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복음

요즘은 하나님 앞에 많이 앉아 있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분 앞에 앉아 있을수록 제 안에 밀려오는 한 가지 생각은… 제가 복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복음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제 자신의 삶과 사역 가운데 복음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정말 죄송하고 부끄럽고 마음이 아픕니다.

많은 이론과 가르침들, 멋진 성서 해석은 넘쳐 납니다. 많은 프로그램과 활동들, 훈련의 과정들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정작 십자가와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는 더 이상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회심하는 영혼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감격을 가지고 그 복음을 전하려고 애쓰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의 이야기입니다. 저의 삶과 사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구를 비난하고자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 저 자신부터 복음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복음과 상관 없이 사역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그것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합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본질은 잃어버리고, 본질이 아닌 것에 매달려 헌신한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길 원합니다. 다시 십자가 밑에 엎드리길 원합니다. 다시 눈을 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길 원합니다. 무엇보다 저의 마음이 복음으로 뜨거워지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감격하길 원합니다. 이것이 요즘 저의 간절한 기도의 제목입니다. 주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구하고 또 구하는 내용입니다. 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 오직 복음만이 필요합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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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한 말씀 : 요한복음 3:1~8
나에게 주신 말씀 : “육체에서 난 것은 육체이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 (6절)

니고데모… 바리새인이자 유대 공회 지도자(산헤드린 공의회-당시 최고 의결기관이자 집행기관)이다. 이 정도 이력만 확인해도 당시 니고데모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정치, 사회적 위치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지도자였음을 말해준다. 니고데모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헌신과 노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율법에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그대로 순종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존경과 인정을 받았던 지도자였다.

또한 누구보다 하나님 앞에서 순수한 사람이었다. 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정도의 위치와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던 사람(유대인들에게 ‘랍비’라고 존경을 받던 사람)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젊은 청년 예수에게 와서 ‘랍비’라고 부른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 앞에서 열린 마음,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당시 어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제사장들도 이런 자세를 예수님께 보인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하신다. 그것은 바로 ‘거듭남’이었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아무리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헌신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론 안 된다는 것이다. 율법을 깊이 알고, 그 항목들을 삶 속에서 철저하게 지킨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어떤 사람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와 생명의 차이이다. 육체로 섬기는 것과 성령으로 섬기는 것의 차이이다. 육체로 사는 것과 성령으로 사는 것의 차이이다. 우리는 이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여러 가지 항목과 조항들을 열심히 지킴으로서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으려는 종교가 아니다. 인간적인 헌신과 열정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더 본질적인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거듭남’이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다시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다시 복음을 강조해야 하는 이유이다. 교회 안을 보면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육체로, 자신의 열심과 헌신으로, 어떤 종교적인 조항들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자신들의 노력과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으려는 한다. 강단에서도 그런 종교적힌 헌신과 노력들을 말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 인정 받을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친다.

그것은 종교이다. 종교는 어떤 변화도 열매도 없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던진 말씀을 우리는 다시 들어야 한다. 그 말씀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육체에서 난 것은 육체이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 더 이상 육체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시도를 하지말자. 멈추자.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자. 거듭나야 한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것이 없이는 어떤 종교적인 헌신과 노력도 헛된 것이다.

다시 복음으로

전도학도 공부했고…. 전도폭발 사역도 오랫동안 해 왔고… 나름 제자훈련 사역과 선교단체에도 몸을 담그고 있었는데… 내 주변엔 온통 그리스도인뿐이다. 부목사로 사역 하면서 교회와 관련된 일만 해 왔다. 좀 더 적극적으로 비 그리그도인 사이로 들어가지 못했다.

야성도 잃고, 복음의 능력도 잃어버린 것 같다. 믿는 자들 안에서 아옹다옹 살고만 있는 것 같다. 나의 부르심은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나누는 것인데… 그 가치와 목적을 상실한채 삶의 여러 가지 문제와 관계 안에서 허덕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복음전도의 삶을 회복해야 한다. 단순하게 살자. 무디어진 칼날을 다시 세우자.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성령충만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명확하게 하자. 내가 먼저 복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럴 때 복음적인 교회를 세울 수 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자. 다시 복음으로…

성탄의 목적

jesus-Christmas-537x345묵상한 말씀 : 마태복음 1:18~25
나에게 주신 말씀 :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가 그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할 것이다… 처녀가 잉태해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를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21, 23절)

12월 24일… 내일은 성탄이다. 물론 정확한 예수님의 생일은 아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생일을 아는 사람은 없다. 사실 성경은 그것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성탄이 가지는 의미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 했는가? 그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마리아도 요셉도 아니다. 물론 이들의 역할은 너무도 주용하고 필요했다. 예수님이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선 마리아라는 존재가 필수적이다. 그와 함께 요셉의 믿음과 순종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들이 주인공은 아니다. 구지 이들에게 스포트라이트(spotlight)를 비출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당연히 예수님이다. 그것도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 처녀의 몸을 통해서 우리와 동일한 인간으로 태어나신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히는 내용이다(요셉의 갈등과 번민을 통해 그것이 드러나고 밝혀진다).

그것은 이름과 깊은 연관이 있다. 요셉에게 꿈을 통해서(천사를 통해서) 두 개의 이름이 계시되어진다. 첫째는, ‘예수’라는 이름이고, 둘째는,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다.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는 ‘그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할 자’이며, 임마누엘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 땅에 성취하고자 하시는 구원의 목표이다. 구원의 시작은 죄에서부터 건져내는 것이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목표는 아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심각하게 착각하고 있다. 그저 예수님을 믿어서 죄 용서함을 받는 것, 그래서 죽은 다음에 천국이라는 곳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시려는 구원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 다음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

구원의 진정한 완성은 ‘임마누엘’이다. 영어로 하면 ‘God with us’인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하시는 것이다. 하늘(성경은 하늘을 하나님의 영역으로 구분 짓는다)에 계신 하나님이 친히 인간들이 사는 땅에 오셔서 함께 거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질서, 새로운 공동체가 시작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죄로 인해 시작된(형성된) 인간의 모든 거짓된 질서와 조직과 관계 안에 새로운 하늘의 질서와 가치를 가지고 오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 죄인으로 살았던 삶에서 분리되고 단절되는 것을 의미한다. 전혀 새로운 방식의 삶이 시작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그런 죄로 인한 삶의 방식이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것이 구원이고, 구원받은 자의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저 죄 용서함을 받고 천국 갈 수 있는 티켓을 확보해 놓는 것이 구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부인함으로 시작된 모든 거짓되고 더러운 삶의 방식과 스타일, 형식과 모습들을 다 무너뜨리고 새롭게 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이것을 다른 식으로 설명하면,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사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리로 새롭게 되는 일들에 참여하는 자들이라는 말이다. 단순히 마음 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그 전의 방식을 반복하며 살아갈 순 없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신 자의 삶이 아니다.

성탄절을 코 앞에 두고 있다. 그저 성탄 트리를 만들고, 카드를 주고 받고, 캐롤을 부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성탄의 참된 목적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가정과 일터 안에 임마누엘을 회복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개인,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 하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이 땅에 온전히 성취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