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적 비전 – 여호와 삼마

묵상한 말씀 : 에스겔 48:23~35
나에게 주시는 말씀 : “그 성읍의 이름은 그날부터 ‘여호와 삼마’라고 할 것이다.” (35b절)

1.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남쪽 지역에 분배되는 지파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순서대로 다시 정리하면, (1) 베냐민 지파(23절), (2) 시므온 지파(24절), (3) 잇사갈 지파(25절), (4) 스불론 지파(26절), (5) 갓 지파(27절)이다.

2. 그리고 다시 회복될 성읍의 크기의 모습을 언급하고 있다. 이 성읍의 크기는 정사각형으로 한쪽의 너비가 4,500 규빗이다. 1 규빗이 45cm라고 한다면 2km가 조금 넘는다. 또한 동서남북 벽에 세 개의 문들이 있고, 그 문들의 이름은 야곱의 열 두 아들들의 이름이다. (1) 북쪽 문들 : 르우벤, 유다, 레위, (2) 동쪽 문들 : 요셉, 베냐민, 단, (3) 남쪽 문들 : 시므온, 잇사갈, 스불론, (4) 서쪽 문들 : 갓, 아셀, 납달리

3. 어제도 살펴보았듯이 이 장면들은 성경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들에겐 매우 친숙한 그림이다. 구약이라는 그림으로 본다면, 온전한 성전과 성읍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나안 정복 때부터 사사 시대, 왕정시대 거치면서 잠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머물러 있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불순종,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통치하시는 성읍과 성전은 이방인의 손에 파괴되고 더렵혀졌다(그 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일이 있었다).

4. 하지만 하나님의 소원(계획)은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 하나님의 온전한 임재가 있는 성전과 성읍의 회복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심으로 구체적으로 시작되고, 야곱의 열두 아들을 통해서 열두 지파로 구성된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다. 오늘 말씀에 온전히 회복된 성읍에 열두 개의 문들이 있고, 그 문들의 이름이 야곱의 열두 아들들의 이름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5. 이것을 신약적인 그림으로 다시 살펴보면, 우리는 요한계시록 21장 9절 이하의 말씀과 연결 시켜야 한다.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14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상의 측량이라
22 서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6. 요한계시록 21, 22장은 새 하늘 새 땅이 회복을 약속하는 말씀이다. 우리는 여기서도 조심히 읽어야 한다. 우리는 이 말씀을 너무나 당연하게 ‘내세’에 대한 성경의 놀라운 약속과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하늘 너머 어딘가에 있을 천국(천당)에 대한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이 땅에 임하고 이루어질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말씀이다.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영역이다. 땅은 인간이 존재하고 살아가는 영역이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그 분의 온전한 통치가 행사되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땅에서는 그 시도가 깨어지고 망가지고 더렵혀졌다.

7. 하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일하시고 역사하신다. 주님이 창조하신 이 땅에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가 성취되는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시길 원하신다. 우리는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는 천국(하늘 너머 어딘가에 있을 좋은 곳)으로 데려가기 위해 혹은 천국 가는 다리가 되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하나님의 왕국을 임하게 하기 위해 오셨다.

“회개하라 천국(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3:2)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9~10)

8.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있는 성전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요 2:13~22 참조), 그 분을 믿는 자들의 공동체를 새로운 성전으로 세우시기 위해 오셨다(벧전 2:4~5 참조).

9. 그러므로 에스겔 47, 48장의 말씀은 궁극적으로 성취되고 완성될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소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근데 그 하나님의 왕국은 죽어서 가는 저 천국이 아니다. 내세의 소망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 왕국은 철저하게 이 땅에 임하고 세워지게 될 왕국이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 분의 왕국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선지자들에게 메시아의 초림과 재림은 오버랩(overlap)이 되어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이 명확하게 구분이 된다).

10.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 교회 공동체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이 땅에서 복을 누리다가 천국이라는 좋은 곳에 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우리의 부르심과 비전은 이 땅에 하나님의 왕국(하나님의 온전히 통치하시는)을 회복하고 건설하는 것이다. 그것이 에스겔을 통해 우리가 봐야하는 종말론적인 비전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에스겔의 마지막 말씀처럼 고백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 삼마 –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THE LORD IS THERE)

하나님이 진짜 원하시는 것은 땅의 회복이다!

