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실종, 성서학 실종]

신학대학에서 신학과 성서 연구는 왜 배웠나? 짧게는 3년 길게는 7(6)년을 그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신학과 성서학을 배운 이유가 무엇인가? 학교 졸업하면 끝인가? 그 이후론 세상 학문과 지식만 배우나? 경영학, 마켓팅, 통계학, 심리학, 혹은 자기개발(계발)과 부자 되는 법만 배우나? 그렇다면 역사와 사회학, 인문학, 세계관 분야에도 관심을 좀 가지시라. 더 폭 넓게 공부 좀 하시라.

아니면 목사 되려고 배웠나? 목사 안수를 받으려면 신학 과정을 이수해야 하니까 신학대학을 다닌 것인가? 요즘 목회 현장과 강단을 보면 신학이나 성경을 가지고 씨름한 흔적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누구의 간증과 어느 책에서 봤던 관련 이야기, 본문에 몇 번 등장하는 관련 단어들만 가지고 설교하는 소리만 무성하다.

요즘 목회 현장과 강단에서 신학의 위치는 어디고 역할은 무엇인가? 아니 너무나 기본적인 성서 연구조차 하지 않는다면 뭐하러 본문을 정하며, 그것을 구지 대독자까지 세워서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말씀을 읽을 때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이란 표현은 참 공허하고 헛되게 들린다.

한국 교회가 이 지경이 되고, 성도들의 의식 수준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 엉망이 된 가장 큰 책임은 거의 백 퍼센트 목사인 우리들에게 있다. 세상이 타락하고 혼탁해져서가 아니다. 자주 말하지만 세상은 원래 타락하고 깨어진 곳이다. 아담 이후로 더 나아지거나 더 나빠지지 않았다. 그러니 세상 탓하지 마라. 다 우리 목사들의 잘못이다.

신학대학에서 배운 신학은 쓰레기통에 다 던져버리고 오직 눈에 보이는 숫자에만 매달려 교인 수와 몸집을 키우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다보니 성경을 가지고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세상 지식이나 축복, 성공, 무슨 무슨 법칙들만 강단에서 나열한다. 읽은 말씀을 가지고 조금만 깊이 다루면 재미 없다 지루하다는 피드백이 바로 들어오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이 두려워 가볍고 재미 있는 설교만 하려는 우리 목사들에게 더 큰 문제가 있다.

신학이 없는 목회, 성경이 없는 강단이 한국 교회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상이나 동성애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신학이 없는 목사들과 성경이 없는 강단이 더 심각하고 시급한 문제이다. 그것이 한국 교회를 지속적으로 좀 먹었으며 부패하게 하였다. 요즘 교회는 하급 종교로 완전히 전락해 버린 것 같다. “우리는 세상 종교와 다르다! 오직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라고 외치지만 교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교회가 외치는 구원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가벼워도 너무 가볍다. 얕다 너무 얕다. 수준 미달이다. 그래서 아프고 슬프다. 신학이 무엇이고 성경이 왜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너무 많다. 나도 희망적인 이야기, 소망적인 간증을 나누고 싶다. 이런 부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미래의 비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요즘 현장에서 들여오는 이야기는 그런 미래적 소망과 희망을 말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 엉클어진 실 타래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프다. 많이 아프다.

멈추어야할 때

1.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대형교회 부목사의 성적인 문제가 또 터졌다. 아마 이런 문제는 계속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유(원인) 몇 가지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2. 대한민국 가정의 본질적인 문제 때문이다. 어느 분의 주장처럼 한국 가정의 80% 정도가 역기능 가정이다. 그래서 많은 한국 사람들이 정서 상의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성장하게 된다.

3. 그럼 이런 내적인 상실과 상처가 믿음을 갖게 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또한 신학을 배우고 목사가 되면 자연적으로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믿음과 신앙생활이 중요한 변화의 요인이 되기는 하지만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4. 그렇다면 신앙생활이 치유와 회복에 그리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한국 교회의 토양이 종교적이며 행위적이고 경쟁적이며 소비적이기 때문이다(이것은 한국 사회 전체가 그러하다).

