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왕국과 거듭남

2019년 5월 12일 주일 설교 동영상

말씀 : 요한복음 3:1~7
제목 : 하나님의 왕국과 거듭남
설교 : 이상준 목사(복음자리교회)

**이번 설교에 도움이 된 책은 짐 월리스의 ‘회심’입니다. 혹시 이 부분에 대해서 더 공부하길 원하시는 분은 리처드 피스의 ‘신약이 말하는 회심’도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하나님을 움직이는 기도의 비밀 (낚시 주의)

  1. 역대하 33:1~13은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 왕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내용은 간단하다. 므낫세가 아버지 히스기야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무너뜨린 산당들을 다시 지었고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의 상을 다시 만들어 세웠으며, 심지어는 성전 안에 우상을 위한 제단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는 므낫세가 왜 그런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여러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이런 저런 원인들과 공부한 내용들을 제시하는데 사실 역대(상)하는 그것에 크게 관심이 없다. 대신 10절 이하에서 재미 있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2. 므낫세가 여호와의 말씀(경고)을 듣지 않자 하나님은 이방 나라 앗시리아를 동원해서 므낫세를 포로로 잡아가게 하신다. 므낫세는 매우 비참한 모습(코에 고리를 꿰고 청동 사슬로 묶어 바벨론으로 끌려감)으로 잡혀갔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 매우 겸손해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여호와께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런 므낫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호와의 마음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를 심판하려고 했던 마음이 바뀌어 므낫세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므낫세는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대하는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기도를 가르치는 것인가? 하나님의 자비로운 성품과 마음을 가르치는 것인가? 회개와 고난의 유익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인가?
  3. 오늘 말씀 7~8절을 보면 역대하가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자기가 조각해 만든 아세라 상을 가져다 하나님의 성전에 두었습니다. 이 성전은 여호와께서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에게 “내가 온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 선택한 예루살렘에, 그리고 이 성전에 내가 영원히 내 이름을 두겠다. 만약 그들이 마음을 다해 모세를 통해 준 모든 율법과 규례와 법도에 따라,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을 지켜 행하면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발이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떠나 방황하지 않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곳이었습니다.] (우리말 성경)
  4.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성전도 율법도 아니다. 문맥을 보면 성전이 강조되는 것 같고, 율법 준수가 중요한 내용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약’이다. 언약이 성전이나 율법보다 더 상위 개념이다. 성전과 율법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언약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전과 율법은 언약 안에서 그 기능과 목적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만약 언약이 없다면 성전도 율법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먼저 언약이 있고, 그 언약 안에서 성전의 가치와 율법의 의미가 세워진다. 이것을 다시 므낫세의 기도에 연결해 보자. 왜 하나님은 므낫세의 기도에 응답하시는가? 그가 겸손해졌기 때문인가? 고난을 통해 교만한 마음이 겸손한 마음으로 바뀌었기 때문인가? 왜 하나님은 그토록 불순종과 우상숭배로 남 유다 전체를 죄악 가운데 빠지게 만든 므낫세의 기도에 마음이 움직이셨던 것일까?
  5. 이런 질문의 대답도 역시 ‘언약’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열두 지파 전체와 언약을 맺으셨다. 또한 다윗을 통해서 이스라엘 왕국 전체와 언약을 맺으셨다. 또한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그 성전을 두고 그 언약을 확인하시고 다시 한번 약속하셨다. 이 언약(계약)의 핵심은 무엇인가? 간단하게 요약하면, 하나님을 찾고 예배하고 그 율법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지키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것이다. 므낫세가 단순히 우상숭배의 죄 때문에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니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언약을 저버리고 언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방 나라의 포로로 타국으로 끌려 갔다. 그런데 므낫세가 그곳에서 겸손해지고 낮아져서 하나님을 구하고 찾았다. 평생 한 번도 하지 않은 간절하고 진실된 기도를 드린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셨다. 다른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그 분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6. 하나님을 움직이는 기도는 겸손도 순종도 간절함도 아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사랑이나 자비, 긍휼도 아니다(물론 이것이 전제되어 있다). 인간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움직이게 할 수 없다. 인간이 무엇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나 마음을 돌이키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은 므낫세의 반응을 보시고 언약을 생각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다윗과 솔로몬과 맺은 언약과 약속하신 말씀들을 기억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바뀐 것이지 외부의 어떤 요인들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언약이다.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언약을 통해서 일하신다. 므낫세의 기도가 응답이 된 이유도 언약이다. 물론 므낫세가 언약을 온전히 기억하고 기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무튼 그의 기도가 하나님에게 언약을 기억하게 하신 것은 분명하다.
  7. 더 재미있는 것은 그것을 통해 므낫세가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거꾸로 말한다면 그는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가 우상숭배의 죄악을 행한 가장 큰 이유가 여호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여호와를 알지 못했을까? 더 나아가 진짜 여호와를 알지 못했을까? 이런 질문의 대답도 언약 안에 있다. 므낫세가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리는 없다. 그렇다면 므낫세는 어떤 면에서 여호와를 알지 못했을까? 언약적인 관계 안에서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고 이해하는 것이 이 문제의 본질이다.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언약 관계 안에서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지를 알지 못했다. 지식은 그 사람을 변화 시키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언약적인 관계 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8. 언약을 바르게 이해하자. 언약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성전, 예배, 기도, 순종, 말씀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기초이고, 하나님의 왕국과 복음을 이해하는 왕도이다. 언약 개념을 빼면 종교생활과 다를바가 없다. 특히 기도에서 언약적인 관계가 중요하다. 우리의 기도 생활이 단순히 종교적인 행위로 정의되지 않기를 바란다.

