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순종, 예수님의 중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묵상한 말씀 : 히브리서 4:12~16

1.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권면한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해서 언급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alive), 힘이 있으며(active), 양날 선 어떤 칼보다도 더 예리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penetrates even dividing), 마음과 생각과 의도를 분별해 낸다(judges).” 이어서 13절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어떤 피조물이라도 하나님 앞에 숨을 수 없고 오히려 모든 것은 우리에게서 진술을 받으실 그분의 눈앞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습니다” 이 두 구절을 통해서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서는 감출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정확하시고 예리하신 그 분의 말씀과 하나님의 시선을 피해갈 순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정직하게 진술하게 된다는 것이다.

2. 14절부터는 다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로 전환된다.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신 대제사장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러므로 주님에 대한 그 신앙을 굳게 지키자고 권면한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empathize)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사시면서 우리가 받는 시험을 당하셨다는 것이다(tempted). 하지만 우리가 다른 점은 죄가 없으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다. 앞에서도 다루었지만 율법으로 세워진 대제사장은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다. 이 점에서는 예수님과 동일하다. 하지만 그는 연약하여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죄를 중보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서지만 그도 속죄의 과정이 필요하다. 예수님처럼 속죄의 제사가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3. 그래서 16절은 이렇게 다시 도전하고 권면한다. “그러므로 자비하심을 얻고 필요할 때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갑시다.” 우리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의지해서 은혜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함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Let us then approach God’s throne of grace with confidence). 우리가 담대함을 가질 수 있는 근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보좌는 은혜의 보좌이시다. 물론 은혜이기 전에 심판과 정죄의 보좌이기도 하다. 이것은 이미 12, 13절이 밝히고 있다. 심판은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어떤 존재도 하나님의 시선을 피해갈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감출 수 있는 것이 없다. 하지만 그 심판과 정죄 앞에서도 우리가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때문이다. 우리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해 심판과 정죄를 뚫고 은혜의 보좌 가운데 나아갈 수 있다.

4. 그럼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무엇을 경험하게 되는가? 첫째가 자비하심을 받는다(we may receive mercy)이다. 둘째가 필요할 때 도우시는 은혜를 발견하게 된다(find grace to help us in our time of need). 여기서 우리는 자비(긍휼)와 은혜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친절한 행위이다. 자비(긍휼)는 정죄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데 그것을 받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연약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더불어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하다. 은혜가 있어서도 안 되고, 자비만 있어서도 안 된다. 두 가지 모두 있어야 한다. 감사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때 경험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5. 정리하자. 말씀은 우리는 발가벗겨서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직함이다. 정직하게 말씀을 통해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해야 한다. 그 다음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는 것이다. 그 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뿐만 아니라 도우실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자비를 얻게 되고 발견하게 된다. 아무런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놀라운 은혜와 말씀을 통해 드러난 연약함과 죄악으로 인해 심판과 정죄를 받아야 하지만 그것을 용서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를 경험하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믿음 위에 서게 된다. 더불어 여기에 신앙인의 결단과 선택도 필요하다. 히브리서는 계속해서 우리가 고백한 신앙을 굳게 지키자고 도전한다. 은혜의 보좌 앞에 서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이 은혜와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 반응하라!

묵상한 말씀 : 누가복음 8:16~25
나에게 주시는 말씀 :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내 어머니요, 내 형제들이다.”(21)

1. 예수님은 등불(빛)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등불을 켜는 이유는 방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릇으로 덮어두거나 침대 밑에 두는 경우는 없다. 그 방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가장 잘 밝힐 수 있도록) 등잔대 위에 둔다(16). 이렇게 하는 이유는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것들이 눈에 보이도록 하려는 것이다. 빛 앞에 있으면 숨겨 둔 것들이 드러나고, 감춰 둔 것들이 알려지게 되어 있다(17).

2. 그렇다면 여기서 빛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맥락적으로 보거나 18절과 21절을 연결해서 보면, 여기서 빛이란 ‘하나님의 말씀’이다(21). 하나님의 말씀은 빛과 같아서 (그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비춰진다. 차별하거나 구별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어둠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18절에서는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서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가진 자는 더 받게 되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3. 이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빛으로 각 사람에게 비춰질 때, 각 사람들은 그 빛 앞에 반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르게 반응하는 자는 더 많이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거부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빼앗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귀를 기울여서 신중하게 들어야 한다. 그냥 대충 듣거나 흘려 들어선 안 된다. 마음을 다해서 들어야 하고, 들었다면 온 삶으로 반응하고 순종하며,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8:15 참조).

4. 이것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바로 등장한다. 19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왔지만 몰려든 많은 사람들로 인해 가까이 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자 그 사실을 안 사람들이 예수님께 알렸다(20). 그때 예수님은 의미심장한 대답을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내 어머니요, 내 형제들이다.”(21) 예수님의 가족은 누구인가? 누가 예수님의 어머니이고, 누가 예수님의 형제들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들이다(빛에 반응하는 자들이다).