5. 특히 목회자들에겐 더욱 그러하다.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6~7년의 신학도 과정을 거치고 목회 현장에 뛰어들면 출혈적인 설교 사역과 경쟁적인 교회 사역이 기다리고 있다. 젊은 목회자들은 그런 환경에서 자신의 능력과 영빨(?)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래야 다음 사역지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6. 이것은 대/중/소 교회의 사이즈와 상관이 없다. 오히려 대형 교회의 시스템이 더 경쟁적이다. 내면 보다는 눈에 보이는 외면(외적인 능력)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다보니 내면을 살피고 돌아볼 여유가 없다. 계속 달리고 달려야 한다(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단군 이래 최고의 스팩을 자랑하는 것처럼, 한국 목회자들도 엄청난 스팩을 자랑한다).

7. 하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처음에는 밤낮으로 달릴 수 있다. 하지만 곧 한계가 오고 탈진이 온다. 거기에 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역자는 더 깊은 내적 공허함과 갈증, 무너짐이 찾아온다. 그러나 목회 현장에선 그런 것을 티내면 안 된다. 멈추겠다고 쉬겠다고 말하지 못한다. 계속 달리고 달려야 한다.

8. 이렇게 정서적 탱크가 바닥을 드러날 때 두 가지 유혹이 찾아온다. 하나는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찾아 나서게 되고(그런 사람들이 자석처럼 끌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하나는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선다. 그것이 중독이다. 이 둘의 공통분모 중의 하나가 ‘성’(Sex)이다.

9. 목회자에게 유독 성적인 문제가 터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목회 현장에서 쉽게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로 내적인 갈증을 해결해 줄 은밀한 쾌락을 쉽게 찾아나설 수 있다. 참 슬픈 현실이지만 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목회자들이 많고, 그것으로 인해 이런 문제는 앞으로 계속 반복될 것이다.

10. 목회자의 성적 문제가 터질 때마다 그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은 진정한 해결 방법은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만들어 놓은 교회 시스템, 신앙생활 시스템 자체가 이런 내면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을 멈추어야 한다. 멈추지 않고선 고치거나 수정할 수 없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누군가를 욕하고 정죄하는 것으로 바꾸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멈추고 우리 자신을 철저하게 돌아봐야 한다.

개척 4년 차를 보내며 (2)

1. 개척 4년 차를 보내면서(더불어 2017년을 보내면서) 삶과 사역을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개척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비신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채널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삶의 패턴들을 점검해 보니 목사로서 비신자들과 너무 단절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루의 대부분을 교회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면서 보낼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아무리 살펴봐도 온통 목사와 직분들 뿐이다.

2. 인간이라는 존재가 참 신기한 것이, 한 번 세팅된 생활 방식들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학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신학생과 전도사라는 명칭이 붙고, 대부분의 시간을 소위 경건이라는 이름 하에 세상과는 단절된 상태로 살아간다. 그러다가 안수를 받으면 풀타임 사역자로 목회를 시작하게 되는데, 그 시간도 대부분 교회와 관련된 일들을 하느라 바쁘다. 새벽 기도회부터 시작해서 밀려오는 행정 업무들, 설교 사역과 심방들,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돌리는데 정신이 없다보니 비신자들의 세계 가운데로 들어갈 기회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하다.

3. 문제는 개척을 하면 생긴다. 개척을 했다는 것은 기존 신자가 아니라 복음을 아직 듣지 못한 비신자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목사는 그런 비신자들의 세계에 대해서 거의 혹은 많이 모른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며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경험하지 못하고 개척이라는 현장에 뛰어든다. 여기서 많은 목사들이 오해를 한다(나도 오해를 했다). 지금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못하는거지, 기회가 주어지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삶의 습관이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4. 복음 전도는 농사에 비유될 수 있다. 농사의 목적은 추수이다. 결과적으로 원하는 열매를 얻어내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선 앞선 과정들과 시간들이 필요하다. 토지를 개간해야 하고, 씨를 뿌리고, 자라도록 관리하고 돌봐야 한다. 그리고 난 후에 때가 되면 열매가 맺혀 추수를 하게 된다. 우리의 착각은 앞선 과정들은 무시한채 추수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노방 전도를 나간면 간혹 그런 경험들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가 그 한 영혼을 위해서 앞선 과정들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쉽게 추수만 하려고 한다. 그것을 위해 기도한다. 그러나 진정한 전도는 울며 씨를 뿌리는 과정들이 먼저 필요하다.