멈추고 반성할 때

1. 신앙생활을 오래하셨던 분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과거에 대한 아련한 추억들을 이야기 할 때가 자주 있다. 특히 70~80년대 진행되었던 대형 집회에 대한 추억들을 언급하신다. 빌리 그래엄 목사님을 모시고 진행되었던 Expo 74 전도대화라든가, 부활절 연합 새벽예배라든가, 심령 대부흥회라든가 등등.

2. 그러면서 요즘 그런 집회를 해도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고, 타락한 세대라고 평가를 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요즘은 대형 선교단체나 대형교회 혹은 대형 기관들이 주도하는 대형 집회에 대한 홍보물을 볼 때마다 불편함을 숨길 수가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변화하는 시대를 잘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시대와 사람은 계속 변한다. 고정되어 있지 않다. 마치 강물과 같아서 계속해서 흘러간다. 잠시 어느 곳에선 멈추어 있는 것 같다가도 또 다시 흘러간다. 그러면서 계속 주변 풍경과 환경들이 바뀐다.

3. 70, 80년대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지금은 그렇게 모이지 않는다고? 그래서 타락했다고? 아니다. 타락한 것이 아니라 변한 것이다. 시대와 문화와 사람들의 사고가 그만큼 달라졌고 바뀐 것이다(인간은 언제나 타락한 존재들이다. 더 타락하거나 덜 타락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대형 교회들과 대형 선교단체들은 대형 집회들을 고집한다. 수많은 재정을 들여서 커다란 집회 장소에서 수 만명 혹은 수 천명이 모이는 프로젝트를 고수한다.

4. 미안하지만 시대를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그런 시대가 아니다. 그런다고 영적 흐름이 바뀌지 않는다. 불신자들이 갑자기 단체로 회심하는 일들은 없을 것이다. 마이너스를 찍고 있는 교회 성장 곡선이 갑자기 플러스로 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낮은 복음화율이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떠났던 3040 세대가 갑자기 교회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모르겠다. 대형 교회들이나 대형 선교단체들은 조금 달라질지.

5. 더 이상 어떤 프로젝트, 어떤 대형 집회와 행사들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다. 어떤 슈퍼스타나 영웅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해오던 모든 일들을 (한동안)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회개하고 반성하고 평가하고 대화하고 소통 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해오던 일들을 계속 하면서 하나님이 축복해 달라고, 성령님이 역사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조용히 엎드려 살피는 것이다. 성령님이 진짜 무엇을 말씀하시고 계시는지 잠잠히 듣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무엇을 잘못하고 있었는지 우리 자신을 살피는 시간이 필요하다.

6. 하지만 교계 신문이나 집으로 배달되어 오는 우편물들, SNS를 통해 광고되는 행사들은 여전히 대형 집회와 행사들로 가득하다. 나는 그들을 비난 하려는 마음으로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들의 수고와 헌신은 존경 받아 마땅하다. 단지 변화하는 시대를 좀 더 잘 읽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더 이상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들은 더 이상 ‘메이저리티’(majority)가 아니라 ‘마이너리티’(minority)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7. 우리는 실패했다.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 너무 멀리 왔다. 잘못된 길을 계속 가면 안 된다. 그 길을 멈추고 돌아가야 한다. 다시 말한다. 이제 멈추고 길을 잃어버린 곳으로 돌아가서 바른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지금 한국 교회에 필요하다.