5. 22절부터는 자연 속에서 행하시는 두 번째 기적이 소개되고 있다(첫 번째는 5:1~11이다). 어느 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호수 저편으로 가자”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배에 올라타서 출발한다. 어느 정도 배를 저어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나운 바람이 불어와서 배에 물이 들어차는 위험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재미 있는 것은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깊이 주무시고 계셨다는 것이다(23).

6. 제자들 중에는 노련한 어부 출신들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경험과 기술로 해결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도저히 자신들의 노력으론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자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깨운다. “선생님! 선생님! 우리가 모두 빠져 죽게 생겼습니다!” 절박한 제자들의 호출에 예수님은 바로 일어나셔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시자 즉시 호수가 잔잔해진다(24).

7. 그 다음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신다. “너희의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이 놀라운 광경을 눈 앞에서 지켜본 제자들은 두려움과 놀라움 속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이 말씀을 읽는 우리들에게) 던진다. “이분이 도대체 누구시기에 바람과 물을 호령하시니 바람과 물조차 이분께 복종하는가?”(25)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하는 호칭이 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선생님”(Master)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목도한 광경은 단순한 선생(랍비)이 행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다.

8. 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신가? 누구이기에 자연을 통제하고 명령할 수 있단 말인가? 누구이기에 자연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이 질문에 각자가 답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합당한 답을 했다면 다시 앞 부분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빛이며, 그 빛 앞에 서는 자에게 요구되는 모습은 주의 깊게 경청하고 순종하는 반응이다. 바람과 물이 그 분의 명령 앞에 복종했다면, 같은 피조물인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왕이시라면, 주님의 말씀에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가?

말씀으로 세워지는 삶

묵상한 말씀 : 시편 19:1~14
나에게 주시는 말씀 :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해서 영혼을 되살리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해서 어리석은 사람을 지혜롭게 만들며 여호와의 율법은 올바르니 마음에 기쁨을 주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전해서 눈을 밝혀 줍니다.” (7~8절)

1. 오늘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절에서 6절까지는 자연 만물 안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고백하고 있다. 7절에서 14절까지는 여호와의 율법(말씀)이 가지는 능력에 대해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전자는 일반 은혜를 후자는 특별 은혜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육체적인 눈과 정상적인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다면 어느 사람이든 자연 만물 안에 운행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다. 물론 이것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자연 만물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창조주, 조물주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는 것이다.

2. 그러므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신(드러내신) 말씀(율법)이다. 다윗은 그 ‘여호와의 율법’이 가지는 능력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해서 영혼을 되살립니다. The law of the LORD is perfect, refreshing the soul. (나)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해서 어리석은 사람을 지혜롭게 만든다. The statutes of the LORD are trustworthy, making wise the simple. (다) 여호와의 율법은 올바르니 마음에 기쁨을 준다. The precepts of the LORD are right, giving joy to the heart. (라) 여호와의 계명은 순전해서 눈을 밝혀 준다. The commands of the LORD are radiant, giving light to the eyes.

3. 이어서 다윗은 그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반응, 그 말씀에 의해서 사는 삶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가) 경외함 fear, (나) 귀하고 달다 precious and sweeter, (다) 지킴 keeping (라) 용서 forgive, (마) 흠 없음 blameless, (바) 만족이 됨 pleasing.

4. 인간이 하나님을 인지하고,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며 주관자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백한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다. 하나님을 알려면 그 분이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신 말씀(율법)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럴 때 영혼이 되살아나고, 지혜롭게 되며, 기쁨을 경험하고, 눈이 밝아지게 된다.

5. 그럴 때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며,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이 얼마나 귀하고 단지를 알게 된다. 또한 그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죄의 지배를 거부하고, 자신 안에 있는 크고 작은 죄악에 대해서도 용서를 구하게 되고, 그 죄에서 돌이켜서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자가 된다. 더 나아가 매일의 삶 속에서 자신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여호와 하나님의 즐거움과 만족이 되기를 바라는 삶을 살게 된다.

6. 여기서 한 가지 놓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여호와의 율법은 오늘날 우리에겐 66권의 성경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성경 자체가 어떤 신비한 능력이나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강조점은 ‘말씀’에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다. 그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 하나님이 기록된 성경을 통해서 지금도 말씀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 안에서 있을 때, 기록된 그 말씀도 능력이 있고 힘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7.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와 그 분의 말씀 앞에 정돈되고 세워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회복되고 참된 지혜를 얻으며 눈이 밝아져야 한다. 그래서 삶 속에서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죄를 미워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주님이 진정으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성도의 삶이며 말씀 앞에서의 삶이다.

말씀을 청종하는 삶

여호와께서 스가랴에게 말씀하셨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미 이렇게 말했다. ‘공정한 재판을 하라.
서로 자비를 베풀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을 억누르지 말라.
너희가 서로 해치려는 악한 마음을 먹지 말라.”
그러나 그들은 듣고 순종하지 않았으며
등을 돌리고 듣기 싫어 귀를 막았다.
(스가랴 7:8~11)
 
오늘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린다.
우리가 진짜 다시 들어야 하는 주님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