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1. 13 주일예배 설교

2019년 1월 13일 복음자리교회 주일예배 설교

말씀 : 마태복음 6:5~15

제목 :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설교 : 이상준 목사

주기도문과 일상

1. 얼마 전에 들었던 일상에 대한 강의 중에 가장 마음에 와닿은 것은, 일상이란 매일 먹고 마시고 잠 자는 것이 보장된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 중의 가장 중요한 것이 먹는 것과 잠자리의 문제이다. 하루 세 끼를 먹고, 안식과 안전한 잠자리가 보장되어 있은 것이 일상이란 삶을 유지하는 근간이다. 만약 이것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의 일상은 고통과 불안, 위험의 연속이 될 수 밖에 없다.

2.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문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전자는 ‘당신’ 청원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 그 분의 뜻과 왕국을 구하는 것이다. 후자는 ‘우리(우리들)’ 청원으로 일용할 양식과 용서, 시험에 대하서 구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매일을 살아가야 하는 일상과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는 부분이 ‘일용할 양식’이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양식이기 때문이다.

3. 우리가 여기서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그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 자가 ‘나(I)’가 아니라 ‘우리(We)’라는 복수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혹은 우리 가정에게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양식을 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우리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양식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일상에서 구해야 하는 기도이고 공의인 것이다.

4. 교회 안에서 가르치고 있는 구원 개념이 너무 내면화 되어 있고 개인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한국 기독교인들의 기도 생활이나 내용도 너무 개인화 되어 버렸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문에는 우리의 기도를 강조하셨지만, 우리는 그것을 나의 기도로 전락 시켜버렸다. 그리곤 기도 시간의 양이나 응답 받은 양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내’가 아니라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나를 뛰어넘어 공동체뿐만 아니라 지구촌을 향한 기도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5. 매일 주어지는 일상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한다면, 동일하게 나의 이웃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에 있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게도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열방 가운데 일하시고 그 모든 민족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분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매일 나를 뛰어넘어 우리의 일상을 위해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한다. 그것이 주님의 기도문을 가르쳐주신 예수님의 마음이고, 예수님의 기도이며, 예수님의 소망이시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1) : 주기도문

묵상한 말씀 : 누가복음 11:1~4
나에게 주시는 말씀 :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2)

1.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항상 집중하고 잊지말아야할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은, 첫째도 ’문맥’, 둘째로 ‘문맥’, 셋째도 ‘문맥’이다. 특히 잘 알려진 말씀(구절)이라면 더더욱 문맥을 살피고 살펴야 한다. 의외로 많이 알려진 말씀일수록 많은 오해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살펴봐야 하는 본문도 그러한 오해를 많이 받고 있다. 그럼 구체적으로 본문 안으로 들어가 보자.

2. 오늘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절에서 4절까지가 그 유명한 ‘주기도문’이다. 5절부터 8절까지는 ‘강청하는 기도’를 가르치시는 이야기이고, 9절부터 13절까지는 가장 유명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에 대한 말씀이다. 이 말씀들의 공통점은 ‘기도’이다. 예수님이 집중적으로 기도에 대해서 가르치시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시작은 제자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세례자 요한이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1).

3. 제자들의 요청에 예수님은 가장 먼저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다. 이것은 그저 주문처럼 외우라고 가르쳐주신 것이 아니다. 목사가 없는 예배를 끝낼 때 어색함을 방지하기 위해서 가르쳐 주신 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명확하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2) 그렇다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델(모범)로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이 기도문을 가지고 바르게 기도해야 한다.

4. 주님의 제자들이 드리는 기도는 기도를 받으시는, 기도의 대상이 되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름으로서 시작된다. 이것이 제자들과 이방인, 제자들과 유대인을 구별짓는 가장 중요한 호칭이다(마 6:5~8 참조).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분은 누구신가? 우리는 누구에게 기도를 하는가? 그 분이 바로 ‘아버지’이시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름으로서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그 기도는 진정한 기도가 아니다. 그저 기도의 대상을 부처에서 하나님으로 혹은 해나 달 등 여러 우상에서 하나님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5.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 아버지를 위해서 두 가지를 기도할 것을 말씀하신다. 첫재는 그 분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이다. 둘째는 주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기도의 제목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제자들이 매일 살아가야 하는 목적과 의미, 우선순위, 가치를 말씀하신 것이다. 기도와 가치, 기도와 삶, 기도와 존재는 분리될 수 없다. 분리된다면 그것은 종교적인 기도 생활을 하는 것이다. 성경적인 기도 생활은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존재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는가?(혹은 부를 수 있는가?) 그랬다면 그 분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또한 그 분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고 그렇게 순종하고 헌신해야 한다. 그것이 존재 방식이 되어야 하고, 삶의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6. 그렇다면, 우리가 이 기도의 제목으로 매일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매순간마다 조정하고 수정한다는 것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저 주문처럼 외우는 기도가 아니다. 그 기도를 통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도록 내 삶을 드려야 한다. 그 기도를 통해 주의 나라가 임할 수 있도록 순종의 길을 걸어야 한다. 그렇다! 기도는 곧 삶이다.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요구하는 것 이상이다. 우리는 먼저 아버지의 이름과 그 분의 나라를 위해 간구하고 그것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기도의 삶이다.

7. 나머지 세 가지는 기도하는 자의 필요를 구하는 것이다. 첫째는 오늘 하루 살아가는데 필요한 양식을 구하는 것이다. 둘째는 용서하는 삶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며, 셋째는 시험(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여기에도 예수님의 가치와 기준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 그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필요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그것을 세 가지로 정리해 주셨다.

8. 가장 먼저는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양식(each our daily bread)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3). 강조점은 하루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양식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매일 내려주시는 만나로 살아갔던 것을 기억나게 한다. 동일하게 제자들은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진짜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면 의식주는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마 6:25~33 참고). 그것은 주님이 채우실 것이다. 대신 하루 하루를 살아가야 하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것이 염려, 걱정와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늘 아버지를 신뢰함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다.

9. 두 번째는 용서하는 삶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용서해야 하나님도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이다(4a). 순서가 뒤집어졌다. 지금 예수님은 용서의 순서를 거꾸로 뒤집어 놓으셨다.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셔야 하고, 그 다음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먼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자가 하늘에서 본 순서라면, 후자는 이 땅에서 본 순서이다. 하늘에서 보면,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용서하신다. 그리고 그 용서를 경험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 그러나 땅에서 보면, 이웃의 죄를 용서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은 실제적인 분이시다. 하나님의 용서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한 가지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내 이웃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것을 통해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이웃을 향한 용서가 있고, 그 다음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용서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10. 세 번째는 시험(유혹)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험이란 무엇인가? 누가복음으로 보면 4장에 기록되어 있는 세 가지 시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도록 방해나는 것이다.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는 매일 그런 시험에 들지 않도록,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럼 유혹에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11. 이것이 주님을 매일 따르는 제자들이 매일 기도해야 하는 기도의 제목이고 내용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주문이 아니다. 어떤 종교적 예식을 위해서 사용하는 종교적 기도문이 아니다. 매일 그 분을 따르는 제자가 구하고 간구해야 하는 제목이며 동시에 삶을 통해 순종해야 하는 영역이다. 기도와 순종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욕구와 욕심만을 위해서 구하는 것이 기도의 참된 본질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분명 기도를 강조하신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 우리는 다시 예수님에게 배워야 한다. 다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