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5주기를 맞이하며

심리학이나 상담학에서는 죽음/슬픔/애도를 수용하고 그 과정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에 대해서 5단계로 설명하였다.

1단계 : 충격과 부정 Shock and Denial
2단계 : 분노 Anger
3단계 : 우울 Depression and Detachment
4단계 : 대화와 타협 Dialogue & Bargaining
5단계 : 인정(수용) Acceptance

최종적으론 ‘의미 있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Return to Meaningful Life).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최종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선 앞의 다섯 단계를 충분히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누가 가르치거나 주입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정과 분노, 우울과 대화 그리고 인정/수용의 과정을 충분히 거칠 때, 그 시간과 과정을 통해서 각자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찾게 된다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한국 교회는 이런 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뿐 아니라, 너무나 성급하게 최종적인 대답을 억지로 가르치려고 한다는 것이다. 감정은 충분히 다루어져야 하고, 그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은 함께 울어주고, 아파하고, 그 자리에 그들과 함께 해 주는 것이다. 성급하게 결론 내리지 말고, 종교적인 해답을 주려고 하지 말고, 그냥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며 그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목회자와 교인들은 슬픔이나 분노 등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긴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항상) 기뻐해야 한다는 잘못된 신화에 빠져 그런 감정 자체를 거부한다. 그만큼 인간에 대한 그리고 마음과 감정에 대한 이해가 깊이 깊지 못하다. 하나님은 인간을 감정을 가진 존재로 만드셨고, 그런 감정을 느끼도록 창조하셨다. 그리고 감정은 손바닥 뒤집듯이 손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지 벌써 5년이 지났다. 하지만 바뀐 것은 거의 없는듯 하다. 고통과 슬픔을 다루는 교회 또한 달라진 것이 거의 없는듯 하다. 인간과 삶에 대한 대한 신학적인 성찰이나 반성보다는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기에 급급하다. 여전히 눈에 보이는 속도와 성장만을 부르짖는 소리들이 들릴 뿐이다.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 그리고 그것을 품어줄 수 없는 교회. 그것이 오늘도 발을 내딛고 살아가야 하는 조국의 현실이다. 답답하다. 하지만 가슴만 치며 살아갈 순 없다. 그 깨어지고 멍든 가슴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오늘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또 하루의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멈추어야할 때

1.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대형교회 부목사의 성적인 문제가 또 터졌다. 아마 이런 문제는 계속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유(원인) 몇 가지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2. 대한민국 가정의 본질적인 문제 때문이다. 어느 분의 주장처럼 한국 가정의 80% 정도가 역기능 가정이다. 그래서 많은 한국 사람들이 정서 상의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성장하게 된다.

3. 그럼 이런 내적인 상실과 상처가 믿음을 갖게 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또한 신학을 배우고 목사가 되면 자연적으로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믿음과 신앙생활이 중요한 변화의 요인이 되기는 하지만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4. 그렇다면 신앙생활이 치유와 회복에 그리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한국 교회의 토양이 종교적이며 행위적이고 경쟁적이며 소비적이기 때문이다(이것은 한국 사회 전체가 그러하다).

5. 특히 목회자들에겐 더욱 그러하다.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6~7년의 신학도 과정을 거치고 목회 현장에 뛰어들면 출혈적인 설교 사역과 경쟁적인 교회 사역이 기다리고 있다. 젊은 목회자들은 그런 환경에서 자신의 능력과 영빨(?)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래야 다음 사역지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6. 이것은 대/중/소 교회의 사이즈와 상관이 없다. 오히려 대형 교회의 시스템이 더 경쟁적이다. 내면 보다는 눈에 보이는 외면(외적인 능력)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다보니 내면을 살피고 돌아볼 여유가 없다. 계속 달리고 달려야 한다(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단군 이래 최고의 스팩을 자랑하는 것처럼, 한국 목회자들도 엄청난 스팩을 자랑한다).

7. 하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처음에는 밤낮으로 달릴 수 있다. 하지만 곧 한계가 오고 탈진이 온다. 거기에 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역자는 더 깊은 내적 공허함과 갈증, 무너짐이 찾아온다. 그러나 목회 현장에선 그런 것을 티내면 안 된다. 멈추겠다고 쉬겠다고 말하지 못한다. 계속 달리고 달려야 한다.