묵상한 말씀 : 에스겔 48:1~22
나에게 주시는 말씀 : “거룩한 땅과 성전의 성소가 그 한가운데 있을 것이다.” (21b절)

1. 에스겔 47장과 48장은 성전의 회복, 하나님의 임재의 회복만을 말씀하시지 않는다. 성전(지성소)에서 흘러 내리는 물이 성전 동쪽으로 흘러가면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시고(47:1~12). 곧 이어 각 지파에게 나눠 줄 땅의 경계에 대해서 길게 말씀하신다(47:13~48:29).

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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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말씀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출애굽의 어느 장면이 떠오른다. 민수기 2장을 보면, 중앙에 성막이 위치해 있고 동서남북 사방으로 12지파가 각각 위치해 있다(그림 1 참조). 그리고 에스겔 47장으로 오면 한 가운데 성전이 있고 북쪽과 남쪽 지역에 각 지파가 살아야 하는 지경을 명확하게 말씀하신다(그림 2 참조).

3.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어느 한 구절이나 어느 한 장이 너무 유명해지면, 그것 때문에 그와 관련된 본문을 제대로 바르게 읽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에수겔 47장이 그런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성전의 회복과 그 성전에서 흐르는 생명수. 그러나 본문은 그것만을 말씀하시지 않는다. 회복된 성전과 더불어 회복된 땅에 대해서도 언급하신다.

4.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한 가운데 성전을 두고 진영을 갖추었듯이,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 각 지파 별로 땅을 분배한 것과 같이(그림 3 참조), 그 땅에 성전이 회복된 이후 땅의 경계를 명확하게 지정하신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각 지파 별로 땅을 분배하신다.

5.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다시 한번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저 세상에 관심이 없으시다. 진짜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고 계신 영역은 이 땅이다. 에스겔 47, 48장은 최종적으로 회복될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땅에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치유와 사랑, 회복, 구원을 이루시길 더 원하신다.

6.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 계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성막(모세) – 성전(다윗과 솔로몬) – 재건축된 성전(스룹바벨) – 새로운 성전(예수님과 교회 공동체) – 성전의 회복과 완성(요한계시록)’이란 과정을 우리는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성경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성전은 이 땅에 세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상징한다. 성전 중심의 삶을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정한 통치와 지배를 받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7. 하나님은 그런 공동체(하나님의 온전한 통치를 받는)를 통해서 이 땅을 구원하시고 치유 하시길 원하신다. 그것이 하늘 아버지의 진정한 마음이시다. 그저 구원 받아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하늘 아버지의 진정한 소원이 아니다.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대단히 오해하고 있다.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주기도문을 다시 보라).

8. 우리는 다시 성경을 읽어야 한다. 더불어 에스겔 47, 48장의 환상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 되었으며, 그것이 어떻게 복음과 성령과 교회와 연결되는지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안에 있는 많은 오류들이 수정되고 회복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와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진 목적을 바르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2

그림 2

그림 3

그림 3

성전과 생명수

묵상한 말씀 : 에스겔 47:1~12
나에게 주시는 말씀 : “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떼 지어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이 살 것이고 물고기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이 물이 그곳으로 가서 바닷물이 살아나게 되기 때문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 것이다… 갖가지 먹는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강둑을 따라 양쪽으로 자랄 것이다. 그 나뭇잎이 시들지 않을 것이고 그 열매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달마다 열매가 열릴 것이다. 그 강물이 성소에서부터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그 열매는 음식이 되고 그 잎사귀들은 약이 될 것이다.” (9, 11~12절).

1. 요한복음 7장 37절에서 39절의 말씀과 비교해 보자.
37 명절의 가장 중요한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
38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39 이것은, 예수를 믿은 사람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사람들에게 오시지 않았다.

2. 요한복음 7장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항상 질문이 되었던 것이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와 “그의 배에서”라는 표현이었다. 구약 어디에 “그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라고 예언한 말씀이 있는가? 물론 에스겔 47장의 말씀을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에스겔 47장은 성전(지성소)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대한 말씀이다.