5. 개척 교회 목사는 무엇보다 세상 속으로, 비신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옛날처럼 건물을 얻고 예쁘게 인테리어를 꾸미고 십자가를 세운다고 사람들이 몰여오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반 기독교적 정서와 불신이 팽배한 시대이다. 좋은 시설을 갖추고, 설교를 잘해야 개척 교회가 성장한다는 말은 (비판적으로 말하면) 기존 신자를 대상으로 개척 목회를 하라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계속 이야기 하지만 우리는 ‘파이 싸움’을 하려고 교회를 개척한 것이 아니다.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로 들어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결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 개척을 한 것이다.

6. 하지만 불신자를 대상으로 사역을 해 본적이 없는 목사가 개척을 한다고 하루 아침에 목사로서 살아온 삶의 방식들을 벗어버리고 비신자들의 거친 세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일은 거의 성육신에 비견되는 일이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이미 종교화/기독교화 되어 있다. 사용하는 언어부터 시작해서 삶의 방식들이 자신들만의 독특함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런 환경 가운데 오래 살아오다보니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삶의 스타일들을 벗어 버리고 비신자들의 세상 안으로 들어가 그들과 관계를 맺고 친구가 되고 신뢰를 쌓고 복음을 전하는 일은 절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많은 목사들이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삶의 방식일 수 있다(내가 그렇다는 말이다. 누구를 정죄하고 비난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살아왔다는 말이다).

7. 건물도 필요하고 여러 가지 하드웨어가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그것만 준비한다고 채워지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우리들만의 장소와 시간과 삶의 스타일을 벗어버리고 세상 속으로,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 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 기존 교회는 그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라도 있지만, 개척 교회는 목사와 목사의 가정이 그런 일들을 시작해야 한다. 비신자들을 만나고 친구가 되고 좋은 신뢰를 쌓아가는 시간들을 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목사가 먼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런 부분들이 준비되지 않고선 개척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도전일 수 밖에 없다.

정치권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1. 정치권에서 들려오는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뉴스가 매일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설레이게 한다. 이제 대한민국에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2. 동시에 교단과 교회에서도 이런 새로운 변화의 소식이 들려오기를 간절하게 소망해 본다. 하지만 오늘 본 뉴스는 성공적인 세습을 마친 세한 교회 이야기이다.

3. 작년인가 교단 행사 때 그 분의 목회 이야기를 듣고 적지않게 실망을 했다. 솔직히 별로 들을 것도 없었다. 너무 교만하게 보여도 상관 없다. 더 정직하게 말하면 그때 대부분의 강사진들의 강의를 통해서도 도움을 받은 것이 없다(그래서 요즘 그런 집회나 세미나에 거의 가지 않는다).

4. 이젠 더 이상 큰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으니 더 나을 것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이 쏟아내는 목회 방법론은 이미 목회 현장에선 구닥다리가 되어버렸다. 오히려 내가 듣고 싶은 것은 진심이 있는 삶의 이야기, 목회 이야기이다.

5. 노하우, 방법, 스킬, *** 법, 전략, 비전, 교회 성장 등등의 이야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성도들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보고 싶고, 듣고 싶다. 요즘 정치권에서 들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말이다.

6. 강단이 아닌 삶으로 말하는 목사가 필요하다. 자신이 강단에서 외친 복음(진리)이 진짜임을 삶으로 말할 수 있고 보여줄 수 있는 진짜 목사가 필요하다. 이젠 한국 교회에도 그런 목사 존경을 받고, 선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열려야 한다.

7. 그래서 유시민 작가 한 말이 생각난다. “대중은 누가 계몽할 수 없습니다. 국민들은 스스로를 계몽하는 것이거든요” 계몽되지 못한 성도들이 많은 한국 교회 안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정치권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다시 한번 한국 교회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를 해 본다. 한국 교회 곳곳에 이런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