8. 이렇게 정서적 탱크가 바닥을 드러날 때 두 가지 유혹이 찾아온다. 하나는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찾아 나서게 되고(그런 사람들이 자석처럼 끌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하나는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선다. 그것이 중독이다. 이 둘의 공통분모 중의 하나가 ‘성’(Sex)이다.

9. 목회자에게 유독 성적인 문제가 터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목회 현장에서 쉽게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로 내적인 갈증을 해결해 줄 은밀한 쾌락을 쉽게 찾아나설 수 있다. 참 슬픈 현실이지만 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목회자들이 많고, 그것으로 인해 이런 문제는 앞으로 계속 반복될 것이다.

10. 목회자의 성적 문제가 터질 때마다 그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은 진정한 해결 방법은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만들어 놓은 교회 시스템, 신앙생활 시스템 자체가 이런 내면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을 멈추어야 한다. 멈추지 않고선 고치거나 수정할 수 없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누군가를 욕하고 정죄하는 것으로 바꾸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멈추고 우리 자신을 철저하게 돌아봐야 한다.

내일부터 시작입니다!

저는 내일부터 강의를 시작합니다. 태국 치앙라이에서 진행되는 FCM(기초상담사역학교, YWAM)이라는 학교입니다. 강의 주제는 ‘성령과 상담’입니다. C국 사역자들이고 통역 강의이기 때문에 지혜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성령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필요합니다. 생각나실 때마다 함께 중보해 주세요.

1. 기도 제목
-강의가 잘 전달되고 이해될 수 있도록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도록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도록
-기도 사역 가운데 성령님의 만지심이 있도록(목, 금)

2. 강의 계획
25일(월) – 하나님의 왕국
26일(화) – 복음
27일(수) – 창조, 타락, 구속 (성령 하나님을 중심으로)
28일(목) – 성령 사역 & 기도사역
29일(금) – 성령사역 &기도사역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때

목회라는 것을 통해 배우는 것이 참 많습니다. 특히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넓어집니다. 요즘은 두 가지가 정리됩니다.

1. 목회자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인간에 대한 바른 성경적 이해도 필요하다.

2.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때(혹은 시간표)가 있다. 목회라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다루시고 인도하시는 것들에 대해서 바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목요일에 육지에서 갑자기 손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틀에 걸쳐서 저와 저의 아내랑 ‘프로세스’를 하고 있습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상담이지만, 거의 대부분은 그 분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간간히 코멘트를 달아주는 것입니다.

근데 참 재미있는 것은 몇 년동안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동일한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들은척도(?) 하지 않으셨는데 이번에는 밤새도록 프로세스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루시고 만지시며 인도하십니다. 목회자는 그 시간을 놓치지 않고 그 사람이 하나님께 반응하고, 하나님의 만지심을 자신의 삶에 수용하도록 돕는 것입니다(사실 목회자의 역할은 거기까지입니다. 그 이상을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한없는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지역교회 목회가 힘들고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그 때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만, 당장이라도 말해주고 싶지만, 참아야 하고 품어야 하고 지지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문제가 바로 보이고 이렇게 하면 금방이라도 해결될 것처럼 보이는데, 당사자에게는 생각 하나 행동 하나 바꾸는 것이 죽을만큼 어렵고 힘든 일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쉽게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쉽게 사람을 바꾸어 보려고 시도합니다(저를 포함해서 목회자들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이지요).

우리에겐 사람을 ‘조정하고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존재합니다. 한국교회 목회 현장은 그것이 더 심하게 작동합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 사회 전체가 그런 욕구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도 쉽게 인간의 때와 인간의 방법으로 사람들을 조정하고 통제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우리의 시간표를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지하든 못하든 상관 없이 지금도 일하시고 계십니다. 그 주도권을 한번도 빼앗긴 적도 없으시며 누구에겐 준 적도 없으십니다. 어떨 때는 그 기다림이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우리 마음대로 그 시간을 앞당길 순 없습니다.

“내가 주님을 기다린다.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며 내가 주님의 말씀만을 바란다.” (시130:5, 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