3. 그 말씀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성전’이다. 살아있는 성전으로 오신 예수님은 건물로서의 성전 시대를 끝내 버리신다(요 2:13~22). 청결하게 하신 것은 아니라 건물로서의 성전의 기능을 정지 시키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과 그 분의 진리로 충만한(요 1:14) 예수님이 살아 움직이는 성전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4. 그리고 예수를 믿는(믿은) 사람은, 성경이 약속하신 것처럼, 그의 배(성소)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39절은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다”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하늘 보좌 우편으로 올라가시면 약속하신 성령이 사람들에게 임하신다(우리에겐 모두 과거형). 이것은 새로운 성전 시대를 의미한다. 과거엔 하나님이 어떤 특정한 장소와 건물에 임재하셨다. 하지만 이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성전이고, 그들 안에 임재하신다.

5. 즉, 에스겔 47장의 예언은 바로 개인뿐만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세워질 교회 공동체 위에(안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들을 통해 드러날 성령의 새로운 역사(복음의 역사)를 의미한다. 그렇다! 십자가의 복음,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왕국은 같은 것이다.

6. 생명수가 흘러가는 곳마다 회복과 치유와 풍성함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오직 복음(십자가)으로만 가능하며, 성령의 임재와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그리고 성령을 모시고 있는 살아있는 성전으로서의 교회(성도들)를 통해 그것이 이 땅에 임하고 일어나게 될 것이다.

7. 성경을 통전적으로 읽고 이해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과 ‘성전’, ‘복음’, ‘성령’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은 결국 신약에 와서 ‘교회’라는 귀결점을 가지게 된다. 이것을 바르게 이해해야 성경이 보이고, 창세부터 역사히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인다. 정말 하나님이 무엇을 기대하셨고, 어떤 일들을 이루셨는지를 알게 된다. 그런 점에서 에스겔 47장의 말씀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보혈과 말씀과 성령

묵상한 말씀 : 에스겔 46:1~24
나에게 주시는 말씀 : “너희는 매일 1년 된 흠 없는 어린양을 여호와께 번제물로 바쳐야 한다. 아침마다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 또 아침마다 그것과 함께 곡식 제사를 준비하되 6분의 1에바와 기름 3분의 1힌을 밀가루와 섞어서 드릴 것이다. 여호와께 드리는 이 곡식 제사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 어린양과 곡식 제물과 기름을 준비해 아침마다 정규적인 번제로 드려야 한다.” (13~15절)

1. 오늘 말씀을 보면, 회복된 성전에서 안식일과 초하루에 드려야 하는 제사를 자세하게 언급한다. 특히 왕과 백성은 안식일과 초하루에 제물을 갖고 하나님 앞에 반듯이 나아가서 경배해야 한다.

2. 그런데 13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그것과 상관 없이 매일 드려야 하는 제사가 있다. 성전에서는 매일 1년 된 흠 없는 어린양을 번제물로 드려야 하며, 곡식제사(소제)를 매일 드려야 한다. 15절에서는 그것을 세 가지 – 어린양, 곡식과 기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3. 지나친 영해(영적인 해석)일수도 있지만, 그 세 가지는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어린양 – 십자가(보혈)
곡식 – 말씀(진리)
기름 – 성령의 기름부음

4. 회복된 성전에서 매일 드려져야 하는 번제(헌신을 상징)에 꼭 있어야 하는 세 가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성전, 살아있는 성전(요 2:13~22, 행 2, 고전 3:16, 벧전 2:4~5)으로 살아가야 하는 성도들이 매일 아침 드려야 하는 예배의 내용도 그 세 가지이어야 한다. 주어진 하루를 시작하며, 주님께 헌신된 삶을 드리기로 결단하는 성도의 예배 안에 십자가의 보혈과 진리와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5. 그렇다. 오늘 하루,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분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오직 보혈과 말씀과 성령에 의한 삶을 살아갈 떼만 가능하다. 그것이 우리가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나아가 드려야 하는 예배의 본질이며 핵심인 것이다.

6. 오늘 하루도 보혈을 의지해서 살자. 진리 안에서 살자. 성령의 기름부으심 가운데 살자. 매일 이 세 가지를 구하자. 내 삶과 가정, 자녀들, 교회 공동체 지체들 가운데 보혈로 덮히도록, 진리로 채워지도록, 성령의 기름부음이 부어지도록 기도하고 구하자. 그것이 우리가 매일 드려야 하는 예배이고 간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