죄악을 멈추어야 산다

묵상한 말씀 : 이사야 9:8~21
나에게 주시는 말씀 : “그런데도 이 백성은 자기들을 치신 분에게 돌아오지도 않고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머리와 꼬리, 곧 종려나ㅇ무와 갈대를 하루에 잘라 버리실 것이니 그 머리는 장로와 귀족이고 그 꼬리는 거짓을 가르치는 예언자다. 이 백성을 바르게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 잘못 이끌고 있으니 그들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이 휩쓸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주께서 젊은이들을 향해 기뻐하지 않고 고아들과 과부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신다 모두가 경건하지 못해 못된 짓을 하고 입으로는 몰상식한 말을 내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여전히 그분의 진노가 풀리지 않아 아직도 그분의 손이 퍼져 있다.” (13~17절)

1. 8~10절까지는 하나님이 심판하셨지만, 자신들의 힘으로 무너진 것을 다시 짓고 찍히고 쓰러진 것들 위에 새로운 것들로 다시 심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이스라엘의 교만과 자만심에 대해서 고발한다. 그 결과는 더 큰 심판이 임하는 것이다. 11, 12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방 나라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풀리지 않아 계속 그 손이 퍼져 있다(11, 17, 21절에서 반복됨).

2. 13절 이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그 분을 찾지도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고발하신다. 그 결과 세 번째로 임하는 심판은 지도자들을 치시는 것이다. 장로들과 귀족들 그리고 거짓으로 예언하는 자들을 자라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르게 인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지도자들의 죄악은 심각한 결괄르 초래한다. 17절에서는 두 가지로 그것을 말하는데, 첫째는 주께서 젊은이들을 향해 기뻐하지 않으시고 고아들과 과부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신다. 둘째는 백성들이 경건하지 못해 못된 짓을 하고 입으로는 몰상식한 말을 내뱉게 된다. 이것은 악순환이다. 지도자들의 타락은 나라 전체의 타락으로 연결되고,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가 풀리지 않고 계속해서 그 위에 머무르게 된다.

3. 18절부터는 이스라엘 전체 악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고발한다. 마치 엄청난 불이 숲의 모든 나무들을 불태우며 흰 연기로 가득 덮여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죄악 위에 하나님의 분노가 함께 임하여서, 모든 것을 타 태워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파들끼리 분열되어 서로 학살과 약탈, 갑질과 학대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일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풀리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의 (진노의) 손이 그들 위에 퍼져 있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4. 위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세 번(11, 17, 21절)이나 같은 표현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고도 여전히 그분의 분노가 풀리지 않아 아직도 그분의 손이 퍼져 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실 뿐만 아니라 죄를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다시 구원하시고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죄악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갈 때 하나님도 그들을 향해 계속해서 분노하실 수 밖에 없다. 분노가 멈추어지고 진노의 손이 거두어지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그것은 죄의 길에서 돌이켜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것이다(13절). 그때까지 하나님은 계속 분노하시며 진노의 손을 들고 계신다.

5.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특히 마음에 와닿는 것은 지도자들의 역할이다. 하나님은 지도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이다. 맡겨진 영혼들을 바르게 이끄는 것이다(16절). 하지만 지도자들이 타락하면 그 결과는 끔찍하고 심각하다. 지도자들의 타락은 공동체 안에 죄의 문이 더 활짝(쉽게) 열리도록 만든다. 그 결과 공동체 안에 죄악들이 멈추지 않고 반복되며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게 된다. 그렇다! 죄는 개인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진정한 회개와 회복은 한 개인의 돌이킴에서 시작되지만, 죄의 문제는 공동체(사회) 전체로 확산되어 구조적인 죄악들이 당연하게 벌어지도록 만든다.

6. 이 말씀이 한국 교회와 지도자들에게 주는 메세지가 무엇일까? 우리는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우리가 돌이켜야 할 죄악들을 무엇인가? 하나님이 계속해서 진노하고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악들에게서 돌이키지 못하는 있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