슨’ 권세이든 ‘다’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에, 비록 그 권세가 악하다 할지라도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성경적인 해석일까?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적용해야 하는가? 성경의 전체적인 메시지에 부합되는가?

4. 성경을 보면 잘못된 국가 권력에 불순종 하는 내용이 분명히 등장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새롭게 태어나는 모든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죽이라는 바로의 명령을 거부했던 히브리 산파들(출 1:17), 왕이 내린 음식을 거절할 뿐 아니라 우상 앞에 절하지 않았던 다니엘과 세 친구(단 3:6),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산헤드린의 명령을 거절했던 베드로(행 5:29) 등이 있다.

5. 그렇다면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가?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국가 권력의 역할 – 하나님이 그들을 세우신 목적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4절을 보자. “그는 여러분에게 선을 이루기 위해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또한 같은 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6절도 보자.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고 있습니다.”

6. 공통된 표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일꾼’(God’s servant)이라는 것이다. 국가 권력은 하나님을 대리하는 집행자이다. 하나님이 국가 권력 혹은 정치 지도자를 세우신 목적은 선을 장려하고 악을 심판하는 것이다(4절). 그러므로 그 국가 권력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은 복종해야 한다. 더불어 국민으로서의 의무인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7. 우리는 여기서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 국가 권력이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선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조장하고 있다면, 더군다나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치되는 정책을 세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도 그 권력에 순종해야 하는가? 성경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말씀은 그런 상황에서도 순종하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8. 그런 권력이라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기준을 넘어서는 것이다. 성경은 그것을 ‘교만’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철저하게 다루신다. 자신의 분수를 아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국가 권력을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반대로 그 국가 권력을 허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9. 오늘 말씀은 ‘질서’와 ‘권위’가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권위를 거부하고 허무는 자들이 아니다. 참된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어쩌면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오늘 말씀을 깊이 되새기고 생각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권위를 거부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과거 잘못된 권위에 순종하라는 가르침에 대한 반항일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잘못된 권위에 대해선 순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모든 권위를 거부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무슨 권세든 하나님께로부터 와지 않는 것이 없고 이미 있는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10. 그리스도인들은 권세자들에게 순종하고, 국민으로서 주어진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정해진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하는 것이다(6~7절). 또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권위와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지도자들을 공경하고 존경해야 한다. 그것이 이 땅에 속한 자로서 살아가야할 삶의 방식이며 모습인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어디까지 순종하고, 어디부터 거부해야 할까?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good-vs-evil묵상한 말씀 : 로마서 12:9~21
나에게 주시는 말씀 : “악에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21절)

1. 오늘 말씀을 두 단어로 요약한다면, ‘사랑’과 ‘선(진리)’이다. 그리고 사랑과 선(진리)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이고, 선을 행함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이 사랑하는 것이다(9, 21절).

2. 그 사이에 사랑과 선을 행하는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A) 형제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10절), (B) 열심으로 일하고 성령의 뜨거움으로 주를 섬기는 것(11절), (C) 소망 가운데 기뻐하고 환난 가운데 참으며 기도에 힘쓰는 것(12절), (D) 성도들의 필요를 공급하고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13절), (E) 핍박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않는 것(14절), (F)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는 것(15절), (G) 마음을 같이하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고, 비천한 사람들과 사귀고, 스스로 지혜 있는체 하지 않는 것(16절), (H)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한 일을 힘쓰는 것(17절), (I)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는 것(18절), (J) 원수를 스스로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19절), (K) 원수가 굶주려 있다면 먹이고, 목말라하면 마실 것을 주는 것(20절).

3. 그런데 이 말씀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 상반된 두 가지 개념을 대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A) 악 evil – 선 good (9절), (B) 사랑 love – 존경 honor (10절), (C) 열심으로 일하는 것 never be lacking in zeal – 뜨거운 마음으로 주를 섬기는 것 keep your spiritual favor, serving the Lord (11절), (D) 소망 가운데 기뻐함 be joyful in hope – 환난 가운데 참음 patient in affliction (12절), (E)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함 share with the Lord’s people who are in need – 나그네를 대접함 practice hospitality, (F) 축복 bless – 저주 curse, (G) 기뻐함 rejoice – 울음 mourn

4. 악을 이기는 방법은 선을 행하는 것이다. 악을 드러내고 악을 악이라고 정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선을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이 삶 속에서, 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어떤 감정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이란 진리를 기반으로 관계 속에서 섬기고, 존경하고, 기뻐하고, 참고, 기도하고, 필요를 채우고, 축복하고, 함께 울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고, 낮은 자와 사귀고, 원수를 갚지 않는 것이다.

5. 또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가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삶이다. 또한 같은 공동체 안에 있는 지체들의 필요만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그네도 대접하고 섬기는 것이다. 원수를 갚지 말고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히려 원수들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을 행하는 삶이고, 서로 사랑하는 삶이다.

6. 여기엔 취사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만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을 행한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선이고 사랑이 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어느 것 하나만을 행하면서 선을 행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샬롬이다. 샬롬은 그저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상태만을 말하지 않는다. 진정한 샬롬은 전인격적이다. 삶의 모든 부분에서 진리를 행하고 사랑을 행해야 하는 것이다.

7. 그것이 바로 악을 이기는 삶이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함으로 이 땅에 만연해 있는 악을 몰아내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어둠은 빛의 부재라는 말이 있듯이, 악은 선의 부재인 것이다. 온전한 선 – 하나님의 진리를 행함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자. 그것이 이 땅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목표